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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감각을 열고 인천을 음미한다. 인천의 고유한 먹거리와 정성 어린 손맛으로 빚는 오감 만족 레시피. 이번 요리는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가슴속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백합탕'이다. 서쪽 바다의 햇살, 바람, 숨결을 맞으며 장봉도 모래갯벌에서 자란 백합(白蛤)을 듬뿍 넣고 보글보글 끓여 완성했다. 그 섬 옹암해변에 안긴 비치식당의 박재순 대표가 정성 어린 손맛으로 담아 선보인다.[기자말]
장봉도 갯벌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조개의 여왕' 백합도 지천이다.
 장봉도 갯벌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조개의 여왕' 백합도 지천이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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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모래갯벌에 박힌 하얀 보석

푸른 바다가 밀려간 자리에 황금빛 회색 융단이 드넓게 펼쳐진다. 저만치 멀어진 바다 물결이 햇살 아래 일렁인다. 여름의 끄트머리, 가을의 시작점. 바닷바람 따라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 북도면 신도·시도·모도 삼형제섬과 사이 좋게 이웃한 장봉도를 찾았다. 섬은 인천에서 서쪽으로 21km, 강화도에서 남쪽으로 6.3km 떨어진 바다 위에 있다. 배 타고 단 40분이면 닿는다.

한강과 임진강이 조강에서 한데 어우러져 강화도 염화수로와 석모수로를 지나 이 섬 모래갯벌까지 흘러 들어간다. 강과 바다가 만나 굽이쳐 흐르니 사시사철 자연의 산물이 모여든다. 풍부한 햇살과 바람, 적당한 온도, 섬을 둘러싼 모래가 수많은 생명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장봉도 갯벌은 수천 년 시간이 켜켜이 쌓인 생명의 보고다.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가 날고 동죽, 범게, 바지락 등 바다의 보석이 무수히 박혀 반짝인다. 크고 하얗게 빛나는 백합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 조개는 껍데기에 새겨진 무늬가 마치 백합(白合) 같아 이처럼 고운 이름이 붙었다. 장봉도 사람들은 조개 중에 으뜸으로 여겨 상합(上蛤)이라고 부른다.
 
갯벌 위로 바닷물이 차올라 물결치는 장봉도 바다. 그 위로 시나브로 노을이 내린다.
 갯벌 위로 바닷물이 차올라 물결치는 장봉도 바다. 그 위로 시나브로 노을이 내린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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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은 수심 10~20m의 조간대 모래갯벌에 주로 산다. 조간대는 생물종이 가장 풍부하고 밀도가 높은 해양생태계다. 백합은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와 전라도 연안이 주 서식지로, 인천에서는 옹진군 장봉도와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에 자리 잡고 산다. 매립과 간척으로 새만금 갯벌이 지도에서 사라지면서 인천이 백합의 주요 산지가 됐다.

전복이 조개의 황제라면,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다. 그만큼 알이 굵고 실하다. 또 식감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우면서 맛이 깊고 풍부하다. 날것 그대로 먹어도 맛이 그만이거니와 굽거나 국으로 끓여 먹어도 맛있다. 특히 백합탕은 뽀얗고 시원하게 우러난 국물 맛이 일품. 섬 텃밭에서 자란 싱그러운 채소와 아낙의 손길을 더해 서쪽 바다를 오롯이 품은 한 그릇을 완성했다.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자연은 더 오묘하고 깊은 맛을 선사한다.

섬 마음 담은, 뜨끈한 한 그릇
 
장봉도 옹암해변 ‘비치식당’의 박재순 대표.
 장봉도 옹암해변 ‘비치식당’의 박재순 대표.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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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 바닷가에는 그 귀한 백합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요. 부드러운 식감과 깊고 풍부한 맛에 모두 반한답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백합을 냄비에 잔뜩 넣고 우르르 끓여 먹는 맛이란.

박재순(57) 대표는 장봉도 옹암해변 앞에서 10년째 식당을 꾸리고 있다. 진주가 고향인 그는 남편과 영종도 을왕리를 거쳐 이 섬에 머물고 있다. 장봉도에는 갯일이 좋아 자주 오곤 했다. 언젠가 물때에 맞춰 놀러 왔다가 문득 '예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아예 눌러앉게 됐다. 산에서 나물 캐고 바닷가에선 소라 줍고 조개를 캐고 운이 좋으면 낙지도 잡는다.

"지폐를 줍는 거나 다름없어요. 바다 벌판에 못 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답니다."

