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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있다.
▲ 망연자실 9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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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6일 새벽,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쳤다. 7.8은 지난 2016년 있었던 경주 지진(5.8)에 비해 규모로는 2.0 정도 큰 것인데, 이것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1000배의 위력이다. 8000km 떨어진 한반도에도 관측될 정도의 강한 첫 지진은 인근의 다른 단층을 깨웠고 이 단층이 두 번째 강진을 발생시켜 피해를 더 키웠다. 

사망자 수가 4000명을 넘어서더니 닷새가 지난 10일, 2만 명을 훌쩍 웃돌면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1만5894명) 때의 인명 피해를 넘어섰다. CNN에 따르면, 최근 20년 내 7번째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2020년 겨울 동안 이스탄불을 베이스캠프 삼아 튀르키예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 사는 튀르키예 사람들과 아직도 연이 닿는데, 이번 지진 소식을 듣고 안전한지, 현지 사정은 어떤지 걱정이 돼 연락을 취했다. 이번 지진에 대해 이들은 모두 비통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각자 다른 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역사상 최악의 지진'... 현지인들은 지금 

지진 진앙지인 가지안테프와 비교적 먼 곳인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는 A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30대 후반인 그는 종교에 너무 심취해 있는 사람들을 살짝 무시하며 '버드브레인(새머리)'이라고 말했던 선박엔지니어였다. 심지어 종교지도자 출신 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에르도안 정부는 인명 구조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을 특별한 대책 없이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20년째 장기 집권 중이면서도 여전히 다가올 5월 조기총선에만 전념한다는 거였다. 국내 언론도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 있기는 불가능하다"며 "일부 부정한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허위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고 말한 에르도안의 발언을 보도한 바 있다. 

심지어 에르도안 정부는 튀르키예 내 SNS 트위터 접속을 차단한다고 했다. 실제 8일(현지시간) 인터넷 모니터 업체 넷블록스는 "튀르키예 대부분의 통신·인터넷 사업자가 이용자들의 트위터 접속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AFP 통신 등 외신도 튀르키예 내 트위터 접속이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A는 "이렇게 큰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20여 년간 징수한 '지진세'(특별통신세)를 어디에 사용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진을 대비한 건축공법 등과 전혀 상관없는 안전불감증 건축물 시공으로 이번 참사를 더 키웠다는 비판이었다. 
 
2월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시민들이 강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에서는 규모 7.8,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80여 차례 여진이 일어나 건물 5600여 채가 붕괴했다.
 2월 6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시민들이 강진으로 붕괴한 건물 잔해를 들어올리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에서는 규모 7.8,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80여 차례 여진이 일어나 건물 5600여 채가 붕괴했다.
ⓒ 아다나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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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와 시리아가 각 단층대와 판들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고 그것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84년 전에도 튀르키예서 최악의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나미대학을 나온 30대 후반 M은 내가 묵었던 아파트 주인이었다. 현재는 중국 통신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3년 전에는 탁심광장 근처에서 바텐더로 생활하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던 인텔리였다.

그는 튀르키예 인구 중 98.4%가 무슬림(수니파)이지만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무교인인 그는 에르도안이 탁심광장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바람에 이직을 해야 했다.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M은 담담하게 희생자 수를 내게 전해주면서도, 이번 참사에 전 세계가 나서서 돕고 있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여주는 현실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튀르크 족이 천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며,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 때 세브르 조약에 서명한 것보다 지금이 더 위기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1923년 오스만제국이 멸망할 때 다행히 아타튀르크가 있어서 터키(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지만 지금 어디에도 그와 같은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M은 철저하게 세속주의를 내세우면서 튀르키예만을 위해 헌신했던 초대 대통령을 현 대통령과 비교하고 있었다. 결국은 M도 A처럼 돌려서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셀주크 튀르크 수도였던 코니아에 사는 S는 전혀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40대이자 제법 큰 기념품 상점 주인인 그는 이슬람 율법을 따르지 않고 방탕하게 산 결과가 지금의 참사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코니아는 길거리에 히잡 쓴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에르도안의 강력한 지지층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정부 보조금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

천재이자 인재... 우리가 해야할 일은 
 
2023년 2월 8일에 튀르키예 아디야만 주 베스니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 중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2023년 2월 8일에 튀르키예 아디야만 주 베스니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파괴된 건물 잔해 중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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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 나라에서도 지리적, 소득 수준이나 성별 그리고 신념에 따라서 이번 참사를 대하는 온도가 달랐다. 이는 '천재(天災)'가 단순히 천재가 아니라 인재일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진(地震)은 맨틀(mantle) 위에 떠있는 지각 판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움직임 자체는 자연의 질서이고 조화이며 끝없는 균형 과정이다. 지각들이 '빈틈'을 향해 움직이는 현상이다. 지진은 자연으로 가득 찬 자연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되면서 자연이 '난'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이 인간적 성취의 과정이자 산물인 문명과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명이 살상되고 인간적 성취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자연에 의한 문명 파괴는 천재(天災)이면서 동시에 인재(人災)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인재는 천재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응(대처) 하는 인간의 '능력 없음'이다.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음에도 개인적인 이해관계 등으로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거나, 희생자들과 난민 등 재난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보호를 저버리는 것이다. 무능력한 정부일수록 그 본색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수많은 생명들을 구조할 수 있다. 아주 큰 손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깨끗한 물, 따뜻한 헌옷 등,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이들을 도울 수도 있다.

지금은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성별·종교·종족 등 모든 것을 초월해서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한 때다. 재난(災難)에서 가해자는 도망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롯이 그 참사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만이 자연 앞에서 인간이 나약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위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팬데믹 이전 튀르키예에 두 달 동안 머물렀을 때 친분을 쌓았던 현지인들입니다. SNS로 이번 참사의 의견을 물었고 신변보호를 위해서 이니셜로 처리했습니다.


태그:#튀르키예지진, #연대, #고통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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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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