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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매일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로 알약들을 삼킵니다. 5년 정도 되어가는 복약이 이제 지겹다기보단 당연한 게 되었어요. 깜빡했을 때는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하루이틀 먹지 않다 보면 복약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꼭 챙깁니다. 하루 약을 깜빡한다고 해서 바로 심각하게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지만, 이틀째 되는 날에 몸이 무거워지는 등 신체적 현상이 나타나서 미복용을 알게 됩니다.

알약이라는 애증의 존재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알약들을 복용하는 건 귀찮으면서도 제게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약을 복용한 지 5년 정도가 되었지만, 아침마다 약을 복용해야한다는 사실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알약들을 복용하는 건 귀찮으면서도 제게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약을 복용한 지 5년 정도가 되었지만, 아침마다 약을 복용해야한다는 사실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 Hal Gate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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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인 저에게 알약은 조금 애증의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알약을 먹는 행위를 타인에게 보이면 염려와 편견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래서 왜 약을 먹는지 질문을 받으면 영양제라고 속일 때가 많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걸 밝힐 때도 '나는 지금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야'까지는 말해도 '사실 이 정신질환이 중해지면 괴롭고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라고까지 말하지는 못합니다. 사회적 편견이 핵심 원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알약을 복용하면서 거짓말쟁이가 되니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동시에 알약을 먹는 행위는 제가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매일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약을 복용하는 사람인 저는 약을 복용하지 않는 비정신질환자들과 다른 카테고리에 해당된다는 걸 매일 깨닫는 셈이죠.

이 깨달음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 또한 사회적 편견이 약을 영양제라고 속이는 핵심 원인이긴 해요. 타인과 같은 사회적 그룹에 속한다는 소속감과 동질감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인 저는 그래서 복약을 하면서 우울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치료약 복용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우리를 규정짓고 한계를 만들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전에 쓴 글에서 진단명과 질환이 정신질환자인 우리를 판단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러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요즘에는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제 알약을 복용합니다. 그만큼 다들 노화와 건강을 챙기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알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봐도 전보다 사람들이 덜 신경쓰곤 합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제 알약을 복용합니다. 그만큼 다들 노화와 건강을 챙기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알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봐도 전보다 사람들이 덜 신경쓰곤 합니다.
ⓒ Ksenia Yakovl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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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자기합리화는 필요합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서른 살이 넘는 친구들이나 직장인들 대부분 영양제 하나 정도는 챙겨 복용하고 있습니다. 비타민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으로 섭취하고, 안구 건강에 좋다는 영양제와 철분제,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영양제까지 종류도 많습니다.

지금은 조금 시들하지만 한때는 외국 쇼핑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영양제를 직구하는 게 유행이기도 했죠. 그런 현상들을 보면 꼭 질환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약을 복용하는 행위가 일상적인 것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요즘 추세를 지켜보면서 약을 복용하는 게 현재 가진 질환 때문이 아니라, 심각한 질환이 생기는 걸 늦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어 신체가 노화하면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질환이 적어도 하나씩 생기게 될테니까요(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요).

다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질환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고, 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질환을 가지게 되었지만 노화가 지속되면 뭐든 질환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은 언젠간 죽음을 맞이하고, 인간인 나도 언젠간 죽는다' 식의 하나마나한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간사하고 편리한 마음일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조현병 증상을 치료하기 시작한 이후로, 저는 자기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전의 저는 중요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엄격하지 못했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나 엄격했습니다. 가령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엄격하게 생각했지만, 저 자신을 우선 위해야 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생각에는 엄격하지 못했죠. 예전의 제가 가지고 있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 약간의 자기합리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알약을 복용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생의 끝에 다다르면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거고, 그 목적지에 가는 동안 여정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약을 복용하는 것 뿐이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니냐면서요.

목구멍을 매끄럽게 넘어가는 알약처럼 그럴싸해 보이는 비관적인 합리화지만, 우울한 감정은 들지 않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합리화는 자기포용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알맞지 않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도 시작합니다.

태그:#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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