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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세 나이가 믿기지 않는 유화열 어르신. 가족들은 한 순간도 손을 놀리지 않는 것이 어르신의 장수비결이라고 설명한다.
 102세 나이가 믿기지 않는 유화열 어르신. 가족들은 한 순간도 손을 놀리지 않는 것이 어르신의 장수비결이라고 설명한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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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봉산면 최고령,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사용하는 유화열(102) 어르신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순간에도 손을 놀리는 법이 없다. 마치 뜨개질을 하듯, 소파에 앉아 얼굴만한 크기의 종이학을 만들기 위해 작은 종이조각을 접는 모습은 소녀처럼 밝았다. 어릴 적 고향에 대한 추억과 자녀자랑, 미국살이를 풀어놓을 땐 엊그제 마실 갔다가 겪은 경험담을 건네듯 막힘이 없다.

어르신은 1922년 4월 10일 이웃한 덕산 둔리에서 6남매(1남5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났다. 지금 살고 있는 사석리는 18세에 집안 중매로 만난 동갑내기 남편 고 이재영 어르신의 고향이다. 노부부는 남편이 2019년 미국에서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하며 슬하에 7남매(3남 4녀)를 뒀다.

뭇사람들이 꿈꾸는 '100세 인생'에서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기억은 윤봉길 의사와 만공스님,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와 늑대가 등장한다. "윤봉길 의사 집에 자주 놀러갔어. 지금 기억나는 건 그집에 가면 한쪽은 공부방, 맞은편은 기거하는 방이 있었어. 윤 의사가 나를 여동생처럼 여겼어." 1908년생인 윤 의사와 1922년생인 어르신은 '14살' 차이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장남 이양선(77)씨가 "윤 의사 집과 어머니 고향집이 가까워 자주 왕래했다"고 거든다.
 
1967년 시조부, 시부모 등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 뒷줄 가운데가 유화열 어르신이다.
 1967년 시조부, 시부모 등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 뒷줄 가운데가 유화열 어르신이다.
ⓒ 이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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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바로 밑 동네가 둔리야. 절에 올라가다 호랑이와 늑대를 자주 봤지. 큰길에서 산을 넘을 땐 앉아 있는 호랑이를 보기도 했어. 호랑이도 날 보고, 나도 호랑이를 보고. 아버지가 호랑이를 만나면 쳐다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땐 그랬어."

지금은 식당가로 변한 '수덕고개'다. 이 길은 소녀 유화열이 "만공스님 손을 잡고 수덕사에 오를 때 지나다녔던 길"이다.

미국 이민길 오르기도... 증손자만 23명

80여 년을 해로한 남편 이재영 어르신은 어떤 분이셨을까.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광천우체국을 다녔어. 젊어서는 일하느라 바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 이번에는 며느리 이명순(77)씨가 나섰다. "결혼하셔서 대천에 사시면서 광천우체국에서 근무하셨어요. 그러다 한국전쟁이 벌어져 고향으로 피난 왔죠."

어르신은 4년 전만 해도 미국 시민권자였다. 남편이 1977년 38년 동안 몸담은 우체국에서 정년퇴임한 뒤, LA에서 의사로 생활하던 시동생 초청으로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어린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이민조건에 따라 미혼자녀 넷을 데리고 떠났다.
 
유화열 어르신의 50대 모습. 2020년 미국서 귀국한 어르신이 이듬해 발급받은 주민등록증, 2022년생과 앞자리가 같다.
 유화열 어르신의 50대 모습. 2020년 미국서 귀국한 어르신이 이듬해 발급받은 주민등록증, 2022년생과 앞자리가 같다.
ⓒ 이양선, <무한정보>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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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갔을 땐 말이 안통해 손짓발짓하며 일했어. 화초 키우는 일, 오렌지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아이들을 교육시켰지. 그래도 증손자들이 많아 재미있었어." 가족은 천리타국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던 이유였다.

한국과 미국에서 7남매 자녀들이 낳은 아들딸들이 또 자녀들을 낳아 증손자만 23명이다. K리그 포항스틸러스에서 현역 프로축구선수로 활약하는 이승모 선수도 증손자 중 한 명이다.

어르신은 2019년 남편과 사별하고 2020년 43년 동안의 이민생활을 정리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유해는 고향집 인근 선산에 모셨다. 장남 이양선씨 부부가 농사지으며 노모를 모시고 있다. 미국에 살 땐 한국의 자손들이 전화와 편지, 인터넷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걱정했고, 귀국한 뒤로는 미국의 자손들과 직접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해 문자와 사진 등을 주고받는 일이 작은 기쁨이 됐다.

1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양손은 부지런히 작은 종이조각을 접었다. 틈틈이 접은 조각들로 만든 종이학은 평소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에서도 인기가 많아 다른 어르신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곤 한단다.

"공부 못 한 게 한... 다시 돌아간다면 공부하고 싶어"

어르신은 장수비결을 묻자 "고기는 잘 안먹어, 그냥 먹고 싶지 않아. 생각만 해도 비위가 안 좋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느리는 "어머님은 육식은 안 하시고, 주로 채소, 양파, 마늘 등 채식 위주로 드신다. 그리고 눈만 뜨시면 늘 손을 놀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시는데, 이게 비결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궁금했다. "공부하고 싶다. 공부 못한 게 한이다. 공부했다면 미국 가서 고생 안했을 거야, 그러면 화초 심는 일, 오렌지 공장 다니며 고생하지 않았겠지."
 
남편 이재영 어르신이 우체국에서 퇴임하면서 직원으로부터 받은 송별사를 장남 이양선씨와 보여주고 있다.
 남편 이재영 어르신이 우체국에서 퇴임하면서 직원으로부터 받은 송별사를 장남 이양선씨와 보여주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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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증손자가 23명이야"라고 숫자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모습은 102세라는 나이를 잊게 만든다. 얼마 전 경기 중 부상을 입은 증손자 이승모 선수가 자꾸 눈에 밟히는 듯 했다. 장남 부부와 함께 생활하는 노모는 저녁 7시 30분이면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며느리는 "어머님과 저희 셋이 날마다 아침식사 전 돌아가면서 기도한다. 요즘 어머님 기도는 주로 증손자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7남매는 어떻게 키워냈을까. 여든을 바라보는 아들은 "어머님은 무얼 하라고 말씀하시는 법이 없었다. 자식들이 알아서 잘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셨다"라며 살포시 고목같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102세, 100년의 시간을 켜켜이 쌓은 유화열 어르신의 지구여행은 여전히 '행복'으로 순항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장수,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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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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