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31 05:49최종 업데이트 23.08.3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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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대화하는 윤 대통령과 추경호 부총리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며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세와 재정의 '소득 재분배 효과'는 과세와 재정 지출이 이루어지기 전과 후의 소득 불평등도의 차이를 말한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높은 소득 불평등도가 과세와 정부·공공부문의 지출로 이루어지는 정부 기능을 통해 얼마나 줄어드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다. 이를 기준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된 선진국과 주요 개발도상국 등 38개 회원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칠레, 멕시코 등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부실한 것은 상대적 빈곤율로도 나타난다. 과세와 정부 보조금을 고려한 상대적 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그만큼 정부와 공공부문을 통한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인당 GDP로 측정할 때 경제발전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정부의 소득 재분배 기능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대규모 부자 감세만 해놓고, 움직이지 않는 정부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지속된 부동산과 금융자산 시장의 과열로 자산 불평등 역시 심화됐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적정한 조세수입과 적정한 재정지출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작년 대규모 부자 감세를 단행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고물가-고이자율, 불황, 미·중 갈등 등으로 세계 경제는 급속히 냉각됐다. 대외무역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결국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졌고 세수 부족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6월 말까지 세수는 전년 동기보다 40조 원에 가깝게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세수 부족분이 70조 원에 가까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어려운 경기 속에서 불안정한 서민 생활을 보살피는 재정의 재분배 기능이 발휘되려면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거부하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국가 재정이란 칼을 써야 할 적기에 재정건전성이란 핑계로 칼만 갈고 있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 정부 부채가 낮아 재정건전성도 양호한 나라의 정부에서 말이다.  

시장이 얼어붙을 때 정부 지출을 통해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 재정의 경기 안정화 기능이다. 이 정부는 그것도 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계획한 지출 일부를 집행하지 않고 '불용' 처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쓰지 않은 예산액보다 더 큰 경제활동의 위축이 발생한다. 그만큼 경기를 더 냉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얘기다.

8월 초 정부가 공개한 세법 개정안은 지난해에 이어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게다가 가업 승계에 대한 조세감면, 결혼자금 증여세 감면 등 일부 세목에서는 부자 감세와 부의 대물림을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횡재세 고려해야 할 판인데...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해 10월 24일 런던에 있는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사임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9월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역대 가장 짧은 기간인 44일 재임한 총리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기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부자 감세'를 추진했다가 큰 반발을 샀다. ⓒ 연합뉴스

 
현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가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세의 상대적 비중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22년 9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4단계 소득세율 체계가 만들어진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근로소득세수 증가율은 9.0%, 법인세수 증가율은 4.7%로 집계됐다. 국세 대비 근로소득세 비중은 2008년 9.3%에서 2021년 13.7%로 4.4%포인트 높아졌지만, 법인세 비중은 23.4%에서 작년 20.5%로 2.9%포인트 낮아졌다. 부자 감세로 법인세와 보유세 비중이 더 낮아지고 근로소득세와 소비세 비중이 더 높아진다면, 결국 서민의 지갑을 털어 최상층의 배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세수 확충을 위한 고민도 세법 개정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작은 정부로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정부의 재분배 기능은 지금보다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경제만 키우고 불평등, 양극화, 복지 따위는 내팽개치는 기형적 선진국이 된다는 것인가? 우리나라 정부는 작년 영국 경제 위기를 자초했던 리즈 트러스 내각의 경제정책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물러났고 영국 정부는 트러스의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철회했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지금 선진국들은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위한 세수 확충에 힘쓰고 있다. 보수당이 집권한 나라도 그렇고 진보당이 집권한 나라도 그렇다. 부자 감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불확실한 경제환경과 대다수의 곤란에 편승해 부를 획득한 기업, 조직, 개인 등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횡재세도 걷겠다는 것이 주요 선진국의 입장이다. 한국도 일부 에너지 기업, 금융기관 등에 대해 횡재세를 고려해야 한다.

세수 확충은 현재의 경기침체와 경제적 고충을 피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에너지 전환의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이 직면한 에너지 전환의 도전은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엄중하다.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송배전 인프라 확충, 정의로운 전환 등에 있어서 정부와 재정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 한국 정부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주병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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