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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보고서전'이 열리는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 입구
 백남준의 '보고서전'이 열리는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장 입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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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보고서(THE CONSULTANT: PAIK'S PAPERS, 1968~1979)' 전이 오는 3월 26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1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 김윤서 학예사가 맡았다. 또 이번에 '걸리버' 조각은 아트센터와 경기문화재단 협력으로 이 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6개 국어를 하고 <뉴욕 타임스>, <슈피겔> 등 전 세계 신문을 봤던 백남준, 그는 걸어 다니는 세계 대백과사전, 요즘은 그 이름 앞에는 '대체 불가능한 예술가(NFP)'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그런데 이번 전에서는 '미디어 컨설턴트(consultant, 정책제안자)'로 그를 조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세계적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지성임을 엿볼 수 있다.

1968년, '종이는 죽었다'

백남준은 1968년 유럽 혁명기에 21세기 정보사회를 대비한 보고서를 썼다. 제목은 '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를 위한 확장된 교육'이다. 이 시리즈는 1979년까지 계속되었다. 백남준은 이 프로젝트를 록펠러재단 'TV·비디오·필름'분과에 제출해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스튜디오22'에서 보고서 쓰는 백남준 모습. 이탈리아 사진가 '지아니 멜로티'가 찍다. 1974년 ⓒ Gianni Melotti
 '스튜디오22'에서 보고서 쓰는 백남준 모습. 이탈리아 사진가 '지아니 멜로티'가 찍다. 1974년 ⓒ Gianni Melotti
ⓒ Gianni Melotti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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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첫 보고서의 골자는 '종이는 죽었다'이다. 앞으로 사회는 종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예를 한국에서 하나 찾아보면 2000년부터 전자신문을 낸 <오마이뉴스>다. 이젠 종이 지폐도 전자 지폐로 점점 바뀐다. 이렇게 되면 나무를 덜 베니 환경에도 좋다.

또 같은 해 보고서에서 백남준은 "가장 미학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교육철학이 담긴 문장이다. 이제 모든 학교는 예술학교가 되어야 하고, 모든 교육은 예술적 상상력과 정보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백남준은 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요즘 많이 보는 디지털 대학도 제안했다. 당시 제목은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이다.

또 백남준은 1974년에 '후기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라는 보고서를 냈다. 여기서 그의 고민은 '동서가 어떻게 하면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느냐'하는 거였다. 백남준은 실크로드를 통해 이런 분야를 개척한 칭기즈칸과 M. 폴로를 떠올리면서, 이 길을 전자화·고속화하는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개념을 발명했다. 오늘날의 '인터넷(www)'이다.

백남준은 인터넷을 온 인류가 에너지 낭비 없이 진보할 수 있고, 전쟁도 막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봤다. 또 이건 빠를수록, 쉬울수록, 쌀수록 좋다고 했다. 왜? 그래야 정보소외자가 없어지기에. 백남준은 미국이 베트남에 진 것도 결국 상대국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의심쩍은 권력 복합체'가 정보를 독점하는 건 절대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동 메타포, 교통수단
 
 백남준 I '전자 가마와 모터사이클' 1995 롯데칠성 소장품. 전자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것 같다.
  백남준 I '전자 가마와 모터사이클' 1995 롯데칠성 소장품. 전자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것 같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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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90년대 작품을 보면, TV와 세트로 수레, 가마, 자전거, 자동차, 사이클, 스쿠프 등이 보인다. 이런 탈 것은 백남준에게는 동서를 잇는 이동 수단의 메타포다. 위 작품 '꽃가마와 모터사이클'도 같다. 여기에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네온을 쓴 건 관객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이동의 속도감을 더 실감 나게 느끼게 하려고 한 것이기도 하다.

위 작품은 1995년 광복 50주년에 맞아 '롯데칠성'이 백남준에게 의뢰해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롯데칠성 32초짜리 상업광고로 활용되었다. 백남준은 광고마저도 예술화했고, 그의 비디오 콘텐츠에 포함했다. 이 작품은 롯데칠성 수장고에 보관돼오다 27년 만에 공개됐다.

동서 위계를 깬 '해커'
 
백남준 I "하이웨이 해커" 이 작품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을 은유하다. 199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 I "하이웨이 해커" 이 작품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을 은유하다. 199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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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주최 측은 백남준을 정책제안자로 부각했지만 동시에 디지털 해커로도 소개한다. 백남준은 60년대 독일에서 서양인이 신성시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때려 부숴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동서의 위계를 깬 해커의 모습이다.

