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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남짓이 되었다.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상황일까? 궁금했지만 바쁜 일상에 미뤄뒀던 관심사였는데 마침 작가와의 대화가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고 하여 지난 8일 다녀왔다(전시는 4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있었다. 국제적인 분쟁 현장을 다닌 경험이 많은 김상훈 사진작가(Kish Kim)는 올해 2월,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와 최대 접전 지역인 돈바스 전방 및 전쟁 초기 격전지를 다녀왔다.

"현장 도착부터 폭격이 떨어지고, 분노와 격앙만 가득한 곳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전쟁이 10년이 넘게 지속되는 곳은 낙담한 채로 지내기도 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고 있는 뚜렷한 성격이 드러나지 않아 작가로서 고민이 좀 되긴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돈바스 전방 기차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부부 두 쌍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 작별 인사 돈바스 전방 기차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부부 두 쌍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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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작가에 따르면, 스비틀라나 젤다크(45)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참으며 "나의 소원은 가족들을 따라 하늘나라로 따라가는 것이지만 아직 할 일이 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쟁이 끝나기 위한 일들을 하고 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해 3월 자신의 집에 떨어진 러시아 미사일에 남편(42), 딸(21), 예비사위(33), 아들(14), 할머니(86) 5명의 온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이 여인뿐만 아니라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비슷한 얘길 했다고 전했다. 어떤 약사는 전쟁 첫날에도 출근을 해서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우리 집도 걱정이 많이 되지만 약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문을 닫을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고 김 사진작가는 밝혔다. 

 
우크라이나 공군기지가 있는 호스토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개전 초기 주요 격전지 중 한곳이었다. 공군기지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 블라디슬라우빈차르스키(11세)는 전쟁을 겪은 후 포탄을 모으기 시작했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 포탄 수집하는 우크라이나 소년 우크라이나 공군기지가 있는 호스토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개전 초기 주요 격전지 중 한곳이었다. 공군기지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 블라디슬라우빈차르스키(11세)는 전쟁을 겪은 후 포탄을 모으기 시작했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 Kis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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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작가는 11살 소년의 이야기도 전했다. 소년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뒷마당 지하창고로 대피했다. 좋은 방공호 시설도 아닌데 소년에게는 유일하게 공포를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공습경보가 끝나도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전쟁 초기부터 교전도 직접 보고, 길거리에서 죽은 사람을 보기도 하고, 집에 포탄이 떨어지는 일도 겪다 보니 1년이 지나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이르핀의 한 빈 집을 지키고 있는 개. 다른 곳에 피난 가있는 주인이 가끔 와서 밥을 준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 빈집 지키는 우크라이나 개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이르핀의 한 빈 집을 지키고 있는 개. 다른 곳에 피난 가있는 주인이 가끔 와서 밥을 준다_김상훈 작가의 말 중에서
ⓒ Kis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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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지지와 도움 너무 감사하다. 대사관으로 동전을 가져온 세 명의 아이들도 있었다.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를 더 잘 이해하는 게 아닐까 한다. 국제기구에서의 한국의 정치적 지원 또한 큰 힘이 된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전시에 참가한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전시회 보며 느낀 점은 우크라이나 사람들 전원이 뭉쳐 있구나 느꼈다. 국가 이익에 따른 복잡한 계산들이 각자 있겠지만 그럼에도 인류애를 발휘하여 지원할 때다. 우리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우리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적극적인 도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라고 호소했다. 
 
드미트리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진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우크라이나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절실히 꽤 오랫동안 밝히며 관심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상훈 작가, 김영미 대표, 우크라이나 대사, 통역가
▲ 발언하는 드미트리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드미트리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진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우크라이나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절실히 꽤 오랫동안 밝히며 관심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상훈 작가, 김영미 대표, 우크라이나 대사, 통역가
ⓒ 이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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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창 전 우크라이나 대사는 "그동안 BBC, CNN 등의 외국뉴스를 보며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챙겨 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왜 소식을 제대로 전해주는 기자가 없는지 안타깝다. 이번 전시는 우크라이나 전쟁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보여준 전시가 아닌가 한다. 두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고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사진을 보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회자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며 주최 측에 대한 감사 말을 전했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20개국을 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알린 바 있는 성남훈 사진작가는 "처음에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사진과 글을 보니 앞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작업할 다른 한국 작가들의 프로젝트에 좋은 선행 작업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다큐앤드뉴스코리아 김영미 대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전시다. 대한민국 정부가 취재 허가를 잘 안 내줘서 외교부를 설득하느라 고생 좀 했는데 언론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인지해 줬으면 한다. 내년 2월에 우크라이나에서 우리가 준비한 다큐를 방영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이 날까? 김상훈 작가는 일화를 통해 답을 대신했다.

"당장은 아닐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신문에 실렸고, 그 신문을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보여줬다. 그랬더니 왜 지도에 크림반도가 빠져있느냐며 나에게 항의를 하는 군인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지도에서 독도가 없어져 우리가 화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보고 '전쟁이 아직 좀 더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야만적인 역사를 사진에 남기면서 부끄러워 하고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린 아이와 우크라이나 모든 사람들이 일상을 가장한 전시가 아닌 진짜 일상을 찾기 바란다."

태그:#우크라이나전쟁, #러시아전쟁, #우크라이나 사진전, #김상훈, #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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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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