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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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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마침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정부·여당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그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보인 아집과 독선, 무책임과 무능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윤 대통령의 말처럼 "궁극적으로 쌀의 시장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지" 아니면 야당의 말처럼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에 기여할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동안의 여론은 윤 대통령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2022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의 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이 '쌀값 폭락을 막고, 식량자급률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긍정적 의견이 61%, '쌀의 과잉 공급과 재정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부정 의견이 25%였다. 연령, 지역, 지지정당,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긍정 의견이 훨씬 많았다.

2023년 3월 27일부터 29일의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55.2%가 반대한 반면에 찬성은 37.1%에 그쳤다. 대통령은 40개 농업인 단체의 반대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서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찾았다. 그렇다면 개정안에 서명한 231개 농업인 단체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것인가.

전문가들이라고 하지만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무총리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끼워 맞추기식 연구가 전부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정부·여당, 정책은 제시하지 않고 비난만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2023.3.29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장관. 2023.3.29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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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부득이 거부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면, 적어도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니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니 하는 거친 말로 맹비난하며 국민 여론과 국회 입법권을 무시하였다.

한편 정부·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021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최초 발의되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논의되고 2023년 3월 23일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에 반대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위협하였을 뿐,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반대와 거부권 행사가 능사가 아니라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이라면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 공론을 이끌어야 했다. 대통령은 거부권도 있지만 법률안 발의권도 있다. 왜 대안은 마련하지 않고 거부권만 행사한 것일까. 한마디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두고 여당과 야당이 사생결단을 내듯 싸웠지만, 잘 따져보면 별일도 아니다. 현행 양곡관리법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수급 안정(가격 안정)을 위해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단경기(7~9월 햅쌀이 나오기 직전 시기)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최근 5년 최고 최저 수치를 제외한 평균)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초과 생산량의 범위 내에서 수급상황을 감안하여 매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 시행 등에 관한 규정').

이 규정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쌀 변동직불제(목표가격제)를 폐지하면서 쌀값 하락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를 달래기 위한 약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농식품부 장관이 이 규정(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2021년산 쌀값이 45년 만에 평균 20% 대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성난 농민들이 정부에 격렬하게 항의하였고, 놀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매입할 수 있다'는 재량 조항을 '매입한다'는 의무 조항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다. 양곡관리법의 규정만 잘 지켰으면 양곡관리법 개정을 둘러싸고 사생결단할 필요가 없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을 꾀하려던 지난 1년 반 동안의 지루한 논쟁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나고 말았다. 야당은 재의결 혹은 새로운 법안을 추진한다지만 국회의원 2/3의 찬성이 필요하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해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억대의 연봉을 받고 편안히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식품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쌀 수급을 안정시키고 농가소득 향상과 농업발전에 관한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주길 당부"하였다. 후보 시절 쌀 초과 생산량에 대한 정부의 시장격리(의무 수매)를 강하게 요구한 윤 대통령이 지금은 딴 말하니 이 당부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관련기사: '양곡법 거부' 윤석열, 대선 땐 "정부, 추가매수해 쌀값 하락 막아야" https://omn.kr/23dw0).

안 그래도 양곡관리법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데
  
초과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인, 기권 7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3.3.23
▲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초과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인, 기권 7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3.3.23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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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문화를 일군 터전이다. 쌀은 식량안보의 보루이자 농민의 주된 소득원이고, 우리의 하루 섭취 열량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곡물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에서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해도, 과연 쌀값과 농가소득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의 의무 매입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행법의 규정보다 매입 발동 요건을 완화하고 정부의 재량을 확대하여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개정안은 시장격리요건을 초과 생산량 3~5%이거나 쌀값 하락률 5~8%로 완화하였다. 그리고 개정안 시행 이후 벼 재배면적이 증가할 경우에는 시장격리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초과 생산량에 대한 매입 의무를 없애고, 벼 재배면적이 늘어난 지자체는 정부 매입량을 감축할 수 있다.

