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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데에는 부모인 저희의 불찰과 잘못이 있었음을 자성하고 있습니다. 2019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였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부인 정경심씨와 함께 자녀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해 공개 사과문을 내놨다. 최근 검찰이 조 전 장관 자녀의 기소를 검토하며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이례적"이지만 "검찰의 요구를 존중"한다며 사과문을 공개한 것이다.

자녀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막아보려는 의도일지라도 사과라는 행위 자체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본인 말마따나, 그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2019년 8월 말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며 자녀 문제에 대해 처음 대국민 사과에 나선 이후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왔다.

장관 재직 시절은 물론 사인이 된 이후 <조국의 시간> 발간이나 지난 대선 직후, 재판 출석 시 수차례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사과고 책임은 책임이다.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는 지난 6월 의사 면허를 반납했다. 또 최근 부산대 의전원에 이어 고려대를 상대로 냈던 입학 취소 관련 소송도 취하했고, 조 전 장관 아들도 연세대 석사 학위를 반납할 뜻을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7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자녀 입시비리 사건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준비한 입장문을 통해 "다시 한번 송구하다"고 밝힌 뒤, "자녀들이 문제된 서류와 연결된 학위와 자격을 모두 포기했다. 아비로서 가슴이 아팠지만 원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만신창이 가족을 챙기며 과거와 현재를 성찰 또 성찰 중"이라며 "항소심에서 보다 낮은 자세로 진솔한 소명을 하겠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7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자녀 입시비리 사건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준비한 입장문을 통해 "다시 한번 송구하다"고 밝힌 뒤, "자녀들이 문제된 서류와 연결된 학위와 자격을 모두 포기했다. 아비로서 가슴이 아팠지만 원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만신창이 가족을 챙기며 과거와 현재를 성찰 또 성찰 중"이라며 "항소심에서 보다 낮은 자세로 진솔한 소명을 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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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사과문에서 '법적·사회적 물의가 일어난 사안인 만큼 자성하는 차원에서 다 버리고 원점에서 새 출발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아들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1년이 추가된 정경심씨의 가석방을 불허했다. 그에 앞서 서울대는 2심 재판 중인 조 전 장관의 교수직을 파면했다. 의사 자격을 내려놓은 조민씨는 유튜버가 됐다.

사과는 사과고 책임은 책임이다. 조 전 장관 역시 자녀들을 포함해 가족이 "도의적·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조 전 장관 일가족 수사를 시작으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임 대통령과 다른 선택적 침묵

김건희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 일가족의 비리 의혹이 연일 언론과 포털을 도배 중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에 더해 대선 전부터 제기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김 여사와 최씨 일가는 양평에 축구장 5개 규모의 땅을 소유하며 2000년대부터 투자에 최적화된 형태로 지목 변경을 추진해왔다. 고위직 검사 출신 사위의 개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여기에 지난 21일 최씨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개인 비리 혐의로 법정 구속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여기서 끝일 거라 짐작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특히 양평 땅은 윤 대통령 재산공개 목록 중 배우자 소유로 최상단을 차지하는 항목이다(관련기사: 윤 대통령, 76억 재산신고... 대부분 김건희 여사 소유 https://omn.kr/20fcm). '(장모가) 10원 한 장 피해를 끼친 적 없다"던 윤 대통령 본인 역시 양평 땅 의혹 앞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앞서, 김건희 여사의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숍 방문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집중 호우 참사가 발생했다. 예견된 호우였다. 사망자가 속출하던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해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을 외쳤다. 귀국 후 사망자만 47명이 발생한 대참사 앞에서 윤 대통령은 질타와 문책만을 거듭했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방기한 '무정부 상태'란 한탄이 터져 나올 만 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참사 책임은 도의적 영역일 수 있다. 대통령 내외 소유의 양평 땅 관련 의혹도 아직 의혹 단계다. 반면 장모 최씨의 법정구속은 차원이 다르다. 사법부는 윤 대통령이 강조하고 또 강조해 온 법과 원칙, 공정과 거리가 먼 '죄질이 나쁜' 범죄 행위라 판단했다. 민주화 이후 집권한 전임 대통령 중 그 어느 누구도 윤 대통령처럼 친인척 비리 앞에서 당당한 전례는 없었다.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 항소심 선고 앞둔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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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남 김현철씨가 기업인들로부터 수십 억 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차남 김홍업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가장 많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대통령으로 꼽힌다. 대구 지하철 참사, 제주4.3, 대통령 탄핵 사태, 경찰 과잉 진압으로 인한 농민 사망 등 본인이 연루됐거나 되지 않은 사안은 물론 임기 초반 터진 형 노건평씨의 부동산 의혹에 대해서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촛불 시위가 거세지자 두 차례 사과에 나섰고, 세종시 이전 계획 철회 및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등 대선 공약 철회에 대해 사과했다. 또 임기 후반 형 이상득 의원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근혜씨 역시 태블릿 PC 비선실세 의혹이 일자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선 바 있다.

장모 최씨의 법정구속 앞에 침묵하는 윤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했던 '군사독재' 박정희의 시대, 전두환의 시대로의 퇴행을 꿈꾸는가. 지난 2월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판 결과가 나온 직후 대통령실이 세 차례나 입장문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사법부 판단은 언급하지 않겠다"는 작금의 태도는 선택적 침묵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무시당하는 국민들

윤 대통령은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던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취임 전 비리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던 걸까.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의 출발은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친·인척 비리 감시에 소홀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처가 관련 의혹 제기에 "증거가 있습니까"라거나 "기소하면 될 것 아니냐"며 항변하던 검사 시절과는 위치와 권한, 책임 자체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비겁하거나 오만하거나, 그도 아니면 국민을 무시하거나. 최씨 구속 직후 나흘이 흘렀다. 윤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난무한다. 쌓일 대로 쌓인 악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선 손쉽게 회피 중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럴수록 국민의 신뢰만 떨어질 뿐이다.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자처한 악재인 만큼 결자해지의 자세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 비상주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 비상주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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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의 장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선언에서 확인되듯, 윤석열 정권의 오만함도 지적된다. '바이든 날리면' 사태 이후 현 정권은 우호적인 언론 보도와 당·정의 고소·고발에 이은 검찰권을 무기로 논란과 의혹을 잠재워 왔다. 엇나간 해명도 야당과 일부 언론을 향한 공세를 통해 '가짜뉴스'로 만들고,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은 정당이나 단체, 조직을 막론하고 이권 카르텔, 좌파 세력으로 몰아가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해 왔다. 핵심 지지층만을 만족시키는 오만한 정치다.

그 오만함이 친·인척 비리 앞에서도 힘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재차 강조하듯, 민주화 이후 어느 전임 대통령도 친·인척 비리 앞에 비판 여론을 이겨낸 전례는 없다. 윤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국민의 반감만 키울 뿐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 전체를 무시하는 독선적인 통치자 이미지를 굳힐 생각이 아니라면 책임지는 자세로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등에 함께 게재됩니다.


태그:#윤석열, #김건희, #최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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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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