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6 13:59최종 업데이트 23.09.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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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자 <파이낸셜타임스> 기사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 1년 후' ⓒ 파이낸셜타임스


지난 8월 16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의 투자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두 법이 시행된 2022년 8월부터 1년간 발표된 1억 달러 이상 대형 프로젝트를 전수 조사했다. 두 법에 따라 미국 정부는 자국에 친환경 기술과 반도체 공급사슬 구축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총 4000억 달러(약 528조 원)의 세금 감면과, 대출 및 보조금 등의 혜택을 부여하게 된다.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 풍력 및 태양광 모듈 관련 제조업이 대상이다.

기사에 따르면 법안 시행 이후 관련 분야 신규 투자 총액은 2240억 달러(약 299조 6000억 원)이며 1억 달러 이상 투자하는 대형 프로젝트는 모두 110건으로 나타났다. 그중 가장 큰 투자 기업은 인텔로서 300억 달러를 투자한다. 그다음은 대만계 시스템반도체 장비업체 TSMC이다. 그밖에 10위권 기업에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5위), 현대자동차와 SK온의 합작회사(9위) 등이 있다.


이 기사를 전하는 이유는 외국기업 중 1억 달러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나라 가운데 한국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20건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19건), 일본(9건), 캐나다(5건), 대만·인도·중국(각 3건), 기타 국가(4건)가 뒤를 잇는다.

인플레이션감축법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한국 기업은 현대기아차와 3대 배터리 제조업체들, 이들 기업에 소재를 공급하는 연관 기업들이다. 반도체법의 대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다. 한국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주력 기업들이 두 법이 목표로 하는 유치 대상 기업이다.

국내 투자 줄고 해외 직접투자 늘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1주년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일자리 및 투자 상황을 언급하며 "이 법은 미국의 일자리 및 경제 성장의 큰 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경기도 용인에 300조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메모리반도체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투자유치 계획이 얼마나 성공을 걷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은 한국 제조업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통해 특혜를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신규 투자를 촉진하고 중국의 성장을 견제할 수 있다. 앞서 보듯이 두 법의 투자 유치 효과는 곧장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 노동 비용 상승이라는 국면에서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환류하고 한국, 유럽, 대만 등 첨단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높은 경제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만 나홀로 호황인 셈이다.
 

연도별 민간 설비투자 현황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단위 : 10억 원, %) ⓒ 한국은행

    
위 그림은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 현황을 보여준다. 2021년과 2022년 민간기업 전체 및 비금융 법인기업의 투자액 성장세는 크게 완만해지며, 2022년 투자의 순증가세는 음으로 전환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설비투자는 1분기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연도별 해외 직접투자 현황 자료 :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 ⓒ 한국은행


반면 위 그림에서 보듯 2022년 해외 직접투자는 크게 증가한다. 전체 투자에서 금융 및 부동산 투자 비중이 가장 크지만 제조업 투자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미국 중국 해외 직접투자(전체) 자료 : 수출입은행 무역통계(2023. 6. 26 추출, 단위 : 백만 달러) ⓒ 수출입은행


위 그림을 보면 해외 직접투자가 어디로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에 비해 미국에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자본들이 자산 수익을 목적으로 미국 주식시장과 부동산, 선물거래 등에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투자가 중국 투자보다 많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중국 해외 직접투자(제조업) 자료 : 수출입은행 무역통계(2023. 6. 26 추출, 단위 : 백만 달러) ⓒ 수출입은행

 
위 그림은 미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한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 추세를 나타낸다. 미국 투자 증가 속도가 중국 투자보다 훨씬 크다. 중국 투자는 증가 추세이기는 하지만 미국 투자 증가율에는 못 미친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 수출 주도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현지를 생산기지화하거나 시장개척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국내 생산 기반에 근거해 해외 직접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에 해외 직접투자로 현지 공장을 건설해도 국내 수출을 대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국내 수출을 증가시켰다.

