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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어린 딸을,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를, 어린 아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앗아갔다. 음주운전은 ‘살인을 예비한 범죄’다. <오마이뉴스>는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2018년 9월 25일부터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있었던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재판 판결문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렇게 마주한 63명의 가해자들은 다양한 감경사유를 내세워 수갑을 벗었다. 이미 음주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 음주 살인자들의 운전대, 지금 멈춰야 한다.[편집자말]
'피해자와의 합의'는 음주살인 감경의 만능키였다.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63건의 음주살인 판결문 가운데, 가해자의 죄를 깎아주는 감경 요소로 '합의'가 명시된 건 총 48건(76.2%)에 달했다. 감경요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수치다.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황, 고인의 뜻을 물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이 한 합의의 힘은 강했다. 가해자의 죄를 감경해주었고, 자유까지 안겨주었다.

음주살인 재판, 감경사유 살펴보니 
 
ⓒ 박종현
 
다음 사건도 그러했다.

하루아침에 아빠를 잃었다. 아빠 나이 46세. 미성년자 아들의 단독 친권자이자 유일한 그늘막이 되어줄 아빠가 사라졌다.

안개가 짙게 낀 2018년 9월 15일 오후 10시 15분, 아빠는 운전중이었다. 제한 속도 80km/h의 경상북도 군위군 5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 차를 바짝 뒤쫓은 그 차량은 이미 속도감을 잃은 상태였다. 혈중알코올농도 0.197%의 가해자는 편도 2차선의 도로를 143km/h로 질주했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아빠의 차 뒷면을 들이 받았다. 그게 끝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빠는 자정께 사망했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적 있던 가해자에게, 재판부는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말했다.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고, 피해자에게 어떤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그리곤 말했다.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피해자 아들 및 여동생이 피고인들과 합의하여 처벌을 원치 않는다. 가해차량이 자동차보험에 가입돼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 아들에게 친권자가 지정되지 않았음'을 인지했음에도 유리한 정상에 아들의 합의를 적시했다.
재판부는 '미성년자 아들에게 친권자가 지정되지 않았음'을 인지했음에도 유리한 정상에 아들의 합의를 적시했다. ⓒ 이주연
 
합의 단어 옆에 달린 주석 1)에는 "피해자 아들이 유일한 상속인으로 보이나 아직 미성년자로서 단독친권자이던 피해자가 사망하고 따로 친권자가 지정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붙었다.

아직 미성년자인 아들은, 자신의 합의가 어떤 뜻인지 알았을까. 합의서에 한 그 사인이 아빠를 죽인 그 사람의 수갑을 풀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알았을까. 훗날 그 사인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재판부는 '미성년자 아들에게 친권자가 지정되지 않았음'을 인지했음에도 유리한 정상에 아들의 합의를 적시했다.  

무단횡단 중 사망한 피해자들, "그러나" 다른 재판결과... 이유는? 

도로를 무단횡단 하던 74세 여성을 백미러로 가격해 사망케 한 운전자도 술을 마신 채 핸들을 잡았다. 혈중알코올농도 0.099%였다. 1심에서는 징역 10월형을 받았다. 가해자는 '죄가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당심(항소심)에서 피해자 유족들과 합의하여 피고인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이 1심과 달라졌다. 가해자의 형은 합의를 계기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변경됐다.

피해자가 무단횡단하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사망한 사건은 대구에서도 발생했다. 해당 사건 역시 '피해자가 새벽시간에 보행자 신호를 위반해 횡단한 잘못이 있는 점,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있어 적절한 피해보상이 가능하고, 이와 별도로 피고인 측에서 위로금 4500만원을 지급하여 유족들의 용서를 받은 점,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이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됐다. 재판부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여기, 매우 유사한 사건이 있다. 광주 중마터미널사거리 부근, 무단횡단을 하던 피해자 두 명을 들이받았다.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098%이었다. 제네시스 G70을 몰던 가해자는 5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받았다. 2019년 7월 열린 선고 공판, 가해자에게 유리한 정상이 줄줄이 나열됐다.
 
