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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차 스물네 살 교사가 정신적 고통 속에 스러진 초등학교 안 담벼락에 수많은 추모 편지와 헌화가 곳곳에 놓여 있다. 가히 그 슬픔과 분노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컸음을 알게 해준다.
▲ 새내기 교사의 죽음 추도하는 학교 안 편지글과 헌화 2년 차 스물네 살 교사가 정신적 고통 속에 스러진 초등학교 안 담벼락에 수많은 추모 편지와 헌화가 곳곳에 놓여 있다. 가히 그 슬픔과 분노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컸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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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된 지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 폭력과 학부모 악성 민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내기 교사의 죽음 이면에 한없이 추락한 교권의 실상이 그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옆 추도 글은 다양했다. 어느 선배 교사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글을 남겼다. 다른 교사는 "교권이 이 지경이 되도록 교육부는 무엇을 했냐"고 질타했다. 동료 교사와 후배 교사는 새내기 교사의 원통한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며 교육 현실을 변화시키겠다"는 다짐 글을 남겼다.
 
학교 안 담벼락에 새내기 교사를 추도하는 선배 교사, 동료 교사의 편지 글이 가득하다.
▲ 새내기 교사의 죽음 추도하는 편지글 학교 안 담벼락에 새내기 교사를 추도하는 선배 교사, 동료 교사의 편지 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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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차 새내기 교사의 죽음은 교육 현실을, 우리 사회를 절망하게 했다. 추도하는 마음은 슬픔과 분노를 넘어 교육 현실을 바꿀 거대한 힘으로 응축되었다. 특정 교육 운동단체가 주도해 조직을 동원해도 1천 명을 넘기기 어려운 게 지난 20년 동안 집회 양상이었는데 7월 22일 보신각 추도 집회는 자발적인 집회였음에도 수천 명이 운집했다. 모두 검은색 정장과 검은 마스크로 추도 분위기에 함께했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에서 새내기 교사의 죽음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발언들을 마구 쏟아냈다. 장예찬 국민의 힘 최고위원은 20일 당 최고위에서 진보 교육감들을 겨냥해 "몽상가 아닌 망상가"로 맹비난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일 페이스북에 "학생인권조례를 중시하는 진보 교육감들이 교권을 위해서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표현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 또한 21일 한국교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었다"고 비판했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한 걸음 더 나가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교권 강화를 위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해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바르게 세우겠다"고 밝혔다.

반면에 정의당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학생 인권 보호가 이번 사건의 원인인 양 얘기하는 것은 (중략) 타당하지 못하다"며 "인권의 중요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다"고 일갈했다. 스물네 살 새내기 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어떤 식으로든 진영 싸움으로 만들겠다는 가히 패륜적인 집념"이라고 개탄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교권과 학생 인권이 불균형한 것은 맞다. 그만큼 학생 인권이 향상된 측면을 마주한다. 모두 '학생 인권 조례'를 통해 교육 약자인 학생의 인권을 지켜낸 진보 교육감들의 수고의 결실이다. 다만 이번 비극적 죽음을 통해 드러난 학교의 속살은 교사의 교육 활동은커녕 교사의 인권조차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학생의 인권이 크게 신장된 만큼, 교사의 교권도 법과 제도를 통해 크게 신장시키고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렇질 못했다. 일부 정치권의 표현처럼 교권과 학생 인권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같은 파이를 두고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 교권의 파이가 작아지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요컨대 경기도 교육감의 인식처럼 "교권과 학생 인권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교사의 교육 활동을 방해하고 교권을 침해한 것을 넘어서서 교사의 인권조차 비참하고 무력하게 만든 교육 현실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악성 민원을 자행하는 이기적 학부모와 '어린이 학대 신고'를 악용하고 부추기도록 방치한 법과 제도 그리고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교사들을 나몰라라 하는 학교 관리자와 교육 관료들의 보신주의 행정 그 세 가지를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오늘날 교권이 한없이 추락한 현실은 무고죄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를 허용한 데 있다. 신고 당한 교사는 그 순간 완전 무장 해제되어 무력한 존재로 표적이 된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경찰 수사와 검찰 조사를 받으며 정신적 고통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한다.

교사에게 극심한 폭언을 하고 모욕을 준 학부모나 악성 민원인을 처벌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미국, 프랑스, 우크라이나, 태국처럼 무관용 원칙으로 형사 사건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난해 프랑스는 법 개정을 통해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이 최대 8일까지 결석하면 가해 학생 부모에게 최대 4만 5000유로(6천만 원 상당액)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한다. 피해 학생이 폭력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면 최대 징역 10년 형에 처하거나 벌금액이 15만 유로(2억 원 상당액)로 3배 가까이 크게 증가한다.

올해 4월 4일 경기도 구리시 행정복지센터 30대 초임 공무원이 악성 민원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게 과거에 비해 신장된 시민의 기본권 때문에 초래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30대 공무원의 인격에 모욕을 주며 악다구니를 쓰는 민원인을 모욕죄로, 명예훼손죄로 강력히 형사 처벌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다.

파출소 경찰관들이 겪는 애환도 마찬가지다. 폭언·폭행을 일삼는 불량 시민들을 엄히 처벌할 법적 근거를 하루빨리 제정하는 게 급선무다. 마찬가지다. 음주운전으로 살인을 저질러도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되는 게 현실이고 성폭력 범죄 또한 초범의 경우 거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게 또한 현실이다. 처벌이 너무 미약해 똑같은 불행이 반복되는 현실이다.
 
참사의 원인이 학생 인권에 있는 게 아니라는 교육부 비판 편지글이 교내 담벼락에 붙어 있다.
▲ 교육부 비판 편지글 참사의 원인이 학생 인권에 있는 게 아니라는 교육부 비판 편지글이 교내 담벼락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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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참사의 원인을 '학생 인권 신장'에서 찾는 것은 매우 잘못된 진단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학생 인권이 크게 신장되었다고 교권이 상대적으로 추락하는 게 아니다.

힘없는 교사들이 속앓이하다 더 이상 원통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새내기 교사의 죽음을 의미 있게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내기 교사의 죽음은 못난 어른들, 못난 사회가 초래한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자존감과 인권, 그리고 교권을 확실히 지켜낼 수 있도록 강력한 처벌 규정을 담은 법 제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태그:#학생인권, #교권, #교사의 인권, #교사의 생존권, #어린이 학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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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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