육지와 바다로 가로막힌 삶. 밀물처럼 밀려들던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면 외로운 마음도 든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이 지나갔나 싶었는데, 여름 휴가철에도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엔 애가 탔는데 이제 '찬 바람 불면 사람들이 찾아와 주겠지'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여기, 백합탕 한 그릇 주시오.'

고른 한낮, 낯선 얼굴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가게를 찾았다. 서울에서 장봉도까지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거동이 힘겨워 보이는 손님을 위해 박씨가 살뜰히 조개껍데기를 까서 살을 발라 밥상 위에 올려준다.

어르신이 탕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막걸리까지 마신 후 기운을 차리고 길을 나선다. 누군가의 허기진 삶마저 배부르게 채우는 일, 이 맛에 섬 아낙은 오늘도 뜨거운 불 솥 옆을 지킨다.

장봉도 비치식당 : 옹진군 북도면 장봉로 198, 032-752-4542
 
장봉도 갯벌에서 난 백합을 아낌없이 넣어 뜨끈한 탕으로 보글보글 끓였다. 서쪽 바다의 풍미가 오롯이 담긴 한 그릇, 그 맛이 시원하면서도 깊고 풍부하다.
 장봉도 갯벌에서 난 백합을 아낌없이 넣어 뜨끈한 탕으로 보글보글 끓였다. 서쪽 바다의 풍미가 오롯이 담긴 한 그릇, 그 맛이 시원하면서도 깊고 풍부하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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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탕 레시피

재료 백합 2kg, 배추 30g, 무 40g, 당근 10g, 파 1대, 청양고추 4개, 마늘 6알, 깻잎 4장, 육수 1.6L

유명 셰프가 만든 음식도,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 메뉴도 아니다. 배고프면 언제든 마음마저 든든히 채워 주는 맛. 시민 셰프를 위한 인천 오감 레시피. 이번 요리는 장봉도 모래갯벌에서 캐낸 백합을 담뿍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백합탕'이다.

바다 너머 육지까지 입소문이 난 비치식당 박재순 대표의 야무진 손맛으로 완성했다. 정성 한 스푼, 사랑 두 스푼 담은 요리로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채우자.   
백합탕 레시피
 백합탕 레시피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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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① 백합은 해감하고, 각종 채소는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② 무는 얇게 반달 모양으로, 배추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③ 당근은 굵게 채 썰고, 파는 굵고 어슷하게 썬다.
④ 고추는 송송 썰고, 마늘은 다진다.
⑤ 맛을 내는 비법으로 깻잎을 넣는데, 깻잎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⑥ 냄비에 육수를 넣고 무, 배추, 당근, 백합을 넣고 끓인다.
⑦ 백합이 입을 벌리면 깻잎, 파, 고추, 마늘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낸다
   
시민 셰프를 위한 백합 요리 Tip
 
장봉도 갯벌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조개의 여왕' 백합도 지천이다.
 장봉도 갯벌엔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조개의 여왕' 백합도 지천이다.
ⓒ 류창현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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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의 여왕 백합. 조선시대 왕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로, 도톰하고 뽀얀 속살은 그 맛이 깊고 풍부하다.

철분과 칼슘, 필수아미노산과 성인 하루 권장섭취량의 10배가 넘는 비타민 B12가 들어 있어 몸에도 좋다. 갓 캐낸 백합은 회, 탕, 찜, 구이 등 어떻게 요리해 먹어도 맛있는데, 특히 탕으로 끓여 국물을 내면 진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우러난다.

식재료 본연의 풍미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정성을 더하면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박 대표는 배추, 무, 당근 등 섬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를 곁들이는데, 특유의 향을 지닌 깻잎은 국물 맛을 더하는 그만의 비법이다.

한편 조개는 여름이 산란기이므로 가을을 거치면서 살을 점점 찌워 찬 바람이 불수록 맛이 오른다. 입 벌리고 있는 조개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을 때 껍데기가 닫히면 싱싱한 백합이다.

▶ 취재 영상 보기 (https://youtu.be/l4-0uC0gvf4?si=k8GhmnQo3JNDcznm)
 
인천 오감 레시피 : 장봉도 '백합탕' 유튜브 섬네일
 인천 오감 레시피 : 장봉도 '백합탕' 유튜브 섬네일
ⓒ 굿모닝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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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 디렉터
요리 박재순 장봉도 '비치식당' 대표│스타일링 강지인·김예진

태그:#레시피, #백합탕,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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