'▲ 피해자들이 무단횡단이라는 과실을 저지른 점 ▲ 피해자 A 유족에게 5000만원 피해자 B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고 합의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 피고인은 2010년 이후 형사 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


이어진 "그러나", 재판부는 말했다.

"유족과의 합의를 피해자와 합의로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당연히 사고 위험성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단순한 과실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없고, 도로상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운전자를 잠재적 위험 속에 놓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역시 너무나 중대해 이를 엄벌할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가까운 사람 죽게 한 '음주운전', 그 죽음은 100% 합의됐다 
 

음주운전은 "다수의 평범한 운전자"만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게 아니었다. 가해자의 어머니를, 친한 친구를, 친척을 죽게 했다. 그리고 이 죽음들은 모두 합의됐다.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재판 가운데 13건은 동승자 사망 사건이었다. 
 
음주운전 ZERO 캠페인 2020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열린 '음주운전 ZERO 캠페인'에서 음주운전의 위험과 실상을 알리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음주운전 ZERO 캠페인2020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열린 '음주운전 ZERO 캠페인'에서 음주운전의 위험과 실상을 알리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해안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바다로 추락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069%, 술에 취했던 가해자는 살았고, 함께 타고 있던 23살 피해자는 죽었다. 
*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뿌리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혈중 알코올농도 0.066%. 도로 중간의 가드레일을 박았다. 함께 타고 있던 71세, 60세 친척이 사망했다. 함께 타고 있던 30세 아들은 사지가 마비됐다. 
* 혈중알코올농도 0.116%, 만취상태에서 오토바이를 몰았다. 무면허 운전이었다. 갑작스레 인도를 들이 받았고, 그 충격으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19세 친구가 도로에 떨어져 사망했다. 
* 2014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원 형을 받은 그는 6년 후 또 음주운전을 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143%의 만취 상태로 화물 트럭을 몰았다. 옆자리에는 '오랜 친구'가 타고 있었다. 술에 취한 채 졸음운전을 하던 그는 전방에 트럭을 들이 받았고, 친구는 사고 2시간 후 사망했다. 
* 2016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200만원형을 받은 그는 어머니를 옆자리에 태운 그 날에도 술을 마신 채 시동을 켰다. 혈중알코올농도 0.068%. 충격방지시설을 들이 받고 차가 뒤집혔다. 80세 어머니가 사망했다. 그는 유족이자 피고인이 됐다. 
13건 모두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이 중 4건은 음주운전 전과를 가진 이가 저질렀다. 

음주운전은 친족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경남 거창군 37번 국도를 달리던 가해자의 차는 도로 우측 가장자리를 걷던 피해자를 들이 받았다. 피해자는 83세, 가해자의 어머니였다. 그 역시 음주운전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친모로서 피해자의 유족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처와 함께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의 음주운전 범죄 역시 합의됐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 행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비극적 결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죽음은 줄줄이 '합의'됐고, 가해자들은 자유의 몸이됐다. 가해자들이 또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악순환'을 가능케 했다. 이 고리를 끊을 수는 없을까.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음주운전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합의했다고 집행유예형이 나온다, 가해자는 교도소에 아예 안 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일반상식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라며 "지금처럼 생명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생명 경시'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 변호사는 "합의 감경을 아예 없앨 경우,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도 있다"라며 "유리한 요소로 참작은 하되, 교통사고 특히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형량 전반을 현재보다 2~3배 가량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형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의 일환으로,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살인죄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현재는 과실범으로만 다뤄지지만 사안에 따라 고의범(사망에 고의가 있을 시 살인죄 적용)으로도 봐야 한다, 이에 따라 10년 이상의 형량도 선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라면서 "음주운전 전력이 수차례 있고 이미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냈다면, 고의범으로 접근하는 등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강력 처벌과 더불어 상습 음주운전자의 핸들을 아예 멈추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음주살인#음주운전 사망사고#합의 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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