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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좁고 더운 부엌이었다. 4월 중순만 넘어가도 가스 불이 뱉어내는 더운 공기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간단히 국수만 삶으려 해도 줄줄 흐르는 땀에 숨이 막혔다. 결국 가스레인지를 인덕션 전기레인지로 바꾸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 결정은 여러 가지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가스를 따로 집에 들이지 않아도 돼 안전에 대한 걱정도 줄었다.

그런데 다른 걱정이 생겼다. 걱정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걸까? 이번엔 전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전기를 쓸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대부분 화석연료를 이용해 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최소한으로 쓰고자 해도 전기는 일상의 곳곳에 있었다. 이 순간에도 나는, 전기를 쓰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지 못한다. 집도 땅도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보조금이 있어도 그림의 떡이다.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해 서류를 갖추면 된다고는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일을 허락할 집주인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 몇 달 전 이장 회의 자료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좀 분개했던 것 같다. 매년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비 지원금이 지자체를 통해 집행되는데 모두 태양광업자들이 받아 가고 있었다. 더구나 농촌에서 대규모로 설치되는 태양광 설비가 주민들에게 흉물스러운 혐오 시설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에너지의 생산에서 사용까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함께 가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 주민이 주인인 마을발전소에서 주민 연금을?
ⓒ 이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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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재생에너지 운동본부' 최재관 대표의 '재생에너지로 주민연금을' 강연이 농촌 소도읍인 전북 진안의 '월간광장'에서 열렸다.

최재관 대표는 강연을 시작하며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이슈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가장 중요한 곳이 농촌이라고 말했다.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의 동의와 협력이 있어야만 탄소중립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에 만들어지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90%가 사실은 농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농촌 주민들이 제일 반대하고 제일 싫어하는 것도 재생에너지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후위기 문제도 재생에너지 문제도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촌 주민들은 왜 송전탑을 반대하고 재생에너지를 혐오하는 것일까?

대표적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이 농촌의 경관과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해 온 데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업자들이 독식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환경보전과 농촌 주민들의 입장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 없이 재생에너지 보급에만 열을 올린 정부의 탓이 크다.

두 번째 이유는, 농업이든 에너지든 농촌을 희생해서 도시를 부양하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혜택은 도시가 누리고 손해와 고통은 농촌이 감수하고 있는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농촌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농민들의 시름과 고통이다. 기후의 변화에 따라 농사짓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언급하는 기사들은 많다. 그런데 농민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이기만 할까?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식량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이 무려 24%를 차지하고 있다(유엔식량농업기구, 2010년 보고서).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농촌과 농업이 바뀔 부분도 많다는 말이다.

난방 문제도 있다. 가스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현재의 방법은 지속할 수 없을 뿐더러 더 이상 저렴하지도 않다. 지난 겨울 난방비 폭탄 같은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리가 없다. 더군다나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2025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다. 2년 남았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미뤄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태양광 발전을 통한 이익을 농촌의 주민들이 공유할 수는 없을까?

최재관 대표가 제안하는 방법은 마을공동체 에너지협동조합, 이른바 기본소득형 공동체 태양광 발전 모델이다. 신안군의 사례가 있다. 조합비를 내고 분기별로 태양광 발전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주민들이 배당받는 방식이다. 집주인이 아니어도 땅 주인이 아니어도 조합에 가입하고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여기에 업자를 통하지 않고 주민들과 농민이 주인이 되는 방식은 어떨까? 그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여주시 구양리와 대신3리 햇빛두레발전소가 있다.

그런데 농지를 태양광 패널로 다 덮어 버리면 농사는 어떻게 짓나? 기후위기는 식량 위기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는 '영농형태양광발전'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는 식량 농사를 짓고 패널 위로는 햇볕 농사를 짓는 방법이다. 가능하냐고? 실험을 통해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한다.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도 기존의 80% 정도의 수확량이 보장된다고 한다.

강연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독일 상트페트마을의 '마을 공동 난방 시스템'이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마을 공용 보일러를 설치하고 나무나 농사 폐기물을 태워 온수를 생산해 이를 각 가정에서 받아 이용할 수 있다. 부러웠다. 축산분뇨와 음식물 찌꺼기를 태워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마을주민의 참여로, 이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영농형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법이 바뀌어야 한다. 현행법은 논과 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재관 대표는 이를 마을공동체가 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하자는 법안이 이미 발의됐다고 한다. 그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영농형 태양광 발전을 허용하면 기획 부동산들이 들어와 몇만 평의 농지를 산 다음 명의를 쪼개 투자자들에게 분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동체가 임차인과 땅 주인의 이익을 함께 보장하며 마을주민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가 모든 행위를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지주와 소작인 간의 문제, 마을의 경관을 해치는 문제 등이 없도록 마을주민들의 동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업자들의 투기성 사업을 막기 위해 그들(외부업자들)은 할 수 없게 하고 농촌 주민(마을공동체)은 할 수 있게 하는 법안과 조례 등의 제정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태양광 발전은 마을공동체의 통제하에 농촌 주민 모두가 평등하게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남은 문제들

규제와 조례로 업자들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주민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마을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마을공동체의 통제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을 민주주의가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민자치회의 설치가 시급하다.

그래도 방향은 마을 에너지 자립과 태양광 발전으로 발생한 이익을 주민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예산은 어떻게 하냐고?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활용해볼 수도 있고 축적된 마을 기금을 사용할 수도 있고 마을공동체 이름으로 장기저리 융자를 받을 수도 있다. 뜻이 있으면 길은 있다. 방법은 찾으면 있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광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월간광장, #주민참여재생에너지, #진안군, #태양광발전, #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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