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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조카에게 물었다. 반장선거 나갔어? 4학년 때부터 조카는 5학년이 되면 반장선거에 나가겠다며 어떤 공약을 말해야 좋을지 물었었다. 그러나 조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방송반 됐는데 반장까지 하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아, 그렇구나.

그 얘기를 역시나 궁금해 하는 조카의 할머니, 즉 나의 엄마에게 전해주었더니, 잘했다. 피곤하지, 당연히라며 덧붙였다. 너도 고3때 반장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엄마의 삼킨 뒷말이 내 귓가에 이어졌다.

'니가 고3때 반장을 하지 않았다면 지방국립대학에 합격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편입을 한다고 서울로 올라가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서울에서 변변치 못한 직장생활을 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끌어안은 채 살지 않고, 고향 부모 곁에서 평범한 신랑감을 만나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지 않았겠니?'

엄마의 머릿속에는 행복에 대한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복잡하고 경쟁적이고 치열한 서울이 아닌 고향 소도시와 같은 여유로운 곳에서 안정적인 공무원을 만나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애를 낳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

평생직장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시대에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당신이 그렇게 목놓아 부르짖었던 공무원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을 한탄하면서 내 현재 모습에 한숨을 불어넣고 있다.

그런 엄마에게 공무원이 안정적일지언정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마음 편한 직업은 아님을, 1년 이내 퇴사 비율이 가장 높은 직업군이 공무원이며 얼마 전 늦깎이 공무원이 된 내 친구, 엄마가 부러워한 그 친구도 끝내 사표를 내고 나왔다는 걸 말해봤자 엄마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녹록지 않은 직업의 세계
 
공무원을 그만둔 친구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2번 하루 3시간씩 일하는 알바 자리에 지원을 했더란다. 그런데 그만 톡 떨어지고 말았다.
 공무원을 그만둔 친구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2번 하루 3시간씩 일하는 알바 자리에 지원을 했더란다. 그런데 그만 톡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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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 세상에 편하게 일하고 돈 버는 직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가자격 시험 봐서 합격하면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꿈의 직업을 아직도 선망하는 엄마에게 공무원이 못 되어 효도를 못 한 건 미안하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간접 체험한 공무원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업의 세계도 녹록한 일은 눈꼽 만큼도 없다는 걸 십수년 직장 생활을 한 나는 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녹록지 않은 현실이 무덤까지 갈 것 같다는 사실이다. 사오정이 되어 퇴사를 한 후 넥스트 잡 구하는 게 하늘에 별 따기가 되었다. 사십대 동료들은 주말에 통닭 튀기는 기술을 배우고, 퇴사한 선배들은 펜션을 하거나 카페를 차리거나 김밥집을 한다.

유튜브에는 중년 이후를 책임지는 다양한 자격증 영상이 넘쳐나고 누구는 이 자격증을 따면 무조건 취직 보장처럼 썰을 풀고, 누구는 이 자격증 따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핏대를 올려 말하고.

어떤 자격증은 대학 타전공자들이 따려면 학점은행제라는 걸 들어서 추가 학위 취득을 해야 한다고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진실에 가장 가까운 현실을 쫓아 찾아가 보지만 그 끝에는 결국 200만 원 가량의 월급이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그러던 중 앞서 말했던 엄마가 부러워하는 전 공무원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소일거리를 찾던 중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2번 하루 3시간씩 일하는 알바 자리에 지원을 했더란다. 그런데 그만 톡 떨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친구는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제가 왜 떨어졌지요?"라고 물었다.

그때부터 현실 도서관 알바의 세계가 현직 직강으로 풀어졌다. 사실 공고를 낸 도서관의 업무 정도는 굳이 사서 자격증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자 중에 사서 자격증 취득자가 많았고, 지원자가 무려 50명이나 되었다는 것. 허걱. 놀란 친구는 무거운 휴대폰을 순간 떨어뜨릴 뻔 했지만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물었다. "사서 자격증은 어떻게 따는 건데요?"

그리하여 친구는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 문헌정보학과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고, 1년 반 동안 수백만의 돈을 내고 학점을 이수하면 문헌정보학 학위와 정사서 2급 자격증을 수여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의 목표는 동네 도서관 알바 자리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는 것이다. 꽤나 열성적인 그녀는 헤어지면서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우리가 일하기에 좋은 정보가 있으면 공유할게."

우리! 20년 이상 직장에서 일하고 은퇴를 하는 우리는 은퇴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한 정보를 찾아 또다시 이 거대한 암흑의 정글 속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야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 끝에는 또 다른 고도를 향해 가야 하는 시지프스의 돌덩이가 십수년 직립보행을 하며 몸을 겨우겨우 지탱해온 척추 신경을 완전히 부서뜨릴 것만 같은 위협적인 현실이 대한민국의 중년이 아닐까.

제2의 직업... 찾을 수 있을까

와디즈나 텀블벅 출판 카테고리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등엔 돈 버는 실용 기술에 관한 책들이 인기가 높고 유튜브에는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되어 호화로운 세계여행을 한다는 블로그나 아마존 마케팅 성공자의 증언 광고가 넘쳐난다. 뿐인가. 베스트 셀러로 회자되는 <부의 추월차선>을 비롯해 자청의 <역행자>나, 켈리 최의 <웰씽킹>,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은 한결같이 나도 할 수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 오직 실행하라. 그리고 사업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래 다 맞는 말이다. 나라고 못할 것도 없고, 행동하면 되고, 월급쟁이의 삶을 청산하고 사업 아이템을 찾기를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것이 피곤해지는 나이기에 중년 이후의 또 다른 월급을 찾아 헤매야 하는 처지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냥 뭔가 이 사회가 오지도 않는 고도를 향해 가라고 계속 당근과 채찍을 종용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자격증을 따야 제2의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그 자격증을 따려면 또 다른 학위의 자격이 필요하고, 학부에서 따지 않은 또 다른 전공 학위를 따려고 학점은행제에 돈을 쏟고,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그것이 취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그 자격증으로 이력서를 냈을 때 나이 따위는 상관없이 취직시켜 줄 것인가도 의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안 살아 봐서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힘든 나라가 아닐까. 생의 발달단계에서 보면 20~40대는 직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단계다. 나는 그저 생의 단계를 따라가지 못한 퇴행적인 삶을 살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제2의 직업을 찾아 먹고 살 궁리를 하는 나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질문의 덫에 갇히고 만다. 도대체 인간에게 일할 수 있는 자격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지 못한 채 오늘도 나는 국민내일배움카드제로 받을 수 있는 자격증 교육 사이트를 찾아 암흑 속을 헤매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고도의 끝을 찾아서 클릭 또 클릭.

태그:#자격증, #인생 2막, #중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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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라이터 20년 차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기를 소망하며 소소한 감정들의 표출을 통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지금-여기의 사람들과 작거나 큰 삶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펜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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