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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말]
우울증과 조현병의 발병은 별개라서 두 질환 사이의 연관성은 불명확하다고 해요. 제가 가진 우울증은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오래되었지만, 조현병은 비교적 최근에 발병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의 역사를 조현병 발병 이전과 이후로 별도로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어 부르는 것처럼요.

단순하게 구분 지어 생각하긴 하지만, 제 정신질환 역사에서 조현병이 시작된 시기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조현병 양성 증상이 시작된 날짜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심각한 일들은 보통 급작스럽게 나타난다지만, 제 병증은 잉크가 천천히 종이에 스며들듯이 진행되었습니다.

조현병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

어느 날부터인가 SNS의 다른 사람들이 남기는 글들이 저를 향한 말들로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분 나쁘고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 SNS에 글을 쓰죠. 가령 직장 상사에게 화가 나도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니 주어가 없이 욕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럼 괜히 그런 게시물이 저를 향해 하는 말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당연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타인의 악의가 저를 향하고 있다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글들을 찾으면서 사실을 알아내려다 의심이 확신이 됐어요. 망상과 인지왜곡이 시작된 거죠.

SNS의 말들이 저를 향한다는 생각이 들자 누군가가 저를 감시한다는 망상도 시작되었습니다. 집 안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외국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비행기 표도 없이 홀로 공항에 간 적도 있어요. 종국에는 유서를 남긴 채 새벽에 가출을 해서 집이 뒤집히고 나서야 병원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조현병의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저의 마음 속은 여러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조현병의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저의 마음 속은 여러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 Daniele Levis Pelu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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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증상은 조현병의 '양성' 증상에 속합니다. '양성' 증상은 비질환자들에게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조현병의 독특한 증상들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양성 증상을 겪는 동안 느낀 지배적인 감정은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까지만 눈치챌 뿐,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기에 많은 시간 동안 불안했어요. 

함께 들었던 또 다른 감정은 압도적인 고립감이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아무도 나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지 않아, 너무 외로워. 증상이 약물 치료로 호전된 이후에도 두려웠던 건, 증상 그 자체만큼 증상을 겪으며 느꼈던 강렬한 혼란, 공포, 고립감을 다시 느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격렬했던 양성 증상이 가라앉고 음성 증상이 나타나자 다른 모습을 한 같은 감정들이 찾아왔습니다. '음성' 증상은 감정표현과 의욕이 조현병 환자에게서 현저하게 감소하는 증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어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조차 실행하기 무척 힘이 들었죠.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제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원히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왔어요.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양성 증상과 달리, 음성 증상은 겉으로 티가 잘 안 날 때가 많아요. 그래서인지 제가 겪는 고통을 타인들이 알기 어려웠기에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심해졌습니다.

정신질환자의 감정도 존중되었으면
 
무표정하고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더라도, 조현병 정신질환자의 내부에는 다양한 색깔의 감정들이 존재합니다.
 무표정하고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더라도, 조현병 정신질환자의 내부에는 다양한 색깔의 감정들이 존재합니다.
ⓒ Steve Johnson(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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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에 대해 다루는 창작물과 미디어에서는 이런 당사자의 감정들에 대해 비중 있게 조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묘사를 하더라도 환각이나 망상이 행동의 직접적 원인이나 성격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려내곤 합니다.

하지만 조현병 당사자도 비질환자와 똑같이, 어떨 때는 더 생생하고 강한 감정들을 겪을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래요. 겉으로 보기에 이성을 잃어 보이거나 무표정으로 있을 때도, 마음 안에서는 자아가 불안과 공포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요.

최근 조현병 아들을 둔 엄마를 내용으로 한 심리스릴러 <F20>(2021)을 감상했습니다(F20은 조현병의 질병 코드). 개봉 당시에는 조현병 혐오 논란을 낳기도 했는데요.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아들 캐릭터였습니다. 그가 이야기 내에서 더욱 다양한 감정표현이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아들 외에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하는데요. 아들 또래의 남자 청소년입니다. 그는 주인공의 아들보다도 더욱 인물됨이 드러나지 않아 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다른 창작물에서 그렇듯이, 인물이 가진 고유한 성격보다 조현병 증상을 부각시킨 것이죠. 비질환자들이 가진 중증 조현병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형적인 선입견(잘 이해할 수 없는 반복적인 행동, 논리적 대화가 잘 되지 않음 등의 눈에 띄는 특징)이 인물의 주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영화에서 해당 인물의 감정 탐구나 입장을 통해 인간다운 모습을 더 부각시켰다면 그런 특징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영화가 비질환자들의 시선과 편견을 이용해 중증 조현병 정신질환자 인물을 규정짓고 주변인으로 소외시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표현이 중증 조현병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창작자들에게 조현병에 대한 심각하고 깊은 성찰까지 요구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최소한 조현병을 가진 인물들이 비질환자만큼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존엄한 존재로 그려지길 원해요.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어요. 변화를 위해서는 당연히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지만,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존재하기에 모든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비질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조현병과 조현병 당사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 조현병을 가진 정신질환자들이 비질환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감정과 정서를 가진 같은 인간 존재임을 모두가 깨닫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경험했던 증상을 밝히면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기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환우들이 자신의 증상과 유사한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이 정신질환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사례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일부를 편집해 공개합니다. 동시에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창작자들과 미디어가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의 양성 증상만이 아닌, 비질환자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희망합니다.  


태그:#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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