이렇듯 국회의 지루한 논의 과정에서 합의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개정안의 본래 취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현장에서 개정안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 '누더기 양곡관리법은 필요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쌀마저 위기에 빠뜨린 '쌀 예외주의'

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되풀이되는 쌀 과잉과 쌀값 폭락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쌀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쌀이 언제부턴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쌀의 만성적인 과잉 공급 때문이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흔하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2000년 이후 실질 쌀값은 30% 이상 하락하였는데 소비도 같이 줄었다.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경제원리(수요의 법칙)가 작용하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쌀 농정, 쌀 예외주의의 결과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농정은 한마디로 '쌀 농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이 부족하였던 1970년대 말까지 정부는 쌀 증산에 채찍과 당근을 동원하여 총력을 다했다. 쌀은 시장에서 매매되는 재화임에도 시장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우루과이 라운드다. 당시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농산물에 대해 완전 개방을 결정하면서 "쌀만은 안 된다"는 쌀 예외주의를 채택하였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쌀 한 톨이라도 개방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하였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화난 농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약은 식언이 되고 말았지만 이후 쌀은 경제재가 아닌 확실한 정치재가 되었다.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내주는 쌀 예외주의를 지켜왔다. 쌀이 매우 중요한 식량인 것은 맞지만, 나는 "쌀만은 안 된다"는 논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왔다. 쌀만 지킨다고 우리 농업이 지속가능할 수 없고, 종국에는 쌀마저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려가 현실로 되었다.

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쌀 예외주의에서 벗어나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식량 위기를 절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쌀이 그나마 식량안보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쌀마저 공급과잉이라고 아무 대책 없이 쌀 생산량을 줄인다면 식량 안보에 정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

쌀이 공급과잉이라고 하지만 소비에 비해 생산이 많이 되기 때문은 아니다. '저율관세할당물량(TRQ)'으로 의무 수입되는 40만 8700톤을 빼면 오히려 20만 톤 이상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쌀이 남는다고 해서 쌀 생산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쌀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 식량자급률을 제고하고 쌀값과 농가 소득을 안정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에서 상경한 251개 농민단체 농민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3.4.3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에서 상경한 251개 농민단체 농민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3.4.3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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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식량 안보 차원에서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쌀 수급 상황에 맞게 쌀 재배 면적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쌀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줄이고 고급화하는 것이다. 일본 니가타현의 우오누마 고시히카리(魚沼コシヒカリ)는 보통 쌀의 2배 가까이 비싼 값을 받는 고급 쌀인데, 생산 과정에서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제한한다. 친환경 쌀 생산을 전면화한다면 쌀 생산량을 줄이고 쌀값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소비가 줄고 있는 주식용 쌀 이외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재배를 장려하고 논에 밭작물인 밀, 보리, 콩, 옥수수(사료용 포함), 전분 원료용 고구마, 사탕무 등 다양한 전작(轉作)을 추진한다.

정부는 지난 해 벼 재배면적을 72만 7천ha에서 69만ha로 3만 7천ha를 줄이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5천ha 감소에 그쳤다. 그리고 올해부터 정부는 112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전략 작물 직불제를 실시하여 논 재배 면적을 3만ha 이상 줄이려고 한다. 전략작물이란 밀, 콩, 가루쌀 등 수입 의존성이 높거나 논에서 밥쌀용 벼 재배를 대체할 수 있어 논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작물을 말한다. 그 성과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회의적 시각이 많다. 대상 작목 폭이 좁고 지급단가도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참고가 된다. 2009~2021년에 논 면적은 유지하면서 주식용 쌀 재배면적은 2009년 159만ha에서 2021년에는 130만ha로 급속히 줄였다. 반면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콩, 밀 등 전략 작물의 재배 면적은 2009년 32만ha에서 2021년에는 51.2만ha로 크게 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략 작물에 대해 각종 직접지불로 수익을 충분히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생산조정제)을 실시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타 작물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7%인 반면에, 일본은 밀 자급률을 4%에서 17%까지 끌어올렸다. 적극적인 가격 및 소득지지정책으로 밀의 수익성을 보장한 덕분이다.

