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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종종 재미있는 기사가 있으면 서로에게 공유한다. 나와 아내는 춘천교대 05, 07학번으로 강원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탓에, '교대 관련' 뉴스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간다. 최근 우리는 흥미로운 교대 기사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보통은 똑같은 기사인 경우가 많은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서로 달랐다. 나는 강원도 초등교사 임용시험에서 남성 합격자 수가 여성 합격자 수를 넘겼다는 기사였고, 아내는 교육부가 교육전문대학원을 도입하려 한다는 기사 링크를 내게 보내주었다. 

기사를 꼼꼼히 읽다가 우리는 뜻밖의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올해 강원도 초등 임용시험 결과 최종 합격자는 86명이었다. 남성 합격자가 과반이라는 것보다 최종 합격 인원이 86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이 쩍 벌어졌다.

전국의 교대 재학생 수가 지난 10년 간 20%가량 줄었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임용 규모가 단기간에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느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교원 수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강원도의 감소 속도는 정말 빨랐다. 

올해 나는 8년 간의 삼척 근무를 마치고, 양양군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 전근을 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옮긴 학교의 전교생이 19명이었다. 직전 학교에서는 우리 반에 소속된 학생만 23명이었는데, 양양의 서핑비치 근처 아름다운 학교 전교생이 19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인근학교도 32명, 44명, 14명으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양양 시내 지역의 학교는 전교생이 500명이 넘어섰다. 도시에서도 학군지가 있듯이, 군 단위에서도 육아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동네가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자녀 교육을 위해 속초나 강릉 등 규모가 더 큰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나는 '교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었다. 출생률이 낮으니 교사 임용의 문은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교대처럼 특수한 목적을 띤 대학은 초등교사가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극히 제한적이다.

졸업 후 취업이 확실치 않아지면 교대 진학 선호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매년 진행하는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서 고등학생이 교사를 희망 직업으로 선택한 비율은 2007년 13.4%에서 2022년 8%로 감소하였다. 

학생 수도 줄고, 교사도 줄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근무한 삼척의 벽지 학교. 10년도 되지 않아 학생수가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근무한 삼척의 벽지 학교. 10년도 되지 않아 학생수가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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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통폐합 이야기가 수시로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자녀의 '추천 직업' 중에서도 교직의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있음을 주변의 분위기로 느낄 수 있다. 교대에 무난히 입학할 성적이면 다른 전공을 택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부쩍 늘어났다. 인터넷 댓글이나 각종 카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여론의 양상이 예전과 다르다. 

나와 아내가 교대에 입학했던 2005년과 2007년은 IMF 사태 이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대량의 구조조정과 실업의 공포가 여전히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상태였다. 부모님들은 고용이 보장되고 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공직을 자녀에게 추천했다. 공무원의 인기는 밀물처럼 높아지고 있었고 소위 '안전빵', '철밥통' 신화가 공고하게 형성되는 중이었다.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고소득 전문직은 아니었으나 '어지간해서는 잘리지 않는다'는 조건이 교직의 매력을 부각했다. IMF로 가정이 무너진 사례가 어제의 악몽처럼 떠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연금이 나올 때까지 성실하게 일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교대에는 있었다. 그 결과 정부 정책이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교직을 선택했다. 특히나 학비가 저렴하고, 빨리 직업전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넉넉지 않은 집안의 수재' 부류의 학생들이 학교에 제법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단순히 임용 절벽만으로 교대의 인기 감소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근무여건과 직무만족도가 낮아진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지방 소규모 자영업자의 첫째 아들이었기에 경제적 이유와 근로 안정성에 끌려 교대로 진학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적 이유는 월급이 세다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 고생하면' 풍족한 연금이 나온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지속된 개정으로 전설처럼 회자되는 '정년퇴직 교장 선생님의 화려한 연금 라이프'는 꿈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지금 내 월급에서 다달이 기여금 항목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보고 있으면, 최후의 보루 같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초등 교사를 지망한다면 최소 임용 초기 십 년은 절약하고 아끼면서 살 각오를 다져야 한다. 급여가 센 금융계나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와 비교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나 또한 초임 교사 시절 월급을 받고 다소 당혹스러웠으나, 선배들로부터 워낙 주의를 들어왔기에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IMF 시절처럼 사기업 대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있었던 초임 교사의 월급은, 2023년 현재 생활비를 대고 나면 겨우 소액만 저축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신규 선생님들은 월급을 모아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우기가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사기업의 임금 상승 수준을 고려하면 '전공이나 대학 선택이 비교적 수월한 우수 인재'들이 굳이 경제적 이유로 교직을 선택할 까닭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학교 현실이 이런데도
 
부부 교사인 우리는 요일별 현금 봉투 살림과 가계부를 매일 작성하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부부 교사인 우리는 요일별 현금 봉투 살림과 가계부를 매일 작성하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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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여건뿐 아니라, 수업을 하고 생활 지도를 하는 등 교직의 근본적인 활동 조건도 나빠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방학 때 편하고, 야근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뭐 힘드나" 하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교사들의 직무만족도가 낮게 나오는 현상은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 심각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다. 

나에게는 교권 침해가 남의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서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욕설'을 듣거나 신체 폭행을 당하지 않았으나, 미래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교육부의 '교권보호위원회 접수 조치 현황'에 따르면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는 2020년 1089건에서 2021년 2109건으로 2배나 증가했다. 

숫자가 아니라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보겠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아이가 온 교실을 헤집고 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어 놔도 교사가 실질적으로 아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적다. 자라며 한 번도 제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듯한 날 것 그대로의 욕구와 충동이 수시로 폭탄처럼 반을 장악한다. 

차분한 대화는 언감생심이며, 일상적인 교육도 훈육도 불가능하다. 모둠 활동에 엄청난 방해를 주는 아이를 진정시키려 잠깐 교실 뒤로 보내는 것도 자칫하면 아동학대가 된다. 침착한 대화가 되지 않는, 주의 산만한 아이에게 "지금 상담 중이잖아" 하고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나는 민원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를 보는 나머지 학생들을 보호하고 싶지만, 매번 극단적인 몇몇 케이스에 의해 균형과 질서는 쉽게 무너진다.

교육과 훈육이 안 되는 학교, 낙제와 유급도 없이 어쨌든 다음 학년으로 거의 100%로 올라가는 '매우 매우 어려운' 아이들, 심각한 멘털 붕괴에 명퇴 날짜를 세는 교원들, 민원이 들어오거나 사고가 터지면 교사를 보호해주지 않는 관리자.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례들은 현장의 교원들에게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얼마 전 제자 한 명이 교대에 합격했다며 연락을 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담임을 맡았는데, 어렸을 적부터 꿈이 교사인 친구였다. 나는 축하를 거듭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기왕 교대에 합격했으니 최선을 다 해 보라고 말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너처럼 영특하고 야무진 친구가 교직을 택해줘서 참 고맙지만, 생각보다 많이 고될 거야'에 가까웠다. 

나는 2023년 3월 16일이면 발령받은 지 만으로 14년이 된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선뜻 제자들에게 교직을 권하지 않는다. 적성에 맞다면, 교직이 천직이라면, 아이들이 정말로 좋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말 우수한 인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괜찮은 삶도 충분히 존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내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교대의 선호도가 감소하고, 현장 교원들의 사기가 바닥을 기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이 학생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으쌰으쌰 힘나는 곳이 되어 전도유망한 제자들에게 자신 있게 교직을 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교대, #초등교사, #임용고시, #출생률, #인구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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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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