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년차 야구팬이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막 빠져들던 때 내가 응원하던 팀은 지는 것을 몰랐고, 정규시즌 1위를 거쳐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 평생 야구를 벗어날 수 없다.

그 뒤로 종종 야구장을 찾았다. 그러나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든 건, 야구장을 빠져나올 때 보았던 쓰레기들 때문이었다. 야구장에서 음식을 먹은 후 나온 일회용 식기들, 이런저런 응원용품들이 뒤엉켜 버려진 모습. 내가 좋아하는 야구가 내가 살아가는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우연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야구팬을 만났다. 지속가능한 프로야구가 될 수 있도록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야구팬들에게 서명을 받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이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크보플'(케이비오팬즈포플래닛-KBOFANS4PLANET)의 시작이다.  

K-POP 팬들이 만든 기후행동 단체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K팝 팬들이 전 세계적인 문제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설한 플랫폼)을 오마주해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5명의 활동가(크보플 베테랑)와 8명의 지지자(크보플 루키)가 함께 하고 있다.

KBO 앞에서 요구서 낭독도
 
 2022년 11월, KBO 앞에서 지속가능한 프로야구를 위한 요구서를 낭독했다.

2022년 11월, KBO 앞에서 지속가능한 프로야구를 위한 요구서를 낭독했다. ⓒ 전지은

 
크보플은 지난해 11월 1천 800여 명으로부터 '지속 가능한 프로야구'를 위한 서명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야구팬들이 우리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야구장 쓰레기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팬, 다회용기 시범사업 기간 잠실야구장에서 다회용기를 이용한 경험이 고무적이었다는 팬,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이 환경을 위한 노력에 뒤처진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는 팬등. 우리는 야구팬들로부터 받은 서명을 KBO와 10개 구단에 전달했고, KBO 앞에서 요구서를 낭독했다. 
     
구단은 물론 KBO측으로부터 답은 오지 않았다. 다만 지난 4월 프로야구계가 환경부와 '일회용품 없는 야구장 조성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올 시즌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요구하기로 했다. 첫 시작은 '전구장 다회용기 도입'이었다. 지난해 가을, 짧은 기간이나마 시범사업을 잘 해놓고 전국으로 확대되기는 커녕 잠실구장에서마저 다회용기가 사라졌다.

평소에도 텀블러를 이용하는 등 환경을 위한 행동에 적극적이었던 야구팬들이 참여해 주었다. 다회용기를 쓰는 과정에서의 고충이나 보람을 나누기도 했다. 음료와 간식을 한 손에 들리게 만든 독특한 (일회)용기로 인기가 높은 '잠실원샷'도 다회용기로 도전하고 성공했다.

그러나 참여율은 낮았다. 결국 일회용품을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야구팬에게 다회용기를 쓰라고 캠페인만 할 것이 아니라, 구장 내에서 다회용기를 제공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개인의 선의와 노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구단이 제도적으로 다회용기를 쓰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또 다른 문제는 막대풍선과 같은 플라스틱류 응원용품에 대한 것이다. 지난 4월 환경부와의 협약 이후 종종 야구장 내에서 막대풍선 사용 금지 안내가 나오긴 하지만, 실제 야구장에 입장할 때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또한 야구장 바로 앞 노점에서 막대풍선을 판매하는 것 역시 막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야구장 쓰레기통에서 막대풍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막대풍선이 단순히 사용 금지되는 것을 넘어 막대풍선 과거 판매분에 대한 수거와 재활용까지 각 구단이 책임져야 한다.
 
 야구 경기가 끝난 후 남겨진 쓰레기

야구 경기가 끝난 후 남겨진 쓰레기 ⓒ 전지은

 
KBO와 구단이 손놓고 있는 동안, 야구장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지난 4월 공개된 제6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야구장에서 한 사람이 발생시키는 폐기물의 양은 팬데믹 이전 3.8g/일이었지만, 2021년에는 7.95g/일로 두배 이상 뛰었다. 2021년 한 해 전국 야구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3444.01톤. 이 중 3278.05톤이 종량제 방식으로 혼합 배출되었다. 분리배출된 폐기물 중 절반 가량은 폐합성수지, 즉 플라스틱이었다. 

폐기물은 폐기물로서 그 자체로 오염원인 동시에,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된다. 도시 고형 폐기물 1톤을 소각할 때 1.1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된다. 쓰레기 매립장은 온실효과가 더 큰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 '슈퍼배출원'이다.  

환경오염 피해, 다시 야구장으로

그 피해는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온다. 미세먼지로, 기후변화로 말이다. KBO는 2016년 미세먼지로 인한 경기 취소가 가능한 규정을 도입했고, 지난 4월 12일에도 잠실 경기가 미세먼지로 취소된 바 있다.

최근 미국기상학회 저널이 지난 4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발생한 홈런 중 약 500개 이상이 상승한 기온에 기반한다고 밝히고 있다. 홈런은 경기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투수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발생하면 경기가 취소되거나 미뤄질 수 있고, 일정 변경이 잦아지면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높아진 기온이 선수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야구팬이라면 모두 알만한 상식이다. 최근 잠실야구장을 뒤덮어 화제가 되었던 동양 하루살이도 수온이 상승하면서 발생량이 더 많아진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공룡옷을 입고 야구경기를 직관한 크보플 활동가

공룡옷을 입고 야구경기를 직관한 크보플 활동가 ⓒ 전지은

 
크보플은 지난 6월 세계 환경의 날 주간을 맞아 KBO와 구단들이 야구장 플라스틱 및 폐기물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마침 올해 환경의 날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퇴치(Beat Plastic Pollution)였다. 

크보플 활동가들은 잠실 야구장에서 대면홍보를 진행했다. 야구장 폐기물 실태를 알리고, 야구팬들의 서명을 모았다. '야구는 만루위기, 지구는 기후위기', '용기내는 우리가 지구의 구원투수' 등의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쓰고 야구를 직관했다. 중계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공룡옷까지 빌려 입었는데 잡아주지 않아 조금 서운했다. 
     
야구장 폐기물 감축을 위해 크보플이 KBO와 구단에 요구하는 것은 다음 다섯가지다. 
 
1. 시즌 내 전구장 내 다회용기 전면 도입
2. 막대풍선 사용 금지 홍보 강화 및 기존 판매분에 대한 책임있는 재활용 이행
3. 플라스틱 응원용품 생산 감축 
4. 생애주기(생산⋅소비⋅폐기⋅재활용 등) 전반의 기후⋅생태영향 최소화를 위한 응원용품 제조 규정 마련 
5. 폐기물 배출량 감축에 대한 구체적 목표 설정 및 계획 수립, 이행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

해당 요구안은 온-오프라인을 통한 187명 야구팬의 서명과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서명한 이들 중에는 10년 후 프로야구 무대를 누빌 청소년 야구선수도 있고, 야구장을 찾은 어린이 야구팬도 있다. 야구를 즐기는 기쁨은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KBO로부터 간절히 답변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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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 활동가입니다.
크보플 프로야구 야구장 쓰레기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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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도 지구도 포기할 수 없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 활동가, 제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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