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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5월 17일 충남천안터미널 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5월 17일 충남천안터미널 앞에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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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불평등을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한 고급 아파트 분양 광고 기사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광고는 내려졌다고 하나, 어떻게 저런 광고가 기획되고 추진되었을까 생각하며 답답했다. 분명 누군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의견을 냈을 텐데!

인권은 바로 이런 순간에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소유한 것도 모두 다르고, 개성도 정체성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힘센 누군가가 약한 누군가를 짓밟으면 안 되는 거니까, 강자든 약자든 우리가 서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서로를 인간으로 대우하자는 것이 인권이다. 그러려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사회적 보장'이 필수적이고, 그러기에 인권은 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이며, (중간 생략) 인간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법에 의한 통치에 의하여 인권이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며(이하 생략)"
- 세계인권선언문 전문 중


세계인권선언 이후 국제사회는 다양한 인권협약으로 법적 효력을 갖춘 규범을 만들었고, 각 나라들은 헌법과 법률을 통해 인권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어왔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0조를 비롯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법은 늘 현실의 고통에 늦고 추상적이다. 차별은 다양한 이유로 도처에 있고, 정체성을 이유로 한 혐오는 대구시 이슬람 사원의 경우처럼 현재진행형이다.

국회와 정부가 모든 사람의 평등을 보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하는 중에 지역사회 주민들의 요구로 시작된 것이 인권조례 제정 운동이었다. 인권보장은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자체의 책무이기도 하기에, 지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행정이 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이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갖추도록 '자치규범'으로 만든 것이 인권조례다. 아직 국회가 제대로 된 '인권기본법'과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한 상황에 지역민의 인권보장이 지역사회의 중심적이고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실제 인권조례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인권조례가 있으나 없으나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냐며 조례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권조례는 부족한 것이 맞다. 사실 조례엔 인권보호를 위한 핵심인 '인권기구'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해서 그 의미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면 보완하여야지 삭제하는 것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 인권의 원칙인 비차별, 존중, 참여가 그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그렇다.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공적 기준'이 인권조례가 가진 의미다. 행정이 하는 것은 그저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따져보고, 주민의 의견을 묻고 허락과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와 자치는 시혜가 아니라 보장되어야 할 필수적 권리라는 것이 인권조례의 의미다.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인권조례가 가진 의미다. 그래서 보완이 필요한 것이지 폐지는 안 된다.

전국의 인권조례가 공격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했고,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삭제했으며, 대전시의 경우엔 반인권주장 단체에 '대전인권센터'를, 혼전순결을 강조하며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해온 단체에 '청소년성문화센터'를 맡겼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다음세대를위한학부모연합'이란 단체에선 얼마 전 충남도 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에 성평등과 성교육 관련해서 자신들이 선정한 도서 목록을 제시하며 이를 퇴출시키자는 일명 '도서관에서 살아남기'라는 금서 목록 홍보물을 비치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차별과 혐오를 공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니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위태롭다.

충남차제연은 그동안 릴레이 기고를 통해 충남인권조례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엔 해명과 설명을, 인권 존중의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주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드러내며, 해법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다양한 시민과 독자가 서로 소통하는 귀한 시간이었고 읽어주신 독자들과 도움 주신 오마이뉴스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충남차제연은 계속해서 평등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학생 목소리 모으기 캠페인도 계속 진행하며, 7월 10일 학생인권조례 제정 3주년 기념일이 다가옴에 따라 학교가 인권친화적으로 얼마나 변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생생활규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성평등에 반대하는 혐오에 기반한 도서 퇴출 움직임에 맞서 시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온라인 책담회도 추진 예정이며, 6월 자긍심의 달을 맞이하여 '무지개 충남' 행사에도 공동주최로 참여한다. 평등은 결코 꺽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연대하는 마음이며, 우리는 더 많이 더 넓게 더 두텁게 연대할 것이다. 

* 6월 자긍심의 달은?
자긍심의 달은 1969년 6월 28일에 있었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며 시작.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상황에 뉴욕에 있던 스톤월 주점은 폭력을 피해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곳이었음. 경찰이 급습하여 사람들을 체포하자 경찰 폭력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경찰의 최루가스 등을 동원한 해산 시도에도 불구하고 4일간 항쟁을 이어갔고, 다음 해부터 뿌리깊은 제도적 차별과 폭력에 공개적으로 저항한 용기를 기념하며 스톤월주점이 있던 크리스토퍼 거리에서 첫 LGBTI 자긍심 행진이 열림. 이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자긍심 행진의 시초가 됨.

태그:#충남인권조례, #충남학생인권조례, #충남차제연, #금서,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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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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