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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을 통해 르완다,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와 아체의 내전 지역 등에서 벌어진 전쟁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송강호 박사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 기지반대 운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군사기지가 없으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도 현저히 낮아진다고 믿어서였다.

그걸로도 부족해 공통점이 많은 제주-오키나와-대만을 잇는 길을 만들기 위해 6월 1일부터 100일간 평화 요트 항해를 진행하며 여러 일본의 도시들을 거쳐 지난 18일 오키나와에 도착하였다. 

소식을 들은 오키나와기독교협의회(OCC)에서 지난 26일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는 공평해 프로젝트의 선장이자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의 저자이기도 한 송강호 박사를 초대하였다. OCC는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빨간색 옷을 입은 가나이 목사, (오른쪽으로) 송강호 박사, 통역을 해준 이토만시 교회 유종우 목사, 시마 헤노코평화그림작가, 시로마 에츠코 세계기도회여성회대표, 후텐마 침례교 카미야 타케히로 목사, 성공회 우에하라 에이쇼 상, 사회복지단체 하마타 히로츠구 이사장, 이토스 노부코 상, 인도에서 온 디쏘자 가톨릭 교회 신부, 오모리 세츠코 상, 후미코 센세 상, 카와고시 상
▲ 강연에 참석한 오키나와 그리스도인들 빨간색 옷을 입은 가나이 목사, (오른쪽으로) 송강호 박사, 통역을 해준 이토만시 교회 유종우 목사, 시마 헤노코평화그림작가, 시로마 에츠코 세계기도회여성회대표, 후텐마 침례교 카미야 타케히로 목사, 성공회 우에하라 에이쇼 상, 사회복지단체 하마타 히로츠구 이사장, 이토스 노부코 상, 인도에서 온 디쏘자 가톨릭 교회 신부, 오모리 세츠코 상, 후미코 센세 상, 카와고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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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키 교회의 가나이 목사는 다음과 같은 강연 기획 취지를 밝혔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WCC 총회에 갔다. '섬들의 연대(Inter-island solidarity for just peace)'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있었는데 처음 듣는 내용이 많았다. 하와이에서도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이 투쟁하는 사례를 알게 되었다. 오키나와 또한 일본의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 연대를 하는 주축으로서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이번에야 워크숍의 주제를 송강호 박사가 제안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당시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감옥에 가 있는 상태였다. 그 이후 10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면서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같이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 박사는 신학생으로서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목사는 되지 않았다.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전쟁을 부추기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평화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선교사들을 많이 보낸 나라로 미국과 한국을 꼽았다. "그리스도인들이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쟁터에서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라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40년 동안 고문과 감금, 살해 등을 비일비재하게 당하며 독립운동을 해왔다. 2005년 아체의 쓰나미 피해자들을 만나러 갔던 그해에 아체 게릴라 부대와 인도네시아가 평화 협정을 맺으며 많은 수의 총들을 한 곳에 모아 함께 자르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성경 속 구절이 떠올랐다. 이사야의 예언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것"이라며 감동이었다고 회상했다. "적대적 관계였던 둘 사이의 평화 협정을 맺기까지 핀란드-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단체 AMM(Aceh monitoring mission)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창의적이고 예언자적인 생각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제주 강정마을에는 인상 깊은 문구의 현수막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군대와 전쟁을 반대한다'라는 구절인데 그 이유는 바로 정신대 할머니들이 보낸 글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잘 아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우리는 그분들이 말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신앙과 양심이 자연을 파괴하고 만든 군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며 감옥에 5번을 갔고, 합쳐서 3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평화운동에 대한 깊은 성찰은 교회가 아닌 전쟁터나 감옥에서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에 오키나와에 처음으로 왔다. 오키나와 사람들 중에는 미군 기지가 나가길 원하는데 일본이나 제주도로 갔으면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음) 그때 느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만 군사기지를 쫓아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면서 제주 비무장 섬 운동을 시작했다. 제주, 오키나와, 대만 모두 군사기지가 없는 비무장 평화의 섬을 만들어야 한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국가에 있는 모든 군사기지를 없애는 건 힘들고, 몽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섬은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오키나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한다. 오키나와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섬들의 연대'가 제주-오키나와-대만뿐만 아니라 확대하여 전 세계 섬들이 모여 얘기하고, 듣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해결하려 노력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 반드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교회가 힘을 합쳐서 평화를 가르치고 용기 있는 세대들을 길러내는 시도를 해야 한다. 오키나와에는 온 생애를 바쳐서 평화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많다. 단 한 명도 괜찮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평화 교육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헤노코에 '쿠션(군사기지 반대하는 방문객들을 위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지낼 수 있는 기관)'에서라도 시작할 수 있다. 강정마을에는 세계평화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과 평화 공부를 하는 곳이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군사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윗세대들을 보며 평화의 정신과 삶을 배우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오키나와 남부 지역 이토만 시는 태평양 전쟁 때 희생자들이 많은 지역으로서 '오키나와평화기념관'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유골들이 발굴되고 있다.
▲ 이토만 시에 있는 위령탑과 바다를 그린 시마 상 오키나와 남부 지역 이토만 시는 태평양 전쟁 때 희생자들이 많은 지역으로서 '오키나와평화기념관'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유골들이 발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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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자 관련 소감과 질문이 나왔다. 오키나와에서 4년간 살면서 헤노코 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시마 상은 "강의를 들어보니 헤노코에서 충분히 싸웠다고 생각했지만 '연대' 부족했다 반성하게 됐다. 기독교의 연대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후텐마 침례교의 카미야 타케히로 상은 "이곳의 기지 문제는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뿌리 깊은 차별 문제이다. 밀접한 생활 문제도 엮여있다. 이미 미군 기지가 들어선 지 70년이 넘어서 기지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조카들이 생겼거나 미군 기지 관련 일하는 친구들도 늘어나면서 점점 이런 주제로 대화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을 보고 큰다'

가나이 목사는 "꽤 오랫동안 평화 운동에 열정을 가지고 임해왔지만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을 알리고, 초대하고, 키워나갈지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라며 "'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을 보고 큰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어른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충분하지 못했다는 걸 느낀다. 오늘 강의를 들으니 1명이라도 좋으니 한국의 젊은 활동가를 오키나와로 초대하고 우리도 보내는 것이 시급한 것 같다"라고 강연 내용에 힘을 실었다. 

태그:#송강호, #그리스도인의직무유기, #개척자들, #공평해프로젝트, #오키나와기독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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