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2 19:57최종 업데이트 23.04.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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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기획] 국민연금,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꿔야 하나  
① 국민연금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② 미래세대 부담은 얼마나?
③ 이해당사자 목소리가 안 들린다


프랑스 노동자들이 연금개혁안에 반대해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는 한국이 먼저 시작했다. 작년 11월부터 여야는 국회에 연금개혁특위를 설치했고, 그 산하에 민간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개혁안을 모색 중이다. 올해 1월에는 이 자문위에서 보험료 15% 인상안에 합의했다는 오보가 떠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 안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특위 여야 간사는 한가하게도 보험료 및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연금지급 비율) 논의는 제쳐두고 구조개혁 논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난방비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뜨거운 판에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은 여야 모두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였을 것이다. 가깝게는 대통령 지지율, 멀리는 내년 총선에 보험료 인상이 미치는 효과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랑스 마크롱 정권은 올해 1월 10일 연금 수급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정년도 64세로 늘리는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노동총동맹(CGT) 등 노동조합이 주도하여 1월 19일부터 3월 15일까지 8차례 총파업을 진행했다. 총파업은 교통, 학교, 에너지 등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집회 규모가 작게는 130만 명에서 많게는 350만 명에 이르렀다.

연금법 개정안은 3월 16일 상원을 통과하고 하원 표결을 앞두고 있었는데, 정부가 하원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특별 헌법 조치'를 적용하여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70%가 반대하고 노동자의 총파업 투쟁 등 저항이 거센데도 프랑스 정부는 "국가적 파산 위험"을 이유로 의지를 관철한 것이다.

법안 통과 이후 즉각적으로 폭력, 방화 등을 동반한 시위가 발생했고, 소강 상태였던 총파업도 9차(3. 23), 10차(3. 28) 총파업에 최대 350만 명이 참여할 정도로 확대됐다.

프랑스처럼 거세게 저항할까
   

3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연금개혁 반대시위에서 한 남성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5년에 한 번 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2023년에 실시하기 때문에 연금 개혁이 당면 과제가 됐다. 연금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고 윤석열 정권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8년에는 문재인 정권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동시 인상을 추진했으나 경영계의 반대와 정부의 개혁 의지 결여로 실패한 바 있다.

"왜 노동계는 연금 개혁에 미온적인가?" 이 질문은 아마 프랑스와 비교하여 한국의 연금 개혁이 너무 조용하게 진행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스스로 개혁안을 내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맡겨뒀다가 높은 보험료율 제안에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고 있는 형국이다. 프랑스와 같이 정부안으로 개악 안이 나온다면 한국의 노동자도 지금처럼 말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료만 올리고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등 재정 안정화에 기반한 개악 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와 같은 거센 저항을 기대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분노는 해악을 끼치는 자에 대한 미움"이라고 했다. 분노는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중요도에서 그 깊이가 결정된다.

프랑스의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연금은 노후의 존엄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도이다. 프랑스는 이번 개혁으로 최저 연금액을 142만 원에서 168만 원으로 올렸다. 프랑스의 연금액 수준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프랑스 사람들에게 연금이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높은 소득대체율)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우습게도 연금을 개악하려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국민연금 자체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국민연금이 우리 노후에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연금 개혁에 대해 노조가 수행할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

노후 소득의 두 기둥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즉 공적연금이 사적연금이나 금융상품에 비해 월등히 우수함을 노동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세대 간·세대 내 연대(소득재분배), 높은 수익률, 국가의 지급보장 등 공적연금은 사적연금과 근본부터 다르다. 원래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에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노조가 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적연금을 강화하려는 의지가 없는 정권일 경우 더욱 그렇다.

한국의 연금 개혁은 지금까지 크게 두 차례 진행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07년 2차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대폭 낮추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득대체율이 2008년 50%에서 시작해 2009년부터 매년 0.5%p씩 낮아지고 있으며 2023년에는 42.5%, 2028년부터는 40%가 된다. 국민연금은 용돈 연금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이유다. 
 

