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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난 데에 이어 8월 3일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서현역에서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엔 인터넷엔 살인 예고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경찰이 대응하는 등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치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으나, 최근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고자 지난 9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전화로 연결했다. 다음은 백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코로나와 고립 그리고 범죄의 연관성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 백종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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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에 이어 경기 성남 서현역에서도 같은 유형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국내에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공격이 벌어진 적 별로 없기 때문에 국민적 충격이 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도 '정신질환으로 단정지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내부에서 회람했습니다.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는 서현역 사고의 경우 스토킹을 당해왔다는 피해망상과 관련 있다는 경찰 입장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대책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 왜 갑자기 이런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을까요?

"범죄의 원인에 대한 여러 조사가 앞으로도 많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3년간 청년·청소년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봤는데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오래 하면서 누군가는 외롭고, 절망하고, 또 누군가는 분노를 키워왔다고 봅니다. 이분들을 빨리 찾아서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게 아닌지 우려도 있습니다."

- 코로나와 흉기 난동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외국의 연구들도 코로나의 첫 번째 위기는 코로나 자체로 인한 사망, 그다음엔 의료 서비스의 과부하로 인한 사망, 세 번째는 만성질환·정신질환 치료 접근성의 저하, 네 번째 파고(4th waves)가 오히려 코로나는 지나갔는데 정신 건강의 문제, 자살 문제, 소진의 문제, 사회적 경제 문제 등이 축적된 게 지나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도 그런 상황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일본도 예전에 이런 일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2003년 일본에서 자살한 사람 수가 3만 명을 넘으면서 자살률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2008년엔 아키하바라 사건이라고 해서,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후 30여 건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외로운 늑대'라고 불리는 고립된 테러리스트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뒤에는 절망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 (사안을) 보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는 좋은 표현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서현역 역사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 보안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 서현역 역사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 보안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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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흉기 난동 범죄'를 같은 맥락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견해도 있던데, 어떻게 보세요?

"당연하다고 봅니다. 정신질환은 중증과 경증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증 정신질환의 특성 중 피해망상이나 환청 같은 것이 심할 때는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또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현역 사건 같은 경우, '나를 스토킹 하는 조직이 있다. 전파무기가 관련됐다'고 하는 건 피해망상을 시사하는 소견입니다.

그런데 중증 정신질환이 악화되면 사실 자살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또 주변이 다쳐도 대게 가족이 다칩니다. 그러나 이번 같이 무고한 시민을 공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데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화가 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 중증 정신질환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암이 있는데 그 누군가가 치료를 안 받겠다고 하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죠. 그런데 의학적 질환 중 이 자유가 예외되는 질환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중증 정신질환이고 다른 하나는 감염성 질환입니다. 감염 질환과 같이 자신과 타인을 다치게 할 수 있을 때의 정신질환은 일단 치료부터 받게 해야 합니다."

-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흉기 난동' 같은 범죄를 어떻게 구분하죠?

"정신질환과 관련된 범죄도 다양한 경우가 있습니다. 범죄자가 감형을 목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겠고요. 한편으로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의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별도 원인이 있어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환청·망상 등에 의한 행동에 의해 폭력행위가 발생했다면, 정신질환 범죄라고 할 수 있겠죠. 또 '방치된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겠죠.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범죄와는 매우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 언론은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 범죄가 있긴 한가요?

"개인적인 의견인데 '묻지마 범죄'라는 것은 별로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로 들릴 수도 있어요. 어떤 원인이 분명히 있겠죠. 요새 '이상 동기 범죄'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지만 다르게 용어를 정립하고, 관련 사회적 조사 연구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최근 이야기 나오는 것이 '사법입원제'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저희는 사법입원제를 '정신질환 관련 범죄가 있을 때 위험하니까 다 가둬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제대로 될 수도 없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대부분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은 알아서 치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또 본인이 주저하면 가족들이 설득해서 함께 오기도 하고요. 문제는 정도가 심각한데 본인이 거부하는 경우, 또 가족이 연로하거나 따로 살거나 혹은 없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판사가 판단해 자해 혹은 타해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 진찰을 받게 합니다. 진찰 결과에 따라 경증이면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고, 심각하면 입원도 시키겠지만 훨씬 큰 비율로 외래 치료를 받도록 지역사회 치료 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걸 판사가 하는 나라가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인데요. 이것을 '사법입원'이라고 합니다. 호주·영국은 별도의 국가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이 합니다.

우리나라엔 본인은 물론 가족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자해·타해 위험이 있어도 무슨 사고가 나기 전엔 아무런 조치를 못 하는 경우가 현장에 너무 많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나라 현황에 맞게 법·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죠. 이런 인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이고요. 사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뒤 '정신질환이 있다'면서 비난만 하면 편견이 깊어지고, 결국 정신질환이 있는 다른 분들이 더 숨습니다. 괴로워합니다. 제때 제대로 도움과 치료를 받지 못하면 오히려 사고는 더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편견과 차별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는 사회로 나가는 것이 모두가 안전하고 또 질환으로 인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처벌 강화보다는 빠른 치료가 우선"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대구 중구에서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대구 중구에서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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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발생 후 살인 예고 게시물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더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거 같습니다. 살인 예고를 올리는 건 모방심리가 작용하는 걸까요? 

"일부는 개인적 일탈 수준도 있을 수 있고, 또 일부는 심각한 수준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고도화된 사회에선 소셜미디어로만 소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외로움부 장관'을 만들기도 했어요. 일본도 고립·고독사 대책실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우리나라도 소셜미디어로만 소통하면서 고립되는 사람들을 위핸 대책도 포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 정부는 흉기 난동 사건 같은 사건에 대해 사형제 부활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등 처벌을 강화하려는 모양새입니다. 효과가 있을까요?

"분명 처벌을 강화해서 막을 수 있는 범죄가 있을 겁니다. 그런 건 법률가들이 판단할 일이라 봅니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과 관련한 범죄는 처벌을 강화해 범죄를 예방하는 건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히려 빨리 발견해서 치료하는 게 더 사회적으로 이득입니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폭력적인 정신질환 있습니다. 소아성애 경우에 한정해 해외에서도 사법 정신 체계에서 다룹니다. 사후 치료감호라고 해서 이런 사람들은 양형 기간이 끝나도 사회로 돌려보낼지 말지를 새로 판단합니다. 그만큼 또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증 정신질환은 이게 망상·환청에 의한 것인데 처벌 강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보다는 빨리 치료할 수 있는 쪽으로 시스템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으로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합니다. 예전엔 그래도 '사람 많은 곳은 안전해' 같은 인식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때에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충격적인 사고에 많은 분이 불안, 우울, 분노를 호소하시는데 당연한 반응으로 보이고요. 동시에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 정말 위험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위협의 '원인'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그래야 대책도 세울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원인을 충분히 조사하고 과학적인 대책을 세워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에 뭔가 분노와 절망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차별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태그:#백종우, #흉기난동, #사법입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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