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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변희수 하사 2주기를 맞아 고인의 꿈과 용기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앞으로 만들어갈 변화를 다짐하기 위해 4회에 걸쳐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 조장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차별 조장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지원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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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방부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 조장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2022년 11월 국방부가 '추행'을 '동성 간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로 명시하여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한 것을 규탄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2022년 4월 대법원은 처음으로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의 해석을 폐기하였다. 그럼에도 대법원의 판결에 정면으로 반하면서까지 동성 간 성행위를 추행으로 징계하겠다고 한 국방부의 태도는, 여전히 우리 군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떨치지 못하고 있음을, 변희수 하사가 바랐던 인권 보장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군에는 성소수자가 있다. 법적 남성에게 부과되는 병역의무에 따라 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여성 등이 병으로 복무하고 있고, 변희수 하사와 같이 직업군인으로서 장교 또는 부사관으로 복무하는 이들도 있다.

'다양성을향한지속가능한움직임 다움'이 청년 성소수자 39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군 복무 대상이 아닌 사람을 제외한 1658명 중에 912명(23.3%)이 현역병으로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했고, 52명(1.3%)이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렇게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가 아닌 군인 전반에 대해 조사를 했을 때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거리낌 없이 밝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군 내부의 보수적인 분위기는 물론 군 관련 제도 전반이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소수자들은 군 복무 과정에서 상당한 차별과 혐오를 마주한다.

위 조사에서 군 복무 중 성소수자 정체성과 관련하여 경험한 어려움을 물었을 때 응답자들은 '성소수자 비하적인 발언과 이를 용인하는 문화'(56.7%), '성소수자 정체성이 알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53.6%)을 이야기했다.

특히 지정성별과 다른 성별정체성으로 원치 않게 성소수자임이 알려질 위험이 높은 트랜스젠더의 경우 군 복무 과정에서 심각한 차별과 폭력을 겪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군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한 참여자 105명 중 31명(29.5%)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으로 인하여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었고, 13명(12.4%)이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경험하거나 비전 캠프 등 부적응 기관으로 이송되었으며, 10명(9.5%)은 업무 수행 또는 배정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

물론 모든 성소수자에게 군대가 오직 고통의 공간만은 아니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도 그러하듯이 군대 내에서도 각자가 처한 현실은 다르며 차별을 마주하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겨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의 전체적인 제도와 정책은 성소수자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내지는 혐오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안전한 군 복무
 
2019년 10월 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제71회 국군의 날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차별국군' 선포 국제 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하며 침묵 속에 복무 중인 군인들을 상징하는 X자 표시가 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2019년 10월 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제71회 국군의 날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차별국군' 선포 국제 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하며 침묵 속에 복무 중인 군인들을 상징하는 X자 표시가 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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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에 존재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적 제도는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이다. 수백 년 전 종교적 관념에 기반하여 동성애를 범죄화한, 이른바 '소도미법'의 연장선인 이 조항은 국내 법제 중 유일하게 성인 간에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이다. 몇 차례의 개정과 군의 운용방식에서의 변화들이 일부 있긴 했지만 동성애 처벌법이라는 이 조항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에 유엔 인권이사회가 진행한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UPR)에서도 독일을 비롯한 7개 국가가 군형법 추행죄에 대한 폐지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계속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린다는 뻔한 답변만을 늘어놓고 있다.

한편 국방부 훈령인 '부대관리훈령'에는 동성애자 장병의 복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아웃팅 방지, 차별금지, 교육 및 상담 강화 등 나름 인권을 고려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제4편 사고예방이라는 범주 아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군에서 보는 동성애자 장병은 사고의 위험일 뿐이며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해당 훈령 역시 군형법 추행죄를 이유로 '동성애자 장병의 병영 내에서의 모든 성적행위는 금지된다'는 등의 불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의 복무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2021년 3월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이에 따라 국방연구원에 의해 연구가 수행되기는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구 결과도 알 수 없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어떠한 정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연히 존재하는 트랜스젠더 군인은 여전히 차별과 폭력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트랜스젠더는 군대 내에서 완전히 지워진 존재인 것이다.

"군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가진다." 2015년 제정된 '군인복무기본법'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과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조차 성소수자에게 보장하지 못하는 군,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답게 복무할 수 있는 군대

2022년 11월 24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성으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성별정체성의 권리는 트랜스젠더 군인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변희수 하사는 용기 있는 커밍아웃 이후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당하며 부당한 강제 전역을 당해야 했고, 결국 법원의 결정을 통해서야 뒤늦게 군의 과오를 확인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전지방법원은 전역처분 취소판결을 내리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대한 입법적·정책적 과제를 이야기했다. 이러한 과제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상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정신장애로 분류되어 있는 것의 개정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으로 간주해 온 성주체성장애 진단명을 삭제하고 성별불일치로 용어를 개정했다.

위 검사규칙 역시 2021년부터 성별불일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이를 정신장애의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비병리화 추세에 맞춰 트랜스젠더의 병역판정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등 트랜스젠더의 복무를 보장하는 20여 국가는 모두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가령 영국 국방부가 만든 지침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트랜스젠더가 입대할 시 정체성을 밝힐 의무가 없음을 명시하고, 담당자의 비밀 유지 의무도 규정한다.

또한 트랜스젠더 군인에게 성별 위화감 해소를 위한 호르몬요법 등 의료적 지원 절차도 상세히 명시하며, 각 성전환 정도에 따라 구체적인 대우까지 규정하고 있다. 우리 역시 국방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단지 복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 정말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으며 복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들을 만들어야 한다.

2020년 변희수 하사는 얼굴을 드러내고 한 첫 기자회견에서 "군대는 계속해서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보하는 중이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장병들의 휴대전화 사용, 두발 규정 개정 논의, 채식 식단 제공 등 제한적이나마 군은 조금씩 군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진보에서 성소수자만이 예외가 될 어떠한 이유도 없다.

변희수 하사가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낸 지 3년,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녀의 용기와 믿음에 보답하는 군을 만드는 일이, 남아 있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라 할 것이다. 2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고 기억하며, 누구도 차별 없이 자신답게 복무할 수 있는 군이 되기를 정말로 간절히 촉구한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변희수 하사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시민 탄원서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탄원서는 2023년 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모집 기간 : 2023. 2. 13(월) ~ 2. 24(금) https://bit.ly/bhs_petition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한희(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님입니다.


태그:#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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