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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은 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구불구불한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 잣봉에서 내려본 어라연 어라연은 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구불구불한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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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절반에 들어섰다. 태양은 강렬하고 산과 들의 푸르름이 짙어진다. 6월 첫 행선지는 어라연 산소길이다. 강원도 영월군 어라연은 동강 줄기 최고의 경치를 뽐내는 곳이다.

동강의 물줄기가 급히 휘어진 자리에 떠 있는 세 개의 바위섬 일대가 어라연(魚羅淵)이다. 한자 이름을 풀면 '햇살에 비친 물고기 비늘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연못'이다.

동강은 전체 길이가 약 65㎞로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남한강이다. 정식 명칭은 조양강이며 주민들이 영월읍 동쪽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으로 동강이라 불렀다.  
현충일인 지난 6일,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며 차분하게 걸었다.

영월읍 거운리 거운분교를 출발해 마차삼거리-잣봉-어라연-만지나루-거운분교로 되돌아오는 8㎞ 구간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거운분교에 주차하고 다리를 건너가니 삼옥탐방안내소가 나타났다.

탐방소 앞을 지나자, 직원분이 나온다. 잣봉을 지나면 700m정도 아주 가파른 내리막길이 있는데 밧줄 외에 어떠한 시설도 하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개발 보다는 보존에 힘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내리막길을 지나면 풀숲으로 연결되는데 뱀을 조심해야 한다며 등산용 스틱이 있는지 물었다. 가져오지 않았다면 탐방소에서 준비한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다기에 사무실로 갔다. 벽쪽으로 기대어 서 있는 지팡이는 하나같이 작품이었다. 그중 적당한 길이에 손잡이까지 갖춘 지팡이를 골랐다. 

해리포터 마법의 지팡이를 손에 얻은 듯 발걸음이 가뿐해졌다. 양 옆으로 이름모를 들꽃이 즐비한 임도로 시작되었다. 노랑, 보라, 흰색, 색깔도 모양도 제각기이지만 조화를 이룬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강렬한 태양을 옮겨 놓은 듯한 새빨간 뱀딸기가 초록 풀 틈에서 돋보인다. 어릴 때부터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왜 그런지 궁금해졌다.

멈춰 서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본다. 딸기와 비슷하나 맛은 없어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는데 피부과·호흡기·순환계 질환 치료에 좋다고 나온다. 지혈과 항암 작용이 있다니 우리에게 이로운 열매였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곳 없어 온몸이 땀범벅이다. 점점 더 경사가 가파르고 흘린 땀만큼 갈증도 심해졌다. 그 순간 바람을 타고 온 숲내음이 땀냄새를 덮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잣나무 군락지다. 쭉쭉뻗은 잣나무 숲이 청량하다. 천근만근이었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 졌다. 단숨에 이정표가 있는 고개까지 올라가 목을 축였다. 

마차삼거리! 이제 잣봉까지 2.2㎞ 남았다. 마차 삼거리를 지나 하늘과 눈을 맞추니 나를 파란 바다로 이끈다. 맑은 하늘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먼발치 산넘어 구름꽃이 피어오른다. 

잎이 반들반들한 수목을 자세히 보니 대추나무다. 대추나무는 집 뒤켠 한 그루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리를 지어 있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다. 대추나무 밭을 지나자 누런 황소가 두 눈을 껌벅이며 맞아준다. 요즘 축사는 관리를 잘해서인지 냄새가 없다. 자세히 보니 투명 천장에 환기 시설까지 뛰어나다.

축사를 지나자 숲길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물웅덩이 앞에서 멈췄다. 까만 올챙이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고 있었다. 곧 물이 마를 텐데. '어서 커서 개구리 되거라'. 올챙이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나무 계단을 올라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전나무숲이 기다린다. 거목들로 둘러쌓인 숲은 어릴 적 일기장을 옮겨 놓은 듯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필체와 나만 해석할 수 있는 간단 명료한 그날의 기록. 서툰 문장.
 
