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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설치미술가 장세록 작가
 충북 옥천 설치미술가 장세록 작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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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장세록(64) 작가가 평생의 터전 대구를 떠나, 충북 옥천의 작은 마을 안남면 도덕리로 이주한 건 "내 죽음을 나답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 덕분이다. 이 바람의 내면에는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뚝딱거리고 싶다"는 씨앗이 깃들어 있다. 

귀촌을 위해 여러 지역을 둘러보곤 마땅한 마을이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길을 잘못 들어 찾아온 안남면 도덕리가 장세록 작가의 마음에 운명처럼 스며들었다. 물과 산이, 인간과 자연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그윽하고 정다운 마을이었다. 

시골 마을 언덕 위에 작업실을 짓다

"엉덩이 힘으로 버티는 세밀한 바느질부터 망치질이며 톱질, 나무를 쪼개는 목공까지. 이런 게 모두 설치미술가의 일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규모 있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아파트 생활에 한계를 느꼈어요.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작업만 하고 살리라, 마음속으로 늘 되뇌곤 했죠. 아파트를 떠나니 하고픈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좋아요.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작품이 되고요. 주거 환경이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지요."

그렇게 도덕리 마을 언덕 높은 곳에 마을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집을 한 채 지었다. 1층은 장세록 작가만의 작업 공간, 2층은 주거 공간이다. 

오롯이 자신의 공간으로 지어진 작업실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오랜 재봉틀과 온갖 색의 실과 천, 조각보와 복주머니처럼 완성을 앞둔 작품들도 한가득이다. 직접 만든 책꽂이에는 소설과 시 같은 문학부터 각 분야 전문 서적까지 국경과 시대를 막론한 책들이 빼곡하다. 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이 공간을 장세록다운 것으로 빛나게 한다.

"사람들이 물어보곤 해요. 시골살이가 심심하지는 않느냐고. 저는 오히려 좋다고 그래요. 저는 혼자 집에 있어도 쉼 없이 바쁜 '집순이'거든요. 뼛속 깊이 시골살이를 꿈꾸며 살아왔으니, 나는 꿈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러죠. 부자연스러운 만남보다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는 것도 좋고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작업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뜨개질이며 바느질, 재봉틀을 돌리다 보면 인공적인 빛이 드문 시골의 낮이 도시보다 짧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간은 훌쩍 흘러가 어느새 사위가 어둑해져 있다고.

혼자만의 작은 공간에서 하고 싶던 것들을 하나씩 해내는 건 아직은 낯선 시골에서 하루를 빠르게 흐르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지극히 '혼자의 작업'이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은 왕왕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히기도 한다. 시골이라는 장소의 특성이 '나'보다는 '모두'의 삶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은 주민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많지요. 혼자 조용히 살 수 있는 곳을 찾으려면 도시가 더 나을지도 몰라요. 처음엔 시골스러운 인간관계에 썩 익숙하지만은 않았어요. 혼자 조용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골 역시 사람 사는 공간이고, 나 스스로 '이곳에 살기로 선택했다'는 책임을 부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소한이라도 성의를 보이려 노력해요. 대보름에 직접 만든 복주머니를 나눈다거나 마을회의에 참여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어보는 식으로요."
 
"아파트를 떠나니 하고픈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좋아요.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작품이 되고요. 주거 환경이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지요."
 "아파트를 떠나니 하고픈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좋아요.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작품이 되고요. 주거 환경이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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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곧 제 인생과 마찬가지예요. 가정을 건사하며 느꼈던 행복과 희열뿐만 아니라 분노 같은 모든 감정이 곧 지금의 작품이 된 거죠."
 "가정은 곧 제 인생과 마찬가지예요. 가정을 건사하며 느꼈던 행복과 희열뿐만 아니라 분노 같은 모든 감정이 곧 지금의 작품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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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행복이 싹을 틔웠다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나니, 삶에 관한 질문이 생기더군요. 예술적인 성취를 이루며 살 것인가 혹은 평범하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이건 제가 사춘기 시절 헤르만 헤세의 <지성과 사랑>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품어온 생각이기도 했어요. 오랜 고찰 끝에 그 답을 내리기로 했죠. 자식이 생겼으니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요."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날 무렵 미술을 향한 열정이 삶의 문을 다시금 두드렸다. 열정에 응답하듯 하루하루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그림을 그렸다. 학점은행제 학부 과정과 치열한 그림 수업으로 하루치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파르르 손이 떨려왔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다시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솟았다. 그야말로 미술에 모든 열심을 쏟아 붓던 때다. 주변에서 그의 건강을 염려하며 말릴 정도였다니 말이다.

