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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를 배운 지 석 달이 넘어간다. 하와이의 전통춤 그 훌라(hula) 맞다. 내가 훌라를 배운다고 하면 대개 놀라면서 "왜 훌라는 배우고 싶었어?"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언제부터 훌라를 추고 싶었을까?

내가 훌라에 호감을 느낀 계기
 
책 <하와이하다>의 일부
 책 <하와이하다>의 일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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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 나는 경향신문에 실리는 선현경의 <잠시 멈춤>이란 연재를 챙겨 읽었다. 2년간 '하와이살이'를 하면서 보내온 글은 이국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이후에 작가는 연재물을 다듬고 새 글을 쓰고, 남편(이우일)이 그린 그림을 함께 실어 책 <하와이하다>를 냈다.

서핑하며 파도를 고르는 일, 남편의 취미생활인 LP와 하와이안 셔츠 수집, 하와이안 특유의 느리게 사는 삶 등 여행과 일상 사이 그 어디쯤의 소소한 행복과 다정함을 담았다.

책 중에서(신문에서 봤을 때도) 나는 이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작가는 훌라 수업을 함께 듣는 프랑스인 친구 줄라이와 와이키키의 해변 식당에 공연을 보러 간다. 친구 줄라이가 낮에 버스에서 처음 만나 초대한 게이 부부 호세와 제프리도 왔다. 공연을 보고 나온 네 명은 지는 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줄라이가 두 남자의 결혼선물로 훌라춤을 보여주자고 제안한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하와이 노래가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릴락 말락 했고, 훌라 댄스의 순서는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줄라이는 모래사장에 맨발로 서서 우리 맘대로 즉석 훌라 댄스를 추었다. 호세는 안 들리는 음악을 더 잘 들으라며 휴대전화를 우리 귀에 갖다 대준다. 국적도, 성 취향도, 언어도 다른 네 사람은 와이키키의 석양을 바라보며 춤을 추었다." (229쪽)

유쾌한 장면을 통해 나는 훌라에 대해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는 춤, 함께 웃으며 행복해지고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춤. 훌라는 그런 춤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상상이 언젠가 훌라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실수해도 괜찮아
 
책 <하와이하다>의 일부.
 책 <하와이하다>의 일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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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와이하다>를 다시 꺼냈다. 최근 훌라를 배우며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마침 작가가 지금 나와 비슷하게 훌라 수업이 석 달째 접어들었을 때 쓴 글은 꼭 나를 보는듯하다.

작가는 훌라 수업에서 처음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무슨 손동작을 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았다. '몸과 싸우지 말라'는 쿠무(훌라 선생님을 이르는 말)의 조언을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니 이제야 춤이 남들과 조금 비슷하게 춰진다고 말한다. 여전히 동작은 어설프고, 혼자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돌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리바리 갈팡질팡하다 실수하고 식은땀을 닦으니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실수한다는 건 좋은 징조야.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거거든. 노력하니까 실수도 하는 거야. 실수하고 나면 틀린 걸 알게 되고 그럼 고칠 수 있거든."" (123-124쪽)

'실수해도 괜찮다'라는 쿠무 덕분에 나도 훌라를 출 때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디 훌라뿐일까? 누구나 실수하지 않으려다가 더 경직되어 일을 망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경쟁이 만연한 우리 사회 분위기와 남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은 어떨까? 어떤 시도도 안 하기에 실수도 없는 것보다 멋지다고 나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내가 가는 훌라 수업에서는 모두 머리에 꽃핀을 꽂는다. 훌라를 오래 배운 수강생은 꽃 꾸러미 목걸이 레이(lei)를 목에 걸거나, 머리에 화관을 쓰기도 한다. 하와이에 온 듯 착각하게 만드는 화려함이 보기만 해도 즐겁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가 레이를 만드는 수업에 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레이 만드는 수업에 신청했는데, 가보니 할머니들만 있어서 깜짝 놀란다. 수제 쿠키와 망고를 대접해주는 할머니들의 환대 속에서 그는 레이 만드는 법을 배운다. 알고 보니 5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우리나라 현충일에 해당)에 하와이 국립묘지에 걸 레이가 무려 오천 개가 필요했던 것. 할머니들보다 손이 세 배나 빠른 작가는 그들의 구원투수가 되어 사랑받았다는 이야기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레이는 꽃으로 만드는 게 제일 흔하지만, 초록 잎사귀로 만들기도 한다. 재료가 되는 티(ti) 잎은 건강과 복을 가져다주고 악귀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잎으로 만든 레이는 건강과 행운을 지켜준다는 의미다. 목걸이 형태가 아니라 긴 줄처럼 목에 거는 모양도 있는데, 서로의 마음을 가두지 않고 항상 열어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환영의 의미로 걸어주는 꽃목걸이 혹은 훌라 댄서의 장신구라고만 생각했던 레이 하나에도 이런 깊은 뜻이 있구나 알게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책 제목 <하와이하다>는 포루투갈어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라는 뜻처럼 작가는 하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와이하다>는 바로 창문 같은 책이었다. 책을 통해 훌라를 바라볼 수 있었고 직접 배우는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나에게 "왜 훌라는 배우고 싶었어?"라고 물으면 이 책을 내밀어야겠다. 나도 언젠가 석양 지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훌라를 출 수 있기를 꿈꾼다고 말하면서.

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은이), 이우일 (그림), 비채(2019)


태그:#하와이, #선현경, #훌라, #와이키키, #창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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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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