잣봉을 오르는 길목 곳곳에 낙타, 돼지, 공작새를 연상케하는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 낙타모양 소나무 잣봉을 오르는 길목 곳곳에 낙타, 돼지, 공작새를 연상케하는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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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큰 소나무는 여러 동물의 모습과 흡사하여 마치 동물농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슴뿔을 연상케 하는 나무를 시작으로 날개를 쫙 펼친 공작새,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기린, 돼지 삼형제 등 다양하다. 사슴뿔 나무는 산타할아버지의 루돌프 같아 보였다. 해리포터의 지팡이가 펼친 마법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한다.

숲향기와 산새소리가 신록을 절정으로 이끈다. 높고 고운 노랫소리와 중저음의 화음을 따라 나도 흥얼거렸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소나무에 가려져 탁트인 동강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두 눈을 감았다. 우렁찬 물소리로 전해지는 동강의 모습을 가슴속으로 구경했다. 마음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흙길을 덮고 있는 마른 잎이 가루가 된 걸 보니 많은 사람이 오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심걱정이 사르르 녹는 조용한 숲길이 참 좋다. 해발 537m 잣봉을 뒤로 하고 어라연으로 향했다. 

풀숲에 숨어 있는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었다. 새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침샘을 자극했다. 친절하게 안내해준 직원분이 안전을 강조했던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과 마주했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오른손은 밧줄을 잡고 발끝에 힘을 주며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더욱 쩌렁해지는 물소리와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곧 동강을 대면할 수 있겠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 나무의자가 놓인 휴식처에서 가져온 떡과 음료로 에너지 보충을 하며 땀을 식혔다. 동강과 직접 대면했다. 숲속에서 들었던 우렁찬 소리처럼 크고 아름답다. 널찍한 구간의 물결은 잔잔하다. 래프팅 객들은 구령에 맞춰 씩씩하게 노를 젓는다.  

배낭을 꾸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안내 직원의 염려처럼  온갖 들풀이 길을 덮었다.  지팡이로 풀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부터 풀베기 작업을 시작한다고 했으니 앞으로 불편없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풀숲을 벗어나자 길 가장자리는 산딸기밭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나뭇가지에 오디가 주렁주렁 달렸다. 지팡이를 나뭇가지에 걸어 까치발을 하고 손을 쭉 뻗어 오디를 손에 넣었다. 키 작은 앵두나무에 알이 굵은 열매가 다닥다닥 열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바로 이 맛이야' 손이 자꾸 간다.

만지나루터에 멈춰서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사했다. 어린 학생이 노를 번쩍 들어 흔든다. 표현 서툰 중년 아저씨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전산옥 주막터>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요즘 백종원씨와 맞먹는 음식업계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전산옥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이곳 주막을 지키던 주모다. 남한강 일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객주를 지킨 여성이다. 1960년대까지 나무를 팔기위해 뗏목을 타고 동강 물길을 내려가던 떼꾼들이 황새 여울과 된꼬까리 여울을 지나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술 한잔에 고단한 몸을 달랬다고 한다. 이 주막은 정선아리랑의 가사에도 실렸는데 "황새 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지어 놓았네. 만지산의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 이 부분이라고 한다. 

어라연길 생태 숲길은 잔잔한 물결이 만들어내는 동강의 여울과 익지 않은 초록 갈대밭이 인상 깊었다. 흙길이 끝나고 거목분교까지 4㎞로 남긴 지점부터 임도가 시작된다. 길이 나뉘던 마차삼거리와 연결되었다. 

오후가 되자 올라올 때 느꼈던 열기가 한풀 꺽였다. 퇴근 시간이 되었는지 탐방소 직원들이 모여 있다. 안전하게 걷도록 도와준 지팡이를 반납했다. 4시간 가량 걸으면서 '어라연 산소길'의 이름값을 제대로 느낀 하루였다. 
 
잣봉-어라연트레킹은 잣봉까지는 오르막, 이후에는 내리막과 평지다
▲ 잣봉 정상 잣봉-어라연트레킹은 잣봉까지는 오르막, 이후에는 내리막과 평지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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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태그:#제천단양뉴스, #이보환, #영월, #동강, #어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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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신문에서 25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다짐합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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