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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의 청소년 성관련 책 열람제한에 홍성군 주민들이 금서 읽기로 맞대응하고 나섰다.
 충남도의 청소년 성관련 책 열람제한에 홍성군 주민들이 금서 읽기로 맞대응하고 나섰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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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금서라고? 우리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겠다."


충청남도 홍성의 시민들이 이른바 '금서 읽기'를 자처했다.

앞서 최근 충남과 충북의 일부 보수단체들이 도서관에 민원을 넣으며 성·인권 문제를 다룬 청소년 책들을 금서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충남도는 이 민원을 일부 받아들여 지난 7월 말 충남도내 공공도서관에서 이다 작가의 <Girls' Talk 걸스 토크>를 비롯한 10권의 책에 대해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맞서 지난 11일부터 충남 홍성군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는 '제1회 홍성 금서 대축제'를 시작했다. 1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축제는 일부 도서에 대한 충남도(도지사 김태흠)의 열람 제한 조치에 항의하고 풍자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지난 11일 찾아간 밝맑도서관 '금서 축제' 현장에는 충남도에서 열람을 제한한 10권의 책 뿐 아니라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 책'들도 일부 전시돼 있었다. 책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밝맑도서관은 2011년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으로 모아 세운 주민도서관이다.

주민들은 '금서' 앞에 색안경을 놓고 '색안경 쓰고 책읽기'라는 문구를 넣어 일부 보수 단체의 금서 요구를 풍자했다. 주민들은 한때 <헤리포터>와 <아기공룡 둘리>도 금서였다고 강조했다.

임원영(홍동주민)씨는 "몇 달 전부터 도서관에 금서요구 민원이 제기되고 사서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서들이 힘들어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러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김태흠 충남지사가 10권의 도서에 대해 열람을 제한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살고 있는 '금서' 작가와 주민들이 금서를 직접 읽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며 "금서를 도대체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인가. 독자들이 읽고 판단할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서를 요구한다면 이 세상에 금서 아닌 책이 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홍동주민 A씨는 "금서 요구를 받은 책들을 모두 읽어 봤지만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말 그대로 색안경을 끼고 책을 읽은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책들은 주로 성정체성을 알아가는 청소년들의 성을 다루고 있다.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정체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막는 것 또한 폭력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홍동주민 B씨는 "그들은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성관련 도서를 빼라고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까지 빼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금서의 기준이 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성토했다.

"책 안읽던 아이들도 도서관 찾는다"
 

홍동에 사는 윤은주 작가도 금서 축제에 함께했다. 윤 작가의 <소녀와 소년, 멋진 사람이 되는 법>(사계절 출판)은 충남도가 열람을 제한한 책 10선에 들지는 않았지만 '금서요구 110선'에 이름을 올렸다.

윤 작가는 "2023년에 금서라는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금서는 과거에나 유행했던 말이다. 저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은 페미니즘과 인권, 성소수자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금서라는 철지난 단어를 꺼내는 바람에 아이들이 다시 책을 읽는 계기가 되고 있다. 책을 잘 보지 않던 아이들이 '이게 왜 금서야'하며 책을 보러 도서관에 오고 있을 정도"라면서 "'금서 읽기'도 전국으로 확산 될 것 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행동이 책읽기 측면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밝맑도서관 한편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잡지를 읽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걸 금지하는 거야'라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따온 말이 적혀 있었다.
 
제 1회 홍성 금서 대축제는 오는 15일까지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 열린다.
 제 1회 홍성 금서 대축제는 오는 15일까지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 열린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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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충남도가 열람 제한한 '금서' 앞에 놓여 있는 색안경.
 이른바 충남도가 열람 제한한 '금서' 앞에 놓여 있는 색안경.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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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서 읽기 , #맑밝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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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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