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트사이렌> 포스터

영화 <나이트사이렌> 포스터 ⓒ ㈜풍경소리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진 학대와 자신의 실수로 동생을 절벽으로 밀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슬로바키아의 외딴 시골 마을을 떠났던 샤를로타(나탈리아 게르마니 분)는 유산 상속과 관련한 시장의 편지를 받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샤를로타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경계심으로 가득하고 오직 약초를 연구하는 미라(에바 모레스 분)만이 그녀를 따뜻하게 대한다. 

과거 자신이 살았던 집에 누가 불을 질렀고 이웃에 살면서 '마녀'로 취급받던 집시 여성 오틸라(이바 비토바 분)는 어떻게 되었는지 등 동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샤를로타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은 점차 커진다. 급기야 마을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자, 주민들은 샤를로타를 저주를 부르는 '마녀'라 몰아가기 시작한다.

민속 공포를 뜻하는 '포크 호러(Folk Horror)'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곳에서 종교의식이나 미신, 혹은 공동체를 지배하는 집단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발생하는 공포를 그리는 장르다. 1970년대를 전후로 호러 영화의 하위 장르로 등장한 포크 호러는 영국을 중심으로 <심판>(1968), <사탄의 피부>(1971), <위커맨>(1973) 등이 만들어지며 10여 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1980년대에 접어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2010년대에 장르의 부활을 알린 <킬 리스트>(2011)를 시작으로 <더 위치>(2015), <곡성>(2016), <우는 여인>(2019), <미드 소마>(2019), <랑종>(2021), <멘>(2022) 등이 나오면서 포크 호러는 다시금 세계 호러의 주요한 흐름으로 부상했다. 특히 <더 위치>, <미드소마>, <멘> 같은 포크 호러는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만들어지며 관심을 모았다.
 
 영화 <나이트사이렌>의 한 장면

영화 <나이트사이렌>의 한 장면 ⓒ ㈜풍경소리

 
"유럽의 어느 외딴 마을에선 지금도 신화와 중세 미신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나이트사이렌>(2022)은 비밀을 안고 외딴 고향 마을로 돌아온 한 여자가 어린 시절에 죽은 동생의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폐쇄적인 마을의 집단적인 미신과 광기, 폭력을 마주한다는 내용의 포크 호러 영화다. 연출은 슬로바키아 출생으로 HBO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방송사와 협업하며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는 테레자 느보토바 감독이 맡았다.

강간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를 통해 여성을 희생시키는 가부장적 사회 시스템을 고발한 데뷔작 <필시>(2017)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찬사를 받은 테레자 느보토바 감독은 <나이트사이렌>에서도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는 "많은 전통이 현상 유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이트사이렌>은 "자유에 관한 영화"라 말한다.

7개 챕터('도착', '마을', '야생의 아이', '오틸라', '한여름 밤', '자매', '마녀들')로 구성된 <나이트사이렌>은 이질적인 것을 마주한 폐쇄적 공동체의 두려움, 편견, 광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마을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을 섬겨야 하고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여성의 몸은 오로지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결코 종교적, 전통적으로 '허용된' 여성, 아내, 엄마를 벗어나선 안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 저항하며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해방과 욕망을 드러내고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여성인 샤를로타와 미라는 공동체의 위험 요소다. 이들은 샤를로타와 미라에게 가하는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사회적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마녀'라 낙인을 찍는다. 실제 역사에서 수 세기 동안 '마녀'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지속시키는 수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나이트사이렌>의 한 장면

영화 <나이트사이렌>의 한 장면 ⓒ ㈜풍경소리

 
여성 혐오, 폭력, 억압이 지배하는 <나이트사이렌> 속 폐쇄적인 산골 마을은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이나 현대식 의류가 아니라면 자칫 중세로 오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에 갇혀 있다. 마을이 위치한 계곡을 중심으로 한 풍경 장면을 보면 고속도로가 근방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문명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건 곧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여성 혐오나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성폭력이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문제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것이 '마녀'를 소재로 삼았던 <더 위치>를 포함한 다른 마녀 영화들과 <나이트사이렌>이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나이트사이렌>은 여성의 억압된 욕망을 초현실적인 화법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형광으로 온몸을 칠한 사람들이 숲에서 난교를 벌이는 환상의 장면은 샤를로타와 미라의 억압된 성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숲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기능한다. 하나는 진보적인 사상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고립과 무지의 '벽'이다. 다른 하나인 자연은 어머니의 힘, 바꾸어 말하면 여성의 힘으로 내일로 전진하려는 여성들의 유대를 목격하고 보호하는 '울타리'로 기능하며 신비스러운 저항의 기운을 만든다. 이렇듯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로마 신화의 새벽과 햇살의 여신 이름인 아우로라에서 유래한 '오로라'를 뜻하는 영화의 원제 < Světlonoc >가 무척 어울린다.

<나이트사이렌>은 현대성 바깥에 있는 전통과 신념을 보여주는 포크 호러의 훌륭한 전통을 따르되 가부장제의 족쇄와 사회적 편견, 여성 혐오와 폭력 같은 오늘날 유효한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포크 호러에 대한 신선한 접근이 돋보이는 작품이자 여성주의적 시각을 더한 흥미로운 페미니즘 영화다. 제75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오늘의 작가' 부문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고, 제55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감독상 특별언급, 여우주연상 특별언급, 장편 부문 멜리스상을 수상했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드레날린 라이드' 섹션에 공식 초청작. 7월 말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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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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