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한 인기 축구 해설가 개리 리네커 출연 정지 논란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 갈무리

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한 인기 축구 해설가 개리 리네커 출연 정지 논란을 보도하는 영국 BBC 방송 갈무리 ⓒ BBC

 
영국 공영방송 BBC가 정부의 난민 정책을 비판한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를 출연 정지시키면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그러자 다른 진행자들도 출연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BBC는 12일(현지시각)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 중계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를 단축 방송했고,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BBC의 '매치 오브 더 데이' 진행자이자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는 개리 리네커는 지난 7일 영국 정부가 불법 이주민에게 난민 신청을 불허하고, 추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강하게 비판했다.

리네커는 자신의 트위터에 "(영국 정부의 난민 정책은) 30년대 나치 독일이 사용했던 언어와 다르지 않다"라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향한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정책"이라고 썼다. 

리네커는 19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축구 스타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6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던 전설적인 공격수였다. 

영국 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난민 정책을 발표한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비극을 축소하며, 개인적으로 남편이 유대인인 나로서는 불쾌하다"라고 맞섰다. 제레미 헌트 재무장관도 "리네커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일자 BBC는 10일 리네커에게 출연 정지를 통보했다. BBC는 성명을 내고 "리네커의 소셜미디어 활동은 회사 규정에 위배된다"라며 "출연자는 정치 이슈나 논란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말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리네커는 회사 규정에 동의할 때까지 방송에 출연할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공영방송이 정부 외압에 굴복? 
 
  리처드 샤프 BBC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 갈무리

리처드 샤프 BBC 회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 갈무리 ⓒ 리플

 
그러나 BBC의 이 같은 결정은 공영방송이 정부의 편을 든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제1야당 노동당은 BBC가 정부와 집권 보수당의 압력에 굴복했다면서 BBC와 정부 인사 간의 접촉 여부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동료 진행자들도 리네커의 편을 들며 방송을 보이콧하고 나섰다. 역시 축구스타 출신 해설가인 이안 라이트는 "만약 BBC가 리네커를 해고한다면 나도 그만둘 것"이라고 BBC를 압박했다. 

기자 출신 방송인 피어스 모건도 "영국이 자기 의견을 말하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은 정말 미친 짓"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보다 나을 것이 없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국언론노조(NUJ)는 "리네커에 대한 BBC의 조치는 엄청난 자책골"이라며 "이런 식으로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항의했다.

한편에서는 리네커가 BBC 정식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 신분이고, 뉴스나 정치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BBC의 소셜미디어 규정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는 리처드 샤프 BBC 회장의 거취에도 불똥이 튀었다. 샤프 회장은 취임 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대출 보증을 돕고, 보수당에 거액을 기부해 회장직을 얻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으며 사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BBC가 샤프 회장과 리네커에게 이중 잣대를 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에 정부는 BBC를 옹호했다. 헌트 장관은 "BBC가 리네커의 출연을 정지한 것은 독립성과 공평성에 대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놓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다만, 리시 수낵 총리는 "정부가 아니라 BBC 내부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회장·사장이 친정부 인사... 시험대 오른 BBC의 '공정성'  
 
 팀 데이비 영국 BBC 방송 사장의 개리 리네커 출연 정지 논란을 보도하는 <가디언> 갈무리

팀 데이비 영국 BBC 방송 사장의 개리 리네커 출연 정지 논란을 보도하는 <가디언> 갈무리 ⓒ 가디언

 
BBC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우세한 가운데 팀 데이비 BBC 사장은 "BBC가 매우 힘든 일을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목표는 리네커와 원만히 합의를 이뤄 그가 다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사임 요구에 대해서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에 영국 진보 성향 일간지 <가디언>은 "데이비 사장이야말로 보수당과 깊은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라며 "그는 과거에 보수당에서 당직을 맡았고, 존슨 전 총리를 비롯한 보수당 인사들과 친구 사이"라며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했다. 

리네커는 이날 아침 자신의 집 앞에 모여든 기자들이 BBC로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쟁 방송사들이 출연 제의를 했는지 등을 묻자 "지금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리네커의 아들 조지 리네커는 트위터에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사과할 필요가 없고,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라며 "아버지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준 분들께 감사하다"라고 썼다. 

BBC는 이날 자체 기사를 통해 "데이비 사장은 2020년 취임하면서 자신의 최대 원칙을 '공정성'(impartiality)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라며 "최근 사태는 그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위기를 불러일으켰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리네커와 관련한 논란은 BBC의 근본적인 가치와 현 사장의 직무에 대한 시험대가 되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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