메뉴 건너뛰기

close

묵암 이종일 선생
 묵암 이종일 선생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3월 10일에는 경무총감부에서 순사 장원맹부(莊原孟夫)의 심문을 받았다.

문 피고는 이번 여러 동지와 같이 조선독립운동을 했는가?
답 나는 운동은 안 했고 독립선언서는 인쇄한 일이 있다.

문 어떻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게 되었는지 사정을 말하라.
답 올해 2월 20일경 오세창 집에 가니까 그가 나에게 인쇄물을 보내주겠으니 그리 알라 하고 그후 26일 오세창이 찾아와서 독립선언서 2만 매가량을 인쇄해 달라고 해서 승낙했다.
독립선언서 원고가 왔으므로 2만 1천 매를 인쇄했다.

문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자로서 피고가 명단에 있는데?
답 나는 원래 신문사 출신이므로 신문을 발간하는 것은 잘한다. 그래서 민족적인 유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선언서에 명단을 내기는 했지만 별로 이야기한 일은 없다.

문 피고는 독립선언서 발표를 위해 동지들과 같이 명월관 지점에 갔는가?
답 그렇다. 나는 별로 이야기한 일은 없으나 선언서에 이름을 냈기 때문에 명월관 지점에 모였다.

문 피고가 인쇄한 독립선언서는 어떻게 처리했는가?
답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기는 27일 밤인데 오세창은 나에게 암호로 청색 오이조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주라고 해서 28일 아침 천도교인 안상덕이 암호를 가지고 와서 1천 5백 장, 이경섭에게 5백 장, 감상설에게 3천 장, 인종익에게 3천 장, 중앙예배당 기독교인 김창준에게 3천 장, 승려 한용운에게 2천 장을 주고 또 내가 없을 때에도 암호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 주라고 했다. 또 그날 밤 이갑성이 학생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2천 장을 주었으며 우리집에 1백 장가량 남겨두었다.

문 선언서는 어떤 곳에 배부했는가?
답 경성부 내는 이갑성, 김창준 두 사람이 배부했고 인종익은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안상덕은 강원도, 함경남북도, 김상열과 이경섭은 황해도 지방에 배부한다는 말을 그 사람들이 선언서를 가지러 왔을 때 들었다. 또 기독교 측에서도 지방에 보낸 일이 있고 한용운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문 피고는 일한합병에 반대하는가?
답 연방제도라면 모르지만 식민지로 된 것은 반대이다.

피 고 인 이 종 일
대정 8년 4월 16일
경성지방법원예심괘
예심판사 永島雄藏

일제 경찰의 심문은 계속되었다. 1920년 3월 2일 신문조서이다. 장소와 심문자는 동일하다.

문 그대가 오세창으로부터 원문을 받아 인쇄한 인쇄물, 즉 선언서는 이것인가?(이때 압수증 제1호를 보임.)
답 그렇다.

문 그곳에서 인쇄한 선언서는 2만 1천 매라고 하는데 그 전부를 2월 27일 밤에 인쇄했는가?
답 그렇다.

문 선언서를 인쇄한 직공들에게 이런 인쇄를 했다고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부탁했는가?
답 그렇다.

문 선언서는 어떤 직공이 맡아서 찍었는가?
답 신영구와 김홍규 두 직공에게 명령했고 다른 직공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문 먼저 보인 선언서 외에도 3월 1일자로 신문을 인쇄 발행한 일이 있는가?
답 그런 일은 알지 못한다. 나는 인쇄한 일이 없다.

 

태그:#이종일, #이종일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