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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천 원을 쥐고 밖으로 나간다면 무엇을 살 수 있을까.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껌 한 통을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강북 북부시장 하나김밥에서는 1000원에 김밥 한 줄을 살 수 있다. 강순희 할머니는 30년째 김밥 가격을 유지한 채 장사를 하고 계신다. 

할머니의 가게는 '전 국민이 적자라고 확신하는 가게', '오히려 손님들이 야단치는 가게'로 먹방 유튜버 영상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김밥을 서민 음식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의 고물가 시대인 지금, 남는 것이 없어 보이는 이 김밥 장사를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운영하는 걸까. 지난 5월 13일 하나김밥 가게를 직접 찾아갔다.

그날그날 재료가 달라지는 김밥
 
 김밥을 싸는 강순희 할머니의 모습
김밥을 싸는 강순희 할머니의 모습 ⓒ 서효주

서울 강북 북부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진한 참기름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가 보면 가게가 나온다. 번듯한 간판도 없다. 노란 현수막에 적힌 가게 이름 네 글자가 전부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법하다.

층층이 쌓여있는 계란판, 의자에 놓여있는 쌀가마니, '김밥 한 줄에 1,000원' 문구가 적힌 색 바랜 종이가 김밥 가게임을 알아채게 하는 단서들이다. 한 명 남짓 누울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누워 계시던 할머니의 첫 마디는 이거였다. 

"뭐 해줄까."
  
김밥 줄수를 말하면 바로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바스락거리는 김 한 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단무지, 계란, 햄, 오이가 차곡차곡 들어가야 우리가 아는 김밥이지만 이곳의 김밥은 다르다.
 
 제각기 속이 다른 강순희 할머니의 김밥
제각기 속이 다른 강순희 할머니의 김밥 ⓒ 서효주
 
어느 날은 단무지가 없을 때도 있고 햄이 두 개 들어가는 날도 있다. 할머니의 기분 따라, 재고 따라 김밥의 재료는 달라진다. 할머니는 김밥이 손님 입 안에 들어가는 것을 연신 확인하고서야 "왜 김밥 장사를 하세요?"라는 질문에 답했다.

"살기 위해서지 뭐..."

그렇게 할머니는 2시간 동안 할머니 삶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가족 때문에 시작한 장사


"돼지 고깃집부터 시작했지. 애들이 엄마가 공장 다니는 거 안 좋아할 거라고 해서 장사를 시작했어. 구멍가게도 하고 김치 장사, 국수 장사, 부침개 장사 할 수 있는 건 다 하다가 김밥 가게로 30년 동안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야."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온전히 가족을 위해서였다.

"남편이 아팠어. 남편이 몸이 안 좋은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우리 남편은 산에서 농삿일을 하던 사람이었어. 무섭지도 않고 겁도 안 내고 산에서 그렇게 일했어."

뇌졸중을 앓던 남편이 농사로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할머니는 자처해서 가장의 역할을 맡았다.

"우리 남편은 내가 일하는 걸 진짜 싫어했어. 여자가 무슨 돈을 버냐고 말이야. 그런 할아버지들 있잖아. '여자가 일하면 큰일 난다' 그러는 사람들. 남편은 내가 장사를 시작하고는 9시에 들어가면 '8시에 와라' 그러면서 일찍 들어오라고 막 재촉해. 나는 그러면 한마디도 못 하고 8시에 집에 들어갔는데 시장 사람들은 일찍 들어간다고 나보고 뭐라 뭐라 했지."

그렇지만 할머니는 장사를 멈출 수 없었다. 이유는 가족 하나 때문이었다. 가족을 이끌고 살려면 억세야 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결심은 할머니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장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순희 할머니가 생활하는 하나김밥 가게 모습
강순희 할머니가 생활하는 하나김밥 가게 모습 ⓒ 서효주
 
수익보다 중요한 손님들

"김밥 장사하기 전에 미아리고개에서 구멍가게를 했어. 거기서 장사할 때, 아침마다 오는 어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있었거든. 엄청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어. 내가 많이 예뻐했지. 그런데 그 아이가 애들 먹는 불량식품 같은 자잘한 거를 많이 훔쳤어. 내가 숙맥이라 가만히 있으니, 아침마다 엄청나게 훔쳐대더라. 이런 도둑이 너무 많아서 한 1년도 못 하고 그만뒀어."

그러나 할머니는 물건을 훔친 여자아이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정' 때문이었다. 30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가게 물건이 없어지는 건 일상이었다. 3개월 전에도 지갑을 훔쳐 간 이도 있었다. 이번에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장사에 수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밥 한 줄에 1000원이라는 가격도 하나김밥 가게를 이전 주인에게서 이어받았을 때 그대로의 가격이다.
 
"수익 같은 거는 안 생각해. 입에 풀칠할 정도는 먹고 살 수 있고, 그냥 자주 오는 단골들 얼굴도 보고, 사람들이랑 수다 떠는 게 좋아서 하는 거야. 가격 올리는 거? 생각도 안 해봤어. 그냥 내가 조금 덜 벌면 돼."


그가 장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오로지 손님 때문이다. 장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를 반기는 이는 없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도 세상을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하나김밥뿐이다.

할머니는 하나김밥을 찾아와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크다고 했다. 

"내가 한 음식을 작게 생각하지 않고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고맙지. 집에 혼자 있으면 적적할 때가 많은데 손님들이 가끔 나한테 와서 신랑 욕하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 들려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수다 떨면 적적함도 가시고 재미가 있어. 그래서 오히려 찾아와 주는 손님들에게 고마워."
     
 웃어보라는 말에 멋쩍게 웃음을 짓는 강순희 할머니
웃어보라는 말에 멋쩍게 웃음을 짓는 강순희 할머니 ⓒ 서효주
 
현재 강순희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못하다. 3년 전 인근 아파트 근처에서 차량에 살짝 부딪혀 넘어진 이후로 허리 통증이 생겼고 후유증도 심해졌다. 또 한 번은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김밥을 싸는 손의 떨림은 점점 심해지고 김밥 한 줄 잘라 옮기기에도 힘에 부쳐 보였다. 그럼에도 계속 김밥을 마는 이유, 천 원 김밥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같이 대화하고 속마음을 터놓으면서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면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정을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야 해. 사람들 마음은 알 수 없지만 장사를 하면서 내 정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어."

#김밥#하나김밥#강북북부시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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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효주 기자입니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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