1, 2차 국민연금 개혁 주요 내용 ⓒ 국회예산정책처 자료 재작성

 
지난달 31일 발표한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전보다 2년 앞당겨졌다. 역시 저출생·고령화의 심화로 보험료 수입은 감소하고 지출은 증가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국민연금 재정수지 전망 *수지 적자 시점은 당년도 지출이 총수입(보험료수입+기금투자수익)보다 커지는 시점임. ( ) 값은 적립기금 규모 ⓒ 보건복지부


연금 개혁의 연혁과 이번 재정계산의 결과를 보았을 때 정부의 답은 딱 하나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 물론 급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정신 나간 전문가들도 있지만 2차 개악으로 연금의 지급률(소득대체율)이 너무 낮아져서 더 이상 낮추기는 힘들 것이다(OECD 회원국 평균 42.2%, 한국 31.2%). 또한 연금 수급 연령을 이미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추고 있는 반면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급 연령을 더 이상 늦추기는 어렵다.

이제 재정 안정화를 위해 남은 선택지는 보험료 인상밖에 없다(OECD 국가 평균 18.3%, 한국 9%). 다만 보험료 인상은 지지율과 각종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여당으로서는 선택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에서도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동시에 인상하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결국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정치적 부담으로 개혁에 실패했다.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외치는 이유

노동조합도 어려움이 있다. 프랑스같이 보험료율 인상, 수급 연령 지연 등 재정 안정 중심의 개악 안을 제시한다면 개악 저지 투쟁을 하면 된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노후 생존권 확보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하는 사명이 있다. 연금 급여가 노후 최저 생계비, 더 나아가 적정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떨어지고 있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연금 개악 저지와 연금 개혁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

지금의 소득대체율에 따라 연금액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지 확인해보자. 예를 들어 생애 평균소득이 280만 원인 노동자가 30년을 가입했을 때 연금액은 85만 4470원이다(임금 인상과 연금액 조정은 모두 무시).   
 

2023년 적용 예상 연금 월액 * 2023년부터 향후 동일한 기준소득 월액으로 가입하였을 때의 연금액임 ** 2023년 적용 A값(가입자 평균소득 월액) 286만 1091원에 근사한 280만원을 B값으로 하고 재정추계에서 평균 가입기간에 근접한 30년을 가입기간으로 함 ⓒ 국민연금공단

 
평균소득의 근로자가 향후 가입자의 평균 가입 기간에 가입하면 65세에 85만 원을 연금액으로 받게 된다. 이는 생애 소득의 31% 정도가 된다. 이는 2018년 정부가 발표한 1인 가구 기준 은퇴 후 최소 생활비 약 95만~108만 원에도 모자라며, 적정 생활비 약 137만~154만 원과는 차이가 크다.

또한 2021년 국민연금연구원에서 조사한 50대 이상이 생각하는 최소 생활비(부부 198만 원, 개인 124만 원)와도 차이가 크며, 적정 노후 생활비(부부 277만 원, 개인 177만 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중고령자 인구 특성별 주관적 노후 필요 생활비 수준 (단위 : 만 원/월) ⓒ 국민연금연구원 ‘국민노후보장패널 8차 조사’

 
노인빈곤율, 노인 자살률 OECD 1위라는 얘기는 더 이상 입이 아플 지경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은 노후 소득 보장이다. 그 핵심은 소득대체율의 인상이다. 현재의 국민연금 수급액 월 58만 원과 기초연금 30만 원은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말도 사치스럽다. 생존권의 문제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공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강화라는 노후 생존권의 문제를 위해 싸워야 한다.

2018년 연금 개혁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9%→12%)에 동의했다. 또한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한 한국노총 역시 참여한 시민단체와 함께 동일한 보험료 인상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더 중요하다.
   

