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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신지면 동고리 토박이 차봉덕 해녀를 만나로 가는 길. '물질을 가는데 사진을 찍고 싶으면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고서 새벽부터 서둘러 달렸다. 동이 틀 무렵 사진을 찍고 나서 인터뷰는 다음에 하자는 다짐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잘 것도 없는디 뭐할라고 사진을 찍어~"

"보잘 것이 없다니요? 절대로 안 그럽니다."


물때에 맞춰 작업을 해야 하니 서둘러 물질을 가야 한다며, 보잘 것 없는 노인을 뭐하로 찍냐며 자꾸 타박을 하면서도 포즈를 취해 주었다.

"오늘은 어디로 작업을 가십니까?"

"오늘은 생일도로 간디 조금이고 날이 좋아서 물질하기가 좋을 것 같으요."


"고통 심했지만... 엄마의 힘으로 버텼다"

드디어 인터뷰 날, 차봉덕 해녀의 집을 찾아갔다.

차씨의 집은 넓은 잔디밭과 연못, 번듯한 차고가 갖추어진 단층 슬라브 집이었다.       

차그는 동고리에서 태어나 동고리 청년 정창남씨를 21살에 만났다고 한다. 

"한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는 언니가 소개 비슷하게 다리를 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1년 정도 만났죠. 그란디 우리 아저씨가 아조, 나 아니면 안된다고 죽자사자 어찌께나 쫒아 댕기는지, 22살 1월에 결혼하고 그 해에 아들을 낳었죠."

결혼 초기에는 시부모님을 몇 년 모시고 살다 분가했는데, 일을 안 하는 아저씨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원래 우리 시댁이 큰 부자는 아니어도 밥은 편히 먹고 산 집이었거든요. 근디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 아저씨가 일을 안해요. 말 그대로 귀공자였어요. 장남으로 너무 귀하게만 컸다는데 시아버지가 우리 아저씨를 45살에 봤어요. 그래서 금이냐 옥이냐 일도 안 시키고 키운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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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결혼하고 본격적인 해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저는 주로 광초를 채취했는데 결혼을 하고서 만난 제주에서 온 선주가 해녀를 하면 물질을 잘할 것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저씨 모르게 물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저씨가 어떻게 알고 선창에서 배를 타고 일을 가려는데 물질을 그만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 막대기를 들고 쫒아왔어요. 배가 막 출발하면서 위기를 모면했어요. 그 후로는 걍 무조건 물질을 했습니다."

차봉덕 해녀의 시대엔 우리 어머니들이 다 그랬듯이 차씨도 특별히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해녀 초기에는 물질이 서툴러 하루에 5000원을 벌기도하고 3000원을 벌기도 했는데 이를 악물고 남의 바다에서 10년동안 물질을 했어요. 광초만 채취하다 물질을 배우니 잠수가 너무 안돼 고통이 심했어요. 그래도 엄마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80까지는 물질할 계획인디..."


그 후 차씨에게도 기회가 와서 남편와 함께 해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해녀 사업을 시작한 지는 30년 정도 됐어요. 사업초기에는 보통 6~8명의 해녀를 모집해 물질을 했죠. 신지, 약산, 생일 등 바다는 거의 안 다닌 데가 없어요. 그때는 바다 속에 물건도 많았어요. 해녀들 밥이며 간식을 챙기고 참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같이 일했던 해녀들이 돌아가시기도 하고 은퇴를 해 아저씨와 둘이서만 작업을 한다고.

언제까지 물질을 할 예정이냐는 물음에 차씨는 담담하게 말한다.

"몇 해 전 제주에서 잠수병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80살까지는 할 계획으로 바다를 샀어. 지금 같어서는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사람 일이라 모르제."

오늘 잡은 해삼과 전복을 중매인에게 보내야 한다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차씨는 양동이에서 한 움쿰의 해삼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내며 맛있게 먹으라며 미소를 보냈다.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유영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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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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