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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충남 계룡대 정문 모습.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숨진 공군 부사관의 성추행 피해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4일 오후 충남 계룡대 정문 모습.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숨진 공군 부사관의 성추행 피해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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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선 그렇게 일을 합니까."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담당 재판장인 정진아 부장판사(형사합의26부)가 1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아무개 중령(이 중사 사망 당시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에게 한 말이다.

직전 한 중령은 '2021년 3월 8일 제20전투비행단 검찰수사관이 보낸 성추행 사건 보고 이메일을 왜 이 중사 사망(5월 21일) 이후에야 확인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훈련과 자가격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 부장판사 : "증인, 평소에 업무 메일을 잘 확인하지 않습니까."
한 중령 : "제가 2월에 부임했고 훈련과 자가격리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자가격리 이후 (돌아온 뒤) 메일이 쌓여 있어서 확인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 "(군대) 외부에선 메일을 확인할 시스템이 없습니까."
: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해서 외부에선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할 메일일수록 업무에 복귀해서 더욱 철저히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군대에선 그렇게 일을 합니까."
: "죄송합니다.
"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한 중령 증인신문을 통해 군대 내 수사 체계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검, '수사 지연' 입증에 공력

이날 공판의 피고인은 군검사 박아무개 법무관이었다. 박 법무관은 이 중사가 생전 신고한 성추행 사건의 수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의도적으로 지연한 혐의(직무유기 등)를 받고 있다. 박 법무관은 당초 국방부 검찰단 수사 때는 기소되지 않았다가 특검 수사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6명 중 1명이다.

이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박 법무관이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1조 ▲군사법원법 제228조 제1항 ▲공군 성범죄 처리지침 제10조 제2항 ▲군 형사절차에서의 성폭력범죄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훈령 제3조 제3항 등에 맞게 이 중사의 성추행 신고 사건을 수사했는지 여부다.

이러한 법·지침·훈령엔 ▲군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성폭법 제11조 내지 제 14조를 제외한 모든 공군 내 성범죄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경우 공군 고등검찰부장(이 사건의 경우 한 중령)에 사전 협의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특검(안미영 특별검사)은 ▲군사경찰이 2021년 4월 7일 송치한 사건을 박 법무관이 이 중사 사망(5월 21일) 때까지 제대로 수사·보고하지 않았고 ▲구속 수사가 원칙임에도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았으며 ▲이를 한 중령과도 사전 협의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이태승 특검보 : "이 중사 사건은 성폭법 제11조 내지 제14조에 포함되지 않은 성범죄이므로 군검사인 박 법무관은 장OO(가해자)를 구속하지 않기로 했으면 증인(한 중령)과 협의해야 합니다. 박 법무관이 증인에게 보고하고 협의를 구한 사실이 있습니까."
한 중령 : "없습니다."

: "특검 조사에서 증인은 '피해자(이 중사)가 2021년 4월 15일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성고충상담관에게 보냈고 이것이 지휘관과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 보고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인지한 사실이 없나'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습니다. 맞습니까."
: "네."

: "특검 조사에서 증인은 '군사경찰 사건 접수 과정에서 노OO 상사가 피해자를 상대로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한 사실을 언제 인지했나'라는 질문에 '(이 중사 사망 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 답했습니다. 맞습니까."
: "네."

: "종합하면 증인은 이 중사 사망 전 ▲이 중사가 3개월 이상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사실 ▲이후 성고충상담관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상태가 악화된 사실 ▲노 상사 등 부대 관계자의 2차가해 사실을 박 법무관에게 수시보고 등을 통해 보고받았다면, 강제추행에서 강제추행치상으로의 의율 변경이나 가해자 구속 여부 등 법률적 지시를 했을 텐데 그런 보고가 없었다는 취지입니까."
: "네."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의 빈소의 2021년 6월 28일 모습.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예람 중사의 빈소의 2021년 6월 28일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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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교육 못 받아" "지침 눈에 안 띄어" 변론

박 법무관 측은 '지침·규정 등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4월 7일 송치일로부터 이 중사 사망 때까지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급기야 '지침·규정 등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돼 있었는지 여부'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변호인 : "증인은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의 역할에 따라) 군검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때 언제, 누구에게,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보고하라고 교육합니까."
한 중령 : "음... 아마 코로나 전엔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코로나 때 교육이 없어서 이거에 대해 자세히 교육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 "군검사 대상으로 교육도 이뤄진 적이 없고 자료가 배포된 적도 없는 것입니까."
: "지침서는 각 예하부대에 있습니다. 아마 저희 인트라넷 페이지에 있을 것입니다."

: "눈에 잘 띄게 배너로 나와 있나요. 규정에 관해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찾아봐야 찾을 수 있는 건가요."
: "아마 자료실에 다른 자료들과 같이 있을 겁니다."

: "이게 두드러져 보이거나 그러진 않죠."
: "두드러져 보이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 "성범죄 피해자가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더욱 신속히 하도록 (공군 지침·규정에) 돼 있나요."
: "그렇게 자세히 규정돼 있진 않습니다."

: "이 사건은 4월 7일 송치됐고 (일반적 군검사 사건처리 기한에 따라) 7월 7일이 만기였다. (이 중사가 사망한) 5월 21일이 그렇게 지연된 것입니까."
: "규정에 의해선 (사건처리 기한) 이내로 보입니다."


그러자 특검은 '이 같은 이유로 군검사가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이태승 특검보 : "지침의 경우 자기 자리에 앉아 PC 등으로 얼마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중령 : "네. 자료실에 있습니다."

: "군검사는 자기 업무를 처리할 때 지침을 찾아보고, 검토하고, 점검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피해자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거나 2차가해 의혹이 있으면 이를 수사보고서에 남겨야 한다는 게 꼭 구체적 지침이 있어야만 하는 일입니까. 지침에 그런 내용까지 다 담겨야 하는 겁니까."