이런 몸짓을 통해 그는 동료 작가인 '요셉 보이스'와 함께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에 갇힌 독일인의 가치관을 깼다. 대신 선불교, 노장사상, 몽골 샤머니즘과 멀리 보는(텔레-비전) 노마디즘을 도입했다. 독일인들 경쟁주의와 애국주의가 낳은 '나치즘'을 처절하게 겪은 후라 그 호응은 좋았다. 60년대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적 사고'와도 통한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했을 때, 프랑스 신문 <리베라이옹>은 그의 부고 기사에서 그를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고 하면서 동시에 '우상파괴적 해커(bidouilleur)'였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해커란 부정적 의미보다는 혼란한 시대에 문명의 길잡이를 해준다는 적극적 의미다.

1973년, '1인 미디어 시대' 
 
'Arirang(영어방송)' 특별 기획 방송 "백남준의 예술과 혁명" 중 화면 캡처. 백남준 1인 미디어 시대를 예언하다
 'Arirang(영어방송)' 특별 기획 방송 "백남준의 예술과 혁명" 중 화면 캡처. 백남준 1인 미디어 시대를 예언하다
ⓒ 아리랑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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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인터넷 예고 1년 전인 1973년에는 "앞으로 1인 미디어가 올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유튜브 혁명'은 여기서 시작된다. 또 TV는 일방형이라 우민화·상업화의 도구가 되기 쉽지만, 비디오는 쌍방향인 데다 적은 비용으로도 독자적 미디어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대자본과 광고로 운영되는 거대 방송의 전횡을 막는데 이만한 대안도 없다.

사실 유튜브 혁명이 가능했던 건 1969년 백남준이 일본 기술자 '아베'와 함께 누구나 쉽게 영상을 분리, 결합하고, 중첩, 왜곡시킬 수 있는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1973년, 백남준이 유튜브 개념으로 만든 '글로벌 그루브'도 이런 비디오 신시사이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소개된다. 백남준은 이제 영상을 "레오나르도만큼 정확하게, 피카소만큼 자유롭게, 르누아르만큼 다채롭게, 몬드리안만큼 심오하게, 잭슨 폴록만큼 난폭하게, 재스퍼 존스만큼 서정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했다.

미디어 연금술 작품, '걸리버'

이제 끝으로 2001년에 3채널 비디오로 제작한 백남준 '걸리버'를 보자. 길이가 4m가 넘는 대작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쓴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프로 했다. 가상 모험가가 소인국에서 잡히는 장면을 미디어 대장장이처럼 기막히게 만들었다. 11대 CRT TV가 두 종류의 비디오 화면을 보여준다. 이 전자조각은 잡동사니 전자제품으로 뒤덮여있다.
 
백남준 I '걸리버' 3채널 비디오. 200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백남준 I '걸리버' 3채널 비디오. 200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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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소설에 대해 좀 알아보자. 17세기 영국 제국주의 태동기에 이 책의 저자 '스위프트'는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귀족으로 활동하면서 영국식에 적응하려 했으나, 아일랜드 출신이라 그런지 배척을 많이 당했다. 그래선지 스위프트는 이 책에서 영국을 파괴, 학살, 약탈 위에 세워진 나라로 참혹하게 묘사해 출간 당시에는 금서가 되었다.

이 책 줄거리는 걸리버가 '소인국, 대인국, 섬나라, 말(馬)나라'에서 겪는 이야기다. 그는 의사(船醫)로 배를 탔고, 풍랑을 만나 소인국에 도착했다. 몸이 묶인 채 이 나라를 염탐하니 신하들은 왕 앞에서 외줄 잘 타면 출세했다. '줄 잘 서야' 성공하는 당시 영국 사회를 비꼬았다. 우리도 같다. 걸리버는 여길 망명해 대인국으로 갔으나 거기서도 말실수로 또 추방된다.

이번엔 공중에 떠 있는 '달나라'로 갔다. 이 나라엔 왕립연구원이 있는데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지만 그게 국민 생활 개선에 도움이 안 됐다. 이는 당시 만연한 영국 '학벌주의'의 희화다. 여기서도 추방돼, '말의 나라'로 갔다. 모략과 음해가 주특기인 여기 사람들은 짐승보다 취급 못 받았다. 스위프트는 이런 모난 나라들을 영국에 빗대어 통렬하게 조롱했다.

하여간 백남준 이 작품에서 "한 매체가 다른 매체로 발전할 수 있다"라는 '맥루언'의 미디어 확장이론을 도입해, 빈티지 TV와 라디오로 연금술사처럼 희귀한 조각을 만들었다. 여기서 백남준은 시대사를 관찰할 때 미시적(소인국) 혹은 거시적(대인국)으로만 볼 게 아니라 동서와 시공을 넘어 중심만이 아니라 변방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중요함을 강조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전시 관련 특강: 백남준의 보고서와 과학기술사] 2023.02.25.(토) 14:00~15:30(90분)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홀 :초청 최형섭 교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진행:김윤서 학예사
대상: 성인 참가비: 무료 접수기간: 2.23.까지 신청하기-접수문의 031-201-8553


태그:#백남준, #백남준의 보고서, #전자초고속도로, #종이 없는 사회,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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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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