"공정하고 따뜻한 할머니가 되자. 제 20대 시절 목표였어요. 22살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삶의 풍파를 몇 차례 겪으며 20대 시절부터 빨리 나이가 들어 40대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쯤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한편으론 그 나이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미 그 꿈을 이뤘지요.

미술 공부는 늦게 시작했어요. 마흔여섯쯤에요. 그림을 그리면서는 지금 미술을 만난 것을 운명이라 여겼고, 그간 돌보지 못했던 억눌린 마음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어요. 아이들을 키울 땐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였어요."

서양화 전공으로 석사과정에 진학해 설치미술을 접하면서 그는 미술이 운명이자 최선의 삶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구에서 학교가 위치한 대전까지 끼니 챙기듯 꼬박꼬박 통학길에 올랐다. 밤이면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도 학교 가는 길에 차오르는 새로운 에너지가 하루를 비췄다. 흩어져 존재하던 인생의 사건이 작품 안에서 마치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을 아우르는 가정과 행복, 전통과 같은 중요한 주제들도 이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학원 첫 과제 주제가 작품 속에 자신을 반영해 표현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때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을 돌아보게 됐죠. 너무 슬프더라고요. 잠도 이루지 못하고, 며칠을 눈물로 보냈어요. 몇십 년에 걸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딱딱해진 분노와 악한 감정들을 녹이는 과정이었죠."

그 자리에 새로운 씨앗처럼 떠오른 건 생각지 못한 복주머니였다. 분노의 끝에는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정을 건사해온 어머니라는 자각, 그리고 행복을 원하는 선한 마음이 있던 것이다.

"커다란 숟가락에 직접 만든 수천 개의 복주머니를 담은 작품을 만들었어요. 역사적으로 '엄마'란 존재는 결국 사람을 먹이는 존재이고, 먹이는 마음의 이유에는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거죠. 수천 개의 복주머니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의 소중함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제게 소중한 존재이고 또 삶의 주제이죠."

장세록 작가의 새로울 '새로'

"가정은 곧 제 인생과 마찬가지예요. 가정을 건사하며 느꼈던 행복과 희열뿐만 아니라 분노 같은 모든 감정이 곧 지금의 작품이 된 거죠.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 중 하나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점차 그 형태도 확대되고 있지요. 저는 가정 문제를 해결하면 많은 사회문제도 덩달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또 있다. 전통적인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복주머니, 그리고 조각보다. 손수 만든 수천 개의 복주머니를 숟가락에 얹어진 밥알로 은유하는가 하면 집을 형상화한 벽면에 걸거나, 촘촘히 못질한 벽과 천장에 매달기도 하고 전시를 찾는 관람객과 함께 나누기도 한다. 장세록 작가에게 행복이란 의미를 지닌 이 복주머니는 마을 주민들의 집 곳곳에도 전해진다.

조각보 역시 장세록 작가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조각보는 물건을 싸거나 밥상을 덮는 도구일 뿐 아니라 전통 공예의 한 분야로 한국을 대표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은 세련된 배치를 중시하기도 했는데, 그에 비해 한국의 조각보는 근본적인 역할에 비춰 순수함과 소박함이 강조되기도 한다고. 장세록 작가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특징이다.

"조각보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일상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요. 나아가 조화와 화합, 운명 같은 것을 은유하기도 하니 가정 혹은 가족과도 그 주제가 맞닿아 있지요.저 역시 이런 조각보의 아름다움에 빠져 작품을 만들고 있고, 올해 3월에는 예술공간 안남에서 제가 만든 조각보를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충북 옥천 설치미술가 장세록 작가
 충북 옥천 설치미술가 장세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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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작업실 앞 작은 컨테이너를 일상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도 세운다. 새로운 전시 공간의 명칭은 '새로'다. 장세록 작가와 며느리가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운명적으로 탄생한 이름이다.

"제 이름을 닮은 이름이면서도 '새로이', '새로운' 미래형인 '새로울'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의미 있죠. 이 작은 일상의 공간도 낯설고 새로이 느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뜻이에요. 마치 제 인생처럼요. 컨테이너에 새로움이 깃들면 갤러리로 변하는 것처럼 저도 미술을 하면서 작가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시선으로 온전한 내 인생을 살게 되었죠. 한편으론 주거 환경이 불러온 새로운 도전이기도 해요. 집 앞에 컨테이너를 둘 수 있는 곳을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우니까요."

장세록 작가는 "조건이 아닌 내면과 본질을 바라볼 끈질긴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새로'의 문을 연다. 그러기 위해 "작품을 좀 더 세상 밖으로 내보내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제게 주어진 능력이 삶과 세상이 준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이로 하여금 저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요. 작가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작업실을 만들어 하고싶은 일들을 하니까요.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제 작품을 건네며 '새로'를 꾸려갈 계획입니다.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월간옥이네 통권 69호(2023년 3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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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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