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컬링세계썬수권에서 '강강약약'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튀르키예다. 사진은 딜사트 일디즈 스킵.

여자컬링세계썬수권에서 '강강약약'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튀르키예다. 사진은 딜사트 일디즈 스킵. ⓒ 세계컬링연맹 제공

 
세계 컬링을 한창 달구고 있는 미스터리가 있다. 스포츠에서 정말로 보기 드문 '강강약약'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한 국가대표팀 때문이다.

여자 컬링 대표팀 춘천시청(스킵 하승연, 리드 김수진, 세컨드 양태이, 서드 김혜린)이 현지시각으로 지난 22일 오전 스웨덴 산드비켄에서 열린 2023 LGT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 라운드로빈 7차전에서 튀르키예 '팀 딜사트 일디즈'에 5-6 한 점 차 패배를 안았다. 한국은 마지막 엔드 일격을 당하며 뼈아픈 패배를 헌납했다.

튀르키예는 세계컬링연맹이 발표하는 랭킹 기준 여자컬링 세계 랭킹이 15위 정도인 국가이다. 이번 세계선수권 순위가 더욱 낮은 덴마크(9위)보다도 못하다. 그러다보니 "튀르키예가 이기는 팀은 컬링 강국들밖에 없다"면서 '강팀판독기'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붙었다. 

한 점 차 석패... 한국 연승 저지한 튀르키예

한국 대표팀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쾌조의 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은 덴마크와 뉴질랜드에 이어 스코틀랜드, 특히 쉽지 않았던 상대인 독일까지 꺾어내며 오래간만의 세계선수권 메달 나들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앞선 경기에서 일본을 꺾은 튀르키예가 복병이었다.

튀르키예는 춘천시청을 상대로 강한 경기력을 뽐냈다. 전반전(5엔드)까지는 한국이 3-1로 이기는가 싶었지만, 중반을 넘어갈수록 튀르키예의 경기력이 이상하게 강해졌다. 튀르키예는 6엔드 두 점을 가져가면서 균형을 되찾더니, 7엔드에는 한국의 마지막 샷 웨이트가 너무 약하게 들어가는 실수를 틈 타 두 점을 더 가져갔다.

다행히도 한국이 8엔드와 9엔드 차례대로 한 점씩을 올리면서 동점으로 마지막 엔드에 돌입했다. 한국도 튀르키예를 어떻게든지 이겨야 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은 자신의 스톤을 하우스 뒷쪽의 튀르키예 스톤 앞에 딱 붙어 배치되도록 만든 뒤, 하승연이 앞에 가드스톤을 세우며 튀르키예를 저지하려 했다.

튀르키예가 웨이트를 조금만 잘못 주거나, 너무 정면을 맞는다면 그대로 한국이 스틸을 따내며 승리하는 상황. 그런데 튀르키예의 딜사트 일디즈가 '위닝 샷'을 던졌다. 딜사트 일디즈는 사이드 가드 포지션에 있는 자신의 스톤이 강하게 맞아 하우스 안쪽으로 향하게끔 했다. '도박수'였다.
 
 이번 여자 컬링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춘천시청 선수단.

이번 여자 컬링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춘천시청 선수단. ⓒ 세계컬링연맹 제공

 
그런데 사이드 가드에 있던 스톤이 정확히 하우스 안으로 향했다. 하우스 안으로 향한 튀르키예의 스톤은 한국의 스톤을 일순간에 하우스 바깥쪽으로 쳐냈다. 튀르키예가 1번 스톤을 차지한 것. 그렇게 경기는 6-5, 튀르키예의 극적인 샷이 승리를 만들어내며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튀르키예에 일격을 당한 대표팀은 이어진 캐나다 '팀 에이나르슨'과의 경기에서도 8-6으로 석패하며 4승 4패로 내려앉았다. 23일 오후 5시 열리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야 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

'팀 킴'도 이기고, 일본도 이기고...

튀르키예의 이런 '튀는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상기했듯 바로 앞 경기에서도 튀르키예는 일본의 컬링 대표팀 로코 솔라레(스킵 후지사와 사츠키)를 꺾으며 일본의 순위를 끌어내렸다. 일본은 지난 2021년 있었던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당시에는 '터키'로 출전했던 '팀 일디즈'에 발목을 잡혔다.

일본은 초반부터 튀르키예에 스틸을 내주더니, 아예 막판에는 두 점씩이나 스틸을 허용하며 7-4로 패배했다. 특히 7엔드부터 9엔드까지는 아예 튀르키예에 제대로 끌려다니는 모양새였다. 세계선수권을 중계하던 NHK 중계진도 일본이 막판 연거푸 스틸을 내주자 할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특히 한국에서도 '팀 일디즈'를 상대해본 팀이 또 있다. 바로 여자 컬링 간판 강릉시청 '팀 킴'(스킵 김은정)이다. '팀 킴' 역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권의 마지막 자리를 위해 열전에 나서던 도중 튀르키예에 제대로 한 방을 맞았다. 최종예선에서 '팀 킴'은 12대 7의 스코어로 패퇴했다.

'팀 일디즈'의 피해자는 또 있다. 심지어 이쪽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금메달도 따낸 팀이다. 스코틀랜드, 올림픽에는 영국으로 출전했던 '팀 이브 뮤어헤드'다. '팀 뮤어헤드'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팀 일디즈'에 7대 3으로 패배했다. 예상조차 어려웠던 스코어였다.

특히 '팀 일디즈'가 올림픽 최종예선 당시 승리를 거뒀던 팀은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따낸 한국, 일본, 영국까지 3개 국가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강강약약'을 넘어 이변 전문 팀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아이스 적응 탓" 의심했지만, 오히려 짙어진 '미스터리'
 
 여자컬링세계선수권에서 '강강약약'의 이변을 어김없이 보이고 있는 튀르키예 대표팀.

여자컬링세계선수권에서 '강강약약'의 이변을 어김없이 보이고 있는 튀르키예 대표팀. ⓒ 세계컬링연맹 제공

 
이렇게 튀르키예가 세계 컬링의 '이단아'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최종예선 때만 하더라도 당시 예선경기가 열렸던 네덜란드의 아이스 문제를 이유로 드는 컬링인들이 많았다. 

당시 경기가 열렸던 네덜란드 레이바르던의 아이스 상태는 좋지 않았다. 특히 아레나 경기장에서 긴급하게 치른 상황이다보니 남자부 경기 때에는 경기 도중 아이스가 녹는 현상이 발생해 경기를 긴급하게 서스펜디드 처리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수들 역시 아이스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튀르키예 역시 '컬링 강국'이 아닌 만큼 지정된 컬링장 대신 빙상장 등에서 연습을 하기에 좋지 않은 아이스 상황에 익숙해 강팀에게만 승리했다는 국내 컬링 지도자들의 의견이 있었고, 이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튀르키예는 체코, 라트비아, 이탈리아 등 국가들에 패퇴했기에 설득력 있는 의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세계선수권에서의 '튀는 행동'은 그 의견이 지금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린 미스터리가 되었다. 아이스 상황도 여느 세계선수권처럼 변수는 있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팀 후지사와'야 이미 2년 전 만나봤기에 서로의 경기력을 안다지만 춘천시청은 이번이 첫 맞대결이기 때문.

튀르키예는 이번 세계선수권 3승 5패를 달리고 있다. 일본·덴마크와 동률의 순위다. 튀르키예가 캐나다, 덴마크 등 여러 국가들과의 경기를 남겨 둔 가운데, 안 그래도 '역대급 순위싸움'이 펼쳐지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어떤 이변을 더 형성할지, 한국과 함께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관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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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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