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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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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기간이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아침 등교 후 교실은 적막해진다. 죄다 책상에 쓰러져 잠들어 있다. 두툼하고 푹신한 쿠션 베개는 요즘 고등학생 아이들의 '필수템'이다. 빛을 차단하는 안대까지 챙겨오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코 고는 소리도 낯설지 않다. 예전 같으면 주변 친구들이 깔깔거리고 난리였을 텐데, 요즘은 다들 그러려니 한다. 책에 침을 잔뜩 흘려놓은 짝꿍의 모습을 보고도 심드렁한 표정이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모두 나만큼 힘들구나'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읽힌다.

등교 후 1교시 수업 시작 때까지 자투리 시간은 학교 교육과정 상 '아침 독서 시간'이다. 정규수업에 방과 후 수업까지 종일 이어져 책 읽을 시간이 마땅찮다는 생각에 부러 설정한 것이다. 수업과 업무에 치인 탓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건 담임교사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도 딱히 다르지 않지만, 시험 기간의 '아침 독서 시간'은 사실상 취침 시간이다. 몇몇 아이들이 대놓고 불을 꺼달라고 요구하더니, 이젠 정규 일과가 시작될 때까지 교실은 어두컴컴한 수면실이다. 이른 아침 교실 안은 싱그런 여명은커녕 황혼의 노을빛만 가득하다.

새벽 2시께 잠자리에 든다는 아이가 태반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낙지 흐물거리듯 일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엾다. 조회 시간, 다른 전달 사항은 다 접어두고 당장 수면 시간을 화두로 올렸다. 다들 보통 몇 시쯤 잠자리에 들고, 언제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새벽 2시께 잠자리에 든다는 아이가 태반이었고 평균이었다. 그다음으로 1시와 3시라고 말하는 경우가 각각 반반이었다. 12시 이전에 잔다고 말하는 아이는 26명 중 단 한 명도 없었다.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취침 시간은 대개 비슷하다고 했다.

등교 시간을 고려하면, 아이들 대부분이 하루에 채 다섯 시간도 못 잔다는 뜻이다. 몇몇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요즘 같은 시험 기간에는 한두 시간만 자고 하루를 견뎌내는 아이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수능도 아니고, 한낱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데도 그렇다는 거다.

복도에 설치된 쓰레기 분리 배출함은 이른바 '에너지 음료' 캔으로 넘쳐난다. 요즘엔 각양각색의 비타민 보충제와 자양강장제 병까지 수북하다. '에너지 음료'는 스마트폰과 함께 요즘 아이들의 '등교 필수품'이 됐다. 카페인의 힘을 빌려 잠을 쫓고 하루 24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적어도 근래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 분리 배출함에는 햄버거나 과자의 빈 봉지와 탄산음료 캔 등이 가득했는데, 이젠 '에너지 음료' 캔이 더 많다. 하긴 요즘 들어선 보약이라며 한 움큼의 약을 끼니처럼 챙겨 먹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5~6교시, '에너지 음료'가 절실한 시간
 
그는 '에너지 음료'의 도움 없이는 밀려오는 졸음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그는 '에너지 음료'의 도움 없이는 밀려오는 졸음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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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한 아이의 일과를 뒤쫓아봤다. 정규수업과 점심시간, 방과 후 수업, 야간자율학습 때까지 그의 학교생활을 염탐하듯 관찰했다. 아이들은 그가 공부를 곧잘 하는 상위권이지만, 일상은 대개 엇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그나마 그는 수면 시간이 긴 축에 속했다.

그에게 1교시는 '아침 독서 시간'에 이어 취침 시간의 연속이다. 아무리 중요한 과목이고 재미있는 수업이라도 1교시의 졸음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교사도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이 1교시에 배정되어 있으면 수업과 진도 걱정에 한숨을 내쉬곤 한다.

