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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어른이 병원에 입원하여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장모님도 함께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야 한다.
▲ 명절에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장인, 장모님  장인 어른이 병원에 입원하여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장모님도 함께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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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한 주 앞둔 지난 주말, 장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항암치료를 받는 장인어른이 아무래도 구정쯤 병원 입원 스케줄이 잡힐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북 문경에 오지 말고 그 전에 서울에 갈 예정이니, 서울에서 다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지난 16일 월요일 저녁에 처남과 처남댁까지 모두 함께 모여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우리 집에 모두 모여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서 주무시던 장인어른이 갑자기 열이 나서 급하게 응급실에 가야 했다. 여러 검사 결과 수치가 좋지 못해 바로 입원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는 보호자 1인, 즉 장모님만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아내는 옷가지를 챙겨 병원에 가져다 드렸다. 결국 연휴 동안 장인, 장모님은 꼼짝없이 병원에 계셔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내와 나는 무거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장인어른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강 상태가 호전되어 예정대로 항암치료를 받게 된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명절 당일에 아이들과 병원을 찾아가 장모님이라도 모시고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 말에 조금이나마 아내의 얼굴이 퍼졌다.  

설 명절을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 
 
명절에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장인 어른으로 인하여 그 전에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 장인, 장모님과 함께 식사 후 다과를 즐겼다. 명절에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장인 어른으로 인하여 그 전에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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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가댁이 서울에서 문경으로 이사 간 뒤로 명절 때마다 방문했었다. 산속의 조용한 곳이라 아이들도 마음 편히 뛰놀 수 있었고, 맑은 공기에 숨통이 확 트였다. 자주 뵐 수 없기에 그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려 노력했다. 가까이에 오래 살았던 장인, 장모님이 멀리 떠나고, 더구나 최근에 장인어른의 건강이 좋지 못한 후론 아내의 근심과 그리움은 늘어나는 눈치였다.  

이번 설 명절, 결혼 후 처음으로 처가댁 방문을 하지 않게 되면서 명절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원래는 명절이 되면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으며 큰 집에 방문했었다. 1년에 명절 때만 보는 친척들과 어색한 조우를 하고,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여전히 여성들이 명절 노동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위기로 인해, 아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몇 번은 그것이 시발이 되어 부부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큰집에서 각자 명절을 보내자고 하는 바람에 제사가 사라졌다. 본가에 가서 저녁 식사만 하고 오면 되었다. TV에서만 보았던 명절 기간 여행도 가보았고, 마음 편히 처가댁이 있는 문경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명절 스트레스가 점차 사라지니 나 또한 그쯤만 되면 느꼈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솔직히 '이번 명절엔 어디로 떠나볼까' 하는 행복한 생각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예기치 않은 장인어른의 입원으로 인해, 평소에는 그저 편하게만 생각했던 명절의 여유가 마냥 즐겁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누군가는 우리처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명절,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

어쩌면 회사 일이 바빠서 명절에도 일해야 하거나, 자영업 경우 월세나 인건비 걱정에 쉴 수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교대 근무해야 하는 경찰, 소방 공무원들도 그 기간에 근무가 있으면 고향에 갈 수 없다.

청년들 같은 경우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위하여 쉴 엄두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당사자 본인이 병마와 싸우거나, 우리처럼 아픈 가족을 간호하느라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으리라. 

그분들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에 놓이고 나니, 이전엔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던 명절 연휴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오롯이 누리면서도, 때론 불평도 많이 늘어놓았던 과거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이번 연휴 기간 고속도로 예상 통행량은 하루 평균 519만대로, 전년 419만 대비 20% 이상 증가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미리 떠난 직원들도 많았다. 이번 주 출근길, 평소와는 달리 한산한 지하철에 앉아서 회사에 오면서,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그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곤 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코로나로 인해 어그러졌던 일상이 이제는 대부분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명절에도 마음껏 이동할 수 있는 시점. 그러나 그럼에도 명절을 편안하게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을 한 번쯤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나 또한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장인, 장모님을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부디 내년 명절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문경에서 뵙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이전에 비해 점점 간소화되는 명절 분위기를 반기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명절마다 여성들에 부담지워지던 가사 노동을 이제는 평등하게 분담하더라도,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정을 나누는 그 의미까지도 간소화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태그:#설명절, #연휴, #병원, #명절, #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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