물류비용이 큰 부품들은 현지에서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품들은 국내에서 생산해서 수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해외 직접투자는 국내 공장의 산출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수출이 증대하고 일자리도 늘어났다. 해외 직접투자와 국내 투자가 대체 관계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에 따른 미국 내 투자의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의도하는 바는 반도체나 전기자동차, 재생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전 공급사슬을 미국과 북아메리카 내에서 구축하려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부피가 작고 가벼워서 항공기 등으로 쉽게 운송할 수 있다. 굳이 미국 내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배터리 소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캐나다-멕시코 자유무역협정(USMCA) 역내에 관련 산업의 전 가치사슬을 통합적으로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보조금과 세제 혜택, 규제를 활용하고 있다. 북미에 대한 투자는 국내 투자와 대체 관계가 된다는 의미다.

고이자율, 고인플레이션, 높은 임금상승률에도 불구하고 미국만 호황인 데는 미국의 일방적인 제조업 활성화 정책이 기저에 놓여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속적으로 이자율을 올릴 수 있는 이유도 투자 호황에 있다. 미국이 스스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기업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 경제의 통합을 억제하고 있다.

환경 기준 맞추려 해외로 갈 우려
 

2021년 12월 29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은 기후 위기로 인한 탈탄소 산업전환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EU 내 탄소배출 규제 때문에 역외로 탄소배출 산업이 이전하는 것을 억제하려 한다.

또한 기후 위기를 심화시켜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기업들을 규제하고자 한다. 역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탄소 가격을 조세로 부과함으로써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제품 제조를 세계적으로 강제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재생에너지 투자를 촉진하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과 관련하여 최근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유발했던 것이 RE100 선언이다. RE100이란 완성품 제조 과정만이 아니라 소재에서 부품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2030년, 2035년 등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고 자사 제품 제조 과정에서 RE100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2050년까지 RE100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저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크게 증가시키고 있다. 중국은 원전 투자도 많이 하는 국가이지만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증가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2022년, 2023년 태양광 발전 설비 규모만 각각 80GW가 증가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과 미국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증가분보다 더 크다. 2022년, 2023년 EU의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각각 40GW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증가 추이 자료 : 에너지경제연구원(단위 : GW) ⓒ 에너지경제연구원


위 그림에서 보듯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은 2019년 8.5GW, 2020년 10.6GW, 2021년 11.0GW, 2022년 13.0GW로 나타난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 순증가는 최근 3년간 연평균 1.5GW이다. 중국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EU 주요 국가들의 발전설비 용량 증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규모가 적다.(아래 그림 참조)
 

주요국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 현황 자료 : IEA(2022) ⓒ IEA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부터 재생에너지 투자가 지체되었지만 그 조차도 현 정부에 들어와서 오리무중으로 빠지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RE100 실현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하는 CFE100(Carbon Free Energy 100)을 제시한다. CFE100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연료전지 발전, 원전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무탄소 발전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둘은 대립하기보다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산업 정상화와 태양광 발전 보급을 대립시키며 후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태양광 발전 보급을 위해 공급된 금융지원을 대단한 비리가 있는 듯이 선전했다. 그에 따라 2023년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보급량은 크게 감소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주력 제조업 기업들에는 또 다른 도전이 될 수 있다. 국제 표준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현저히 낮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받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 전원이 근원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부품재로 사용하거나 최종재 수입을 원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기업에 RE100을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해외로부터 RE100 요구를 받은 기업은 전체 응답 기업 중 14.7%였으며, 대기업은 3분의 1이 이런 요구를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 대응에서 보듯이 한국의 초국적기업들은 해외의 무역장벽이 커지고 현지 시장에 대한 접근이 어렵게 되면 해외 직접투자를 통해 규제를 회피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가 부재하고 투자를 받는 국가들에서는 모든 혜택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국면에서 한국에서 RE100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것이다. 그 대상지는 중국, 유럽, 미국, 호주 등이다. 모두가 한국과 경쟁하는 지위에 있는 국가들이다. 이들 지역에 투자한 기업은 지주회사가 한국에 있더라도 한국 기업이 아니다. 바이든 법은 이의 전조를 보여주는 사례로써 주목할 가치가 있다.
 

남종석 /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남종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종석 박사는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이며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한국 제조업 산업생태계, 지역불균등 발전, 제조업의 탈탄소화와 그린뉴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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