이어 주심인 강대현 판사의 구체적 질문에, 한 중령은 결국 '박 법무관이 제대로 수사·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을 내놨다.

강대현 판사 : "증인이 송치일이 4월 7일이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 보인 반응은 '(박 법무관은)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거야(한 중령이 이 중사 사망 다음날 윤아무개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장에게 보낸 문자)'였습니다. 사건 지연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사실관계를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한 중령 : "그런 것 같습니다."

: "(피해자인 이 중사의) 정신과적 상해, 자살 암시, 2차가해 정황 등 변수가 있을 땐 피고인(박 법무관)이 (지침에 따라 한 중령에게) 수시보고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 맞습니까."
: "어... 네."

: "군검사가 2차가해 정황을 파악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까."
: "지침에 있진 않지만 인지했다면 조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재판부 질문에 '오락가락' 증인

한편 이 재판의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생전 이 중사를 상대로 한 조사 날짜가 미뤄진 것을 박 법무관이 이 중사 사망 후 어떻게 보고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박 법무관이 피해자 요청에 의해 변경된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다'며 이날 한 중령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변을 이끌어냈다.
 
이태승 특검보 : "증인은 (이 중사 사망 후) 박 법무관이 제출한 보고서와 박 법무관에게 (전화 등으로) 확인한 바에 따라 '피해자 요청으로 조사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알고 국회에 보고했다가, 언론 또는 국회의 지적을 받은 후 다시 사실관계를 조사했고 이후 '군검찰이 먼저 조사 일정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게 돼 (다시 국회에) 정정 보고했다는 것이죠."
한 중령 : "네."


박 법무관 측은 '한 중령 등에게 보고한 문건에는 조사 일정 변경과 관련해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는 점'을 내세웠다. 변호인이 "박 법무관의 보고서엔 문언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상당하다. (이 중사) 사망 사건 후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나"라고 묻자, 한 중령은 "아마 급박한 상황이었고 빠르게 작성하느라 그랬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 중령은 이 중사 사망 후 조사 일정 변경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공군 수뇌부(이성용 공군참모총장,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에 보고했던 과정을 진술하며 다소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이 중사 사망 후 공군 수뇌부는 국회 국방위 출석 및 국방위 소속 의원에게 대면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요청으로 조사가 미뤄졌다'는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 중사 사망(5월 21일) 이후부터 국회에 설명(6월 2일)하는 시기 동안 왜 진상 파악이 안 됐는지 한 중령에게 물었고, '책임 소재가 단순히 박 법무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 중령, 더 나아가 공군본부 수뇌부에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중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이어가다 급기야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2022년 4월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었다. 방청석의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퇴장하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다.
 2022년 4월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되었다. 방청석의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퇴장하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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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사 아버지 "이런 사람들에게 예람이가..."

정진아 부장판사 : "(국회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측 요청에 의해 조사 일정이 변경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네요."
한 중령 : "네."

: "근데 (한 중령이) 전익수 실장에게 (6월 2일 보고한) 보고서를 보면 '피해자가 요청해 조사 일정이 연기된 것'처럼 적혀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왜 그렇게 작성됐습니까."
: "그때 군검사(박 법무관)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 "(그게 잘못됐다는 걸) 확인했다면서요."
: "당일은 (몰랐습니다)... 정확히, 전체적인 건 (국회에 보고하기) 직전에 알았던 것 같습니다."

: "왜 (알면서도) 보고가 늦어졌습니까. (한 중령이 박 법무관에게) 6월 1일 0시라는 밤늦은 상황에서도 전화할 정도로 급박했던 것 아닙니까." 
: "당시는 아마 박 법무관에게 물었고, (이후 전화한) 이OO(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왜 잘 모른다고 하던가요."
: "일정을 정할 때... 잘 기억이 안 납니다."

: "기억해보세요. 급박하고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납니까. 급박해서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급박했으니까 기억해야죠."
: "아마... 정말 죄송한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급박해서 여러 번 전화를 했던 거 같긴 한데."

: "이OO에게만 묻고 박△△(또 다른 피해자 측 국선변호인)에게 묻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박 법무관이 그렇게 (피해자 요청에 의해 조사 일정이 변경됐다고) 대답했고..."

: "박 법무관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 "(피해자와) 협의해서 변경했다고 대답했습니다."

: "그걸 믿었다는 것입니까."
: "그런 것 같습니다."

: "김□□(피해자를 상담한 성고충상담관)와는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 "아뇨."

: "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 "공군본부와 예하부대가 멀고 조직도 나뉘어져 있어서..."

: "묻고 싶은 것의 핵심은 이겁니다. 증인은 (조사 지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고 파악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공군본부 법무실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문제될 만한 부분을 일부러 쓰지 않거나 더 조사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 "그런 것 아닙니다."

: "그럼 능력부족이고 업무태만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 "증인의 업무는 무엇입니까."
: "군검찰 조직을 교육하고..."

: "군검사 경력도 없고 지침도 잘 모르는데 교육할 수 있습니까."
: "저는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실제 교육은 보통검찰부장이나 군검사 경력이 많은 분들이 합니다."

: "교육을 기획한다... 그럼 증인이 군검사들이 사건을 보고하고 의논해올 때 대답해줄 만한 능력이 부족하겠네요."
: "...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날 법정을 찾은 이 중사 유족은 공판 내내 탄식을 쏟아냈다. 이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는 재판 말미 발언권을 얻어 "우리 예람이가 (성추행 신고 후 사망까지) 81일 동안 이런 사람들 앞에서 괴로움을 당했다는 것에서 너무나 분노가 치민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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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예람, #중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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