둘째, 쌀값 안정 및 쌀 농가소득 보장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쌀을 비롯해 농산물은 풍흉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재배면적 조정만으로는 쌀값을 안정시킬 수 없다.

미국의 가격하락대응직불제도(CCP: Counter-cyclical Payments)나 수입보전직접지불제(ACRE: Average Crop Revenue Election)처럼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그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제도를 15개 주요 농산물에 적용하고 있다.

식량 안보를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를 쌀 뿐 아니라 미국처럼 주요 농산물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의 의뢰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재단법인 GS&J가 연구(이정환 외, '농산물가격 및 농가경영안정 정책방향과 대안', 농특위, 2020)한 바에 의하면 쌀을 포함한 주요 농산물 16개에 대해 실질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 그 차액의 85%를 보전한다 해도 재정 소요액이 연간 1조  원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쌀 농가의 소득 손실을 충분히 보전할 수 없다. 202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공익형직불금을 대폭 확대하여 농가 소득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2020년 농특위는 현재 농업 재정을 조정하여 적어도 8조 원의 공익형 직불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셋째, 쌀 소비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kg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선 후 매년 일관되게 감소하여 2021년에 56.9kg까지 줄었다. 그렇지만 소비 감소 추세가 둔화하고 있고, 적극적인 소비 확대 정책을 실시한다면 일인당 쌀 소비는 장기적으로 50kg 이상 선에서 안정될 것이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소득계층별, 세대별, 용도별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여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

넷째,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을 위해 국가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실시되면 2030년에는 연간 1조 4천억 원의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정부는 양곡 매입 단가는 1kg당 2667원인데 3년 비축 후 주정용으로 판매할 땐 400원에 불과해 재정에 큰 손해가 난다고 했지만, 이는 논 면적의 타 작목 전환을 고려하지 않은 과장된 수치이다.

문제는 재정에 손해가 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러한 일이 필요하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낭비적인 군사비를 엄청나게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군사력 이외에 식량 안보도 중요한 거 아닌가.

최근 정부는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액의 최대 25% 세액공제를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재벌 대기업들은 수십조 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유독 농업 부문 재정 투입만 아까운 것인가?

다섯째, 쌀의 시장격리를 위한 의무 매입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하면 쌀값 안정화와 벼 재배 농가의 소득 안정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쌀 시장격리의 쌀값 안정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또한 시장가격의 수급 조절 기능이 약화하고, 타 작물 전환 정책에 대한 농가 참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

소비를 늘리고 벼 재배면적을 줄여 수급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쌀값 변동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가격하락직불과 공익형직불로 대응하고 하락이 예외적으로 큰 경우에 한해서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2022년 논벼 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논벼 생산비는 지난해보다 8% 올랐으나 쌀값은 전년에 비해 13% 감소하여 10ha당 쌀 소득은 18% 감소하고 순수익은 무려 37% 감소하였다. 비중이 줄었다고 하나 농업 소득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여전히 높다. 농경지 면적에서 벼 재배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47.3%이고,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가도 39만 호로 가장 많은 농가가 쌀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쌀값 하락은 쌀 농가뿐 아니라 농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한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쌀 초과 생산량의 의무 매입을 요구했겠는가. 아무 대책 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일이 아니다. 정부, 국회, 농민, 시민사회, 소비자 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공론을 토대로 대통령이 책임지고 답을 내야 한다. 충분한 논의 없이 이미 하고 있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을 끌어모아 무슨 특단의 대책인 것처럼 발표하는 일은 하지 않기 바란다.

태그:#대통령거부권, #양곡관리법 개정안, #전략작물직불제, #식량안보, #쌀 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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