31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을 찾은 시민이 상담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이날 향후 70년의 국민연금 급여지출과 적립기금 변화 추이 등을 산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2023.3.31 ⓒ 연합뉴스

 
그 전제는 첫 번째로 소득대체율의 인상이다. 소득대체율을 2018년 적용받던 45%로 올리고 앞으로 2008년 기준인 50%로 점차 상향 조정하자는 것이다. 재정안정만을 위한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고 노후 소득을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보험료의 점진적 인상에 동의한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 가입자 및 특수고용 노동자의 보험료 경감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 가입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는 지역 가입자로서 보험료 전체를 개인이 부담한다. 따라서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사업장 가입자 전환으로 보험료 부담을 경감해야만 보험료 부담에 따른 사각지대 해소를 할 수 있다. 소득대체율을 올려봤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이중화,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생긴 격차가 노후 소득에까지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기금위)에 수상한 기운이 돌고 있다. 3월에 열린 기금위 회의에서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 운영규정을 개정하는 안건이 상정되었다. 수탁위는 의결권 및 적극적 주주권 행사와 관련된 전문위원회로 기금위 하위 기구이다. 수탁위는 원래 근로자, 사용자, 지역 가입자 대표가 추천하는 9인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그런데 복지부는 이번 개정을 통해 9인 중 3인을 전문가 단체에서 추천하는 위원으로 교체하는 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 전문가 단체는 당연히 자본과 정권에 친한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연구원 등이다. 물론 노동자 대표인 양대 노총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유례 없는 표결로 안건이 통과됐고 민주노총 기금위 위원은 저항의 대가로 해촉되었다.

기금위 위원들을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교체하여 기금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다른 한 측면으로 보험료율 인상이 부담스러운 윤석열 정권이 기금위 전문성 제고를 큰 성과로 포장하여 이것이 연금개혁이라고 퉁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회자되고 있다.

재정안정론은 청년에게 죄짓는 것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풍조는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개인들에게 노후소득 준비에 대한 역선택을 하게 만든다. ⓒ 셔터스톡

 
최근 연금 개혁 논의에서 재정안정론에 기반해 "기금 고갈로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고 보험료는 큰 폭으로 인상될 것"이라는 대대적인 공포 마케팅이 벌어졌다. 또한 세대 이슈 프레임을 덮어씌워 청년세대가 보험료는 과중하게 부담하고 연금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기사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풍조는 사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개인들에게 노후 소득 준비에 대한 역선택을 하게 만든다. 낮은 연금액의 결과는 미래에 발생한다. 개인은 역선택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게 되지만 공포를 일으킨 자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1995년 국민연금을 농어촌 지역으로 확대할 때도 비슷한 문제로 가입률과 징수율이 저조했다. 그 결과 현재 도시와 농어촌에 연금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1996년 농어촌 국민연금 확대 사업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살펴보자.
 
국민연금 기금의 비합리적 운용에 의한 재정 고갈과 특수직역 연금의 재정 고갈에 관한 기사가 언론에 회자되면서 국민들은 공적연금의 장래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외에도 국민연금 확대와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개인연금의 가입자 수 증가 경쟁은 개인연금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은 국민연금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1996, 김용하, 보건복지포럼

2023년 언론 기사를 살펴보자.
 
"연금개혁 못하면, 2060년 월급 30% 국민연금으로 내야!"
"2055년 국민연금 고갈… MZ세대 불만"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것"
"생보사 연금보험 판매 '활기'… 국민연금 불안에 '반사이익'"

27년 전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현재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은 연금 개혁 논의를 어렵게 한다. 그 결과 지금의 노인들이 겪는 노후의 절망을 청년과 미래세대에 대물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태훈 / 국민연금노동조합 대외협력위원장 ⓒ 김태훈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태훈은 국민연금노동조합 대외협력위원장이자 민주노총 정책국장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 25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공인노무사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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