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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고용노동부, 노동개혁 추진 점검회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노동개혁 추진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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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불합리한 노동 관행 법 제도 개선 방향'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홈페이지 내에 지난 1월26일부터 '온라인 노사부조리 신고센터(링크)'를 운영해왔다. 특정 노조 가입·탈퇴 방해, 노조 재정 부정사용, 노사의 폭력·협박 행위, 채용 강요 등 노사의 불법·부당행위를 접수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센터는 사측의 부당행위에 대한 노동자의 신고도 받지만, 특별히 노조 부당행위에 대해 사측의 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실제 사이트에 방문해보면, 여기서 나열해둔 '신고 대상'에도 사용자 측 행위보다 노동조합의 부조리 행위라 규정한 사항들이 먼저 열거돼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노동부 홈페이지 내에 지난 1월26일부터 운영해온 '온라인 노사부조리 신고센터(링크)' 첫화면 화면갈무리.
 고용노동부가 노동부 홈페이지 내에 지난 1월26일부터 운영해온 '온라인 노사부조리 신고센터(링크)' 첫화면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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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노동부장관과 서울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과의 간담회에선 울산의 한 노조 간부가 조합비 7500만 원을 도박·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사건, 노조의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며 일어난 폭행사건, 조합비 결산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조합원의 사건 등의 사례가 언론 보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부는 '노사'의 부당행위라 쓰며 이를 홍보했지만, 그럼에도 들여다본 내용은 '노조'의 부당행위로 점철돼 있었던 것이다.

신고센터를 운영한 결과는 어땠을까. 노동부의 바람대로 노조의 부당행위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을 사측의 부당행위 신고는 그보다 5배나 더 들어왔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월 28일까지 접수된 301건 가운데 250건(약 83%)은 공짜 야근,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등 사용자 쪽의 불법·부당행위였다. 노조 재정 부정사용 등 노조에 해당할 집단 노사관계 관련 신고는 51건(약 17%) 수준이었다.
 
고용노동부가 2일 배포한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 관련 보도자료 중. 노조 재정 부정사용 등보다 부당해고와 임금체불 등 사용자측 불법부당행위가 훨씬 더 많았다.
 고용노동부가 2일 배포한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 관련 보도자료 중. 노조 재정 부정사용 등보다 부당해고와 임금체불 등 사용자측 불법부당행위가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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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2일 '노조 회계가 불투명하다, 노조가 집회에 강제동원 했다'는 등의 사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노조의 불법행위가 확인됐으니 이에 대해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의 부당행위에 대해선 사례도, 대책도 나온 것이 없다.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했던가. 노조를 향해 망치를 든 노동부는, 모든 게 노조의 문제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윤 정부의 끈질긴 노조혐오... 대국민 가스라이팅 수준  

작년 말부터 윤석열정부는 '노조 혐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해 이를 '귀족노조, 불법행위'로 규정한 것을 시작으로 해 이제는 노조를 부패세력, 폭력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노조에 횡령·배임이 만연해 있다는 듯 정부가 회계를 들여다보겠다고 하고, 일부 노조가 폭행·협박으로 다른 노동자가 노조를 못하도록 만들거나 사측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하는 말만 들으면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노조가 잘못해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노조를 때리면 청년실업도, 비정규직도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부의 기조가 이렇다보니, 일부 온라인에선 "민노총 관계자들이 돈을 많이 번다", "노조는 빨갱이", "노조 파업으로 한국 경제가 작살났다"는 등의 사실관계가 틀린, 명백한 혐오 발언들마저 넘쳐나고 있다.

이런 방향은 노동자들의 노조에 대한 거부감, 특히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워 국민들로 하여금 노조를 혐오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본다. 상황을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잃게 한다는 뜻의 단어 가스라이팅(gaslighting)처럼, 정부가 열성적이고 집요하게 노조를 깎아내리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국민 가스라이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해 12월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 눈물 닦는 화물연대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해 12월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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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사태의 피해는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까. 노조가 힘을 잃으면 노동현장은 어떻게 되는 걸까. 윤석열 정부의 맹공을 받고 있는 화물연대·건설노조가 무너지면 다른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걸까. 애초 화물·건설노동자가 적정한 임금을 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수만 명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겠나. 그랬다면 이들이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파업을 벌일 이유가 있었겠나.

하루 약 15시간 노동에, 툭하면 사망사고가 나는 현장을 사측도 정부도 바꿀 생각이 없었으니 결국 노조가 나섰던 것 아닌가. 노조가 채용을 강요했다고? 원래 원청 정규직이었던 노동자를 하청 비정규직으로 바꾼 사람들은 누구인가. '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공사기간과 공사비를 줄이려 노동자의 목숨 줄을 쥐고 흔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상황이라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고용안정을 요구하게 된 것 아닌가? 여전히 열악하고 위험하게 노동을 사용하는 사측은 규제할 생각은 없이, 노조만 때려잡겠다니. 정부는 사측의 이익 보호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한 명의 배달노동자이자,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링크)에서 일하고 있다. 노조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집단이다. 내가 근무하는 배달현장에서 노조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사측이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며 배달료를 막무가내로 깎아도, 노동자들이 알기 어렵게 알고리즘을 바꿔가며 라이더들 속도 경쟁을 부추겨 위험에 빠뜨려도, 하루 250원만 떼면 되는 산재보험료를 이유 없이 1000원씩 떼어 가도, 안전교육은커녕 면허확인도 없이 오토바이를 태워도 누구 하나 제대로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노조가 없다면 말이다. 

노동부는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 "주 52시간제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겠다(이정식 장관)"며 노동시간 유연화 내용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에 묻고 싶다. 정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정부가 이 노조 때리기에 사로잡혀 있는 한, 노동자들의 일터는 말 그대로 '개미지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월23일 요기요(사명: 위대한상상) 본사 앞에서 대책없이 라이더 수만 늘려 라이더를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요기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요기요 본사 앞 라이더유니온 기자회견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월23일 요기요(사명: 위대한상상) 본사 앞에서 대책없이 라이더 수만 늘려 라이더를 생존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요기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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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구교현씨는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라이더유니온, #노동조합, #노조혐오, #노동개혁,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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