2교시까지 비몽사몽 헤매다가 청소 시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살짝 허기가 도는 3교시와 4교시가 하루 중 집중력이 가장 높아지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24시간 중에 유일하게 몸과 마음이 멀쩡한 때다.

점심시간은 체육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중 유일하게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다. 양치할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아우성치지만, 식사 후 운동장 주변을 산책하는 아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는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식사를 한 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공을 찬다고 했다.

5~6교시야말로 '에너지 음료'가 절실한 시간이다. 그는 갈증도 풀고 잠도 깰 겸 즐겨 마신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 후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는 기성세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에너지 음료'의 도움 없이는 밀려오는 졸음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방과 후 수업 이후 저녁 급식을 마치면 밖은 어둑해지지만, 아이들의 눈은 되레 초롱초롱해진다. 그는 자신을 어릴 적부터 '야행성'이었다고 둘러댔다. 낮보다 밤에 공부가 훨씬 잘 된다는 거다. 하긴 교실 안팎의 조명이 워낙 환해서 낮과 밤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야자' 뒤 스터디카페로 향하는 아이들

등굣길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추풍낙엽처럼 책상 위로 쓰러지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다. 야간자율학습(야자)을 신청한 아이들의 대부분이 '야행성'인 모양이다. 밤 9시를 훌쩍 넘긴 늦은 시간임에도 교실 안은 책과 씨름하는 아이들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교문이 닫히는 밤 10시에도 그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고등학생들에게 '제2의 야자'로 자리매김한 스터디 카페에 가야 할 시간이다. 주말도 아닌 주중에 야자가 끝난 뒤 스터디 카페에 가서 공부한다는 아이들이 학급에서 얼추 절반을 넘는다.

그가 스터디 카페에서 귀가하는 시간은 평소엔 새벽 1시이고, 요즘 같은 시험 기간에는 새벽 3시라고 한다. 대개 그때까지 어머님이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며 간식을 챙겨주신다며 감사해했다. 간혹 주무실 경우, 인기척 없는 집에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 좋지는 않단다.

야식을 먹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잠깐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하루 중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그는, 지난밤엔 친구들과 SNS를 하느라 새벽 4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친구들도 깨어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는 고작 2시간 반 남짓 자고 등교한 셈이다. 이쯤 되면 '아동 학대'란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부작용 잘 알면서도 에너지 음료 들이켜는 아이

학부모들은 매일 피곤함에 절어 어깨 축 처진 채 등교하는 자녀가 너무나 가엾다고 이구동성 말한다. 그러면서도 만만치 않은 액수의 학원 수강료와 스터디 카페 이용료를 흔쾌히 결제한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대입에 목매다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거다.

그들도 모르진 않는다. 자녀가 등교하자마자 엎드려 자고, 수업 시간 졸음을 쫓기 위해 '에너지 음료'를 습관처럼 마시며, 햇볕 쬘 여유조차 없이 딱딱한 의자에 종일 앉아 있는다는 사실을. 밤 10시 야자가 끝난 뒤에도 새벽녘까지 공부에 시달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면 몸이 멀쩡할 리 없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온갖 몸에 좋다는 보약을 지어 먹이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충분한 잠과 휴식이다. 조언이랍시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 평범한 사실을 그들에게 건넸다간 조롱거리가 될 게 뻔하다.

밤 10시 하굣길, 그는 가방 속에서 또 하나의 '에너지 음료'를 꺼내 마셨다. 오늘은 세 개째라고 했다. 청소년의 경우 카페인의 과다 섭취가 성장 발육에 장애가 되며 불면증과 두통, 혈압 상승 등의 부작용이 더 쉽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했다. '에너지 음료'의 부작용은 순간 견뎌내면 되지만, 한 번 고꾸라진 성적은 회복할 길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적어도 건강과 성적을 기꺼이 맞바꿀 수 있다는 아이들에겐 통하지 않는 금언이다.

태그:#에너지 음료, #중간고사, #야간자율학습, #스터디 카페, #아동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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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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