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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비건을 지향했던 나는 점점 더 맘 편히 TV를 보기 어려워졌다. 소위 먹방이 어찌나 많은지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피할 수 없었다. 육식의 진실을 깨닫게 될수록 고기가 더 이상 음식으로만 보이지 않아 괴로웠다.

그렇게 TV와 멀어지던 나는 시시하게도, 결국 페스코가 되었다. 페스코는 육류는 먹지 않지만 해산물과 유제품, 알류는 먹는 채식인을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동물과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한다는 점에서 페스코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며 결코 시시하지 않다. 육식의 진실과 기후위기를 알지만 외면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이미 아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고등어도, 오징어도 동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채식 메뉴를 찾아다니거나 채식으로 조리해 주십사 부탁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쳐 페스코가 되었으니 나 스스로가 시시하게 여겨진 것이다.

뿐인가. 일종의 타협이었으나 때로 맛을 탐닉하기도 했다. 익숙한 음식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곤 돌아서면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되면 육류에 대한 장벽 역시 낮아져 결국 '해봤더니 다 의미 없더라'는 식의 무용론이나 펼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를 경계했다.

날 당황시킨 국회의원들의 먹방
 
국민의힘 과방위 소속 장제원(위원장), 박성중(간사), 김영식, 윤두현, 허은아, 홍석준 의원이 3일 오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관련 ‘민주당 괴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산업을 돕겠다며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해 횟집 오찬을 했다. 장제원 의원이 수조에 들어 있는 광어를 집어들고 있다.
 국민의힘 과방위 소속 장제원(위원장), 박성중(간사), 김영식, 윤두현, 허은아, 홍석준 의원이 3일 오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관련 ‘민주당 괴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산업을 돕겠다며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해 횟집 오찬을 했다. 장제원 의원이 수조에 들어 있는 광어를 집어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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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온 음식들을 감사히, 즐겁게 먹어야 하건만 이렇게 어떤 식사는 내게 길티 플레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에서마저 먹방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증명하고자 해산물뿐만 아니라 수족관 물마저 떠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뜨끔하기도 했다. 나도 요즘 해산물 섭취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오염수가 방류되고 나면 결코 해산물을 먹지 않겠다는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그전에 아쉽지 않을 만큼 먹겠다며 횟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는 날이 많아졌다. 매번 나는 즐겁게 먹고 뒤돌아 괴로워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한다.

나는 동물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고문이라도 당하듯이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공장식 축산 하의 동물에 대한 연민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크다. 또한 어마어마한 환경오염도 걱정스럽다. 바다 동물 역시 이 맥락에서 다를 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렇다고 건강을 해치자는 것이냐며 영양 불균형에 대해 우려하는 반론이 제기되곤 한다. 나 역시 건강을 해치는 것이 두려운 마음과 핑계를 찾고 싶은 마음이 합해져 그간 관련된 책들을 여럿 보았다. 그때마다 고기로 인한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것, 식물만으로도 충분한 영양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안이든지 반론은 언제나 있지 않던가. 의견이 아닌 사실만을 말하며 객관성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과학에서조차 말이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이 갈리는 것도 그 예일 것이다.

생태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내 삶과도 관련되어 있기에 무작정 모른 체할 수는 없다. 결국 내 생각이 틀리거나, 거시적인 흐름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나름대로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력감에 지지 않고 내 삶과 내 가족과 내가 속한 사회를 사랑하는 행위로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걱정스럽다. 찬반으로 나뉘는 의견들을 살펴보았지만 우려만 더 커졌다. 그럼 이제 나는 어차피 마음 한편에 찜찜함을 갖고 먹던 해산물, 먹지 않으면 간단한 것일까. 친구들에게 이참에 같이 비건이 되자고 강하게 주장하면 되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늘 배우지 않았던가. 바다와 육지, 식물과 동물이 모두 순환한다고. 우리는 그 일부라고. 비가 내리는 땅에서, 소금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봐도 그 말만은 진실인 것 같다.

그러니 오염수 방류는 수산업계만의 문제도, 특정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모든 시민이 함께 지켜봐야 할 일이다. 설령 그것이 진정 무해할지라도,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대체 무엇이기에 정부 차원에서 먼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차피 남의 나라 일이라고. 과연 그럴까. 리베카 솔닛은 '순진한 냉소주의'를 경계하자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오히려 공공의 삶과 담론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이라 한들 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역시 솔닛의 말을 인용하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335쪽

태그:#오염수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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