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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시즌 2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시즌 2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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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전설의 시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트로트 탐험을 시작했다. 시즌 1때 나는 가수 임영웅을 응원하였다. 투표에도 참여하고 그가 우승했을 때 함께 울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들이 한 마디 했다.

"트로트가 그렇게 좋으셔. 세상 진심이네. 우리 엄마."

내년에는 트로트를 끊어야지 다짐 아닌 다짐을 했는데, 지난주부터 시즌2를 시작한다는 걸 알고 또다시 채널 고정이다. 이번 시즌에는 어떤 전설이 쓰일까 궁금해 하면서. 마치 나도 한 사람의 전설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뽕짝'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일컬어지는 '트로트(Trot)'는 사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우리 대중가요 양식이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전통가요라고 칭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입가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에서 언급한 바 있다.

나는 트로트 못지않게 클래식을 좋아한다. 클래식을 자주 듣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물었다. 클래식이 왜 좋으냐고, 나는 대답했다. 자연스럽다고, 물 흐르듯, 바람이 불 듯, 햇볕이 내리듯, 하루가 저물어 서서히 어둠이 오는 일처럼 편해서 좋다고.

클래식도 트로트도 자연스럽게
 
소박하고 정겨운 시골집 그림
 소박하고 정겨운 시골집 그림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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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처음 트로트를 접하게 된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다.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트로트라는 장르 개념도 없이 자연스럽게 내 잠자리를 뒤척이게 했던 노래가 있는데 바로 '미워도 한세상'이었다. 제목은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

농사일로 고단한 몸을 일찌감치 눕힌 부모님이 주무시면 오 남매도 하나둘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잤나 싶은데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버지 친구의 노랫소리에 잠을 깬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날이면 으레 신작로 길 따라 집까지 가는 동안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아저씨의 노래가 들리면 괜히 안도가 되었다. 아저씨가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시는구나 싶어서이다.

간혹 노래를 멈출 때가 있는데 동생 중 누군가는 아저씨 오줌 누는 거여 하고, 어쩌지, 아저씨 길에서 주무시는 거 아닐까. 또는 아저씨 혹시 우시는 거 아냐. 온갖 상상을 하며 귀를 기울이면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늘 같은 노래다. 캄캄한 시골길을 혼자 비틀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길을 염려하며 우리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는 부분이 왜 그렇게 슬픈지 나는 괜히 동생들한테 빨리 잠이나 자라면서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달랜다는 말에 잠을 뒤척였다. 아저씨는 무엇이 그렇게 마음 달랠 일이 있는 것일까. 고향을 떠나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 술을 빌어 노래를 빌어 토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책임져야 하는 가족 사이에서 발목이 묶인 가장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 내 사춘기와 동질감을 느끼며 늘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에서 찾고 있기나 한 것처럼 오래 마음에 두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년 전쯤의 초가을이었다. 전남 영광으로 시제를 모시러 간다는 말을 듣고 마침 시간이 맞는 동생들과 동참하기로 했다. 꽃무릇을 보러 온 관광 차들로 돌아오는 길은 막혔다. 처음 누가 노래를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친척 어르신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기사님이 틀어주는 노래방 기계는 템포가 빨라 따라 부를 수 없어 틀지 못했다.
 
보이는 모습은 평화로우나 시골살이 안으로 들어가면 사실 고달프다.
 보이는 모습은 평화로우나 시골살이 안으로 들어가면 사실 고달프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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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차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앞쪽 어디서 '미워도 한세상'이 흘러나왔다. 아, 오래 전에 듣던 그 노래를 여기서 듣게 된 것이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자신이 살아온 결대로 담담하게 부르던 어르신의 노래가 가을의 찬란한 오후를 빛내고 있었다. 나지막이 나도 따라 불렀다. 울컥 눈물이 났다. 인생이 트로트처럼 흘렀다.

평균 연령 칠십 후반을 훌쩍 넘긴 집안 어르신들이 목소리 하나로 끊어지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길, 음정도 박자도 각자 다 달랐으나, 원 없이 노래 부를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듣는 우리도 가슴 시리도록 그 순간이 좋았으니 말이다. 

고단한 여생을 살아오면서 노래 없이 어떻게 견뎠을까 싶고, 노래는 트로트여야 알맞을 것 같았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가 참 듣기 좋았다. 구성진 목소리로 늘 처음으로 부르시던 노래는 '고향 무정'이라는 노래였다.

노래방 가자고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트로트를 부른다. 노래는 못하지만, 트로트라는 장르에 묻어가면 기본은 하는 것처럼 들린다. 트로트는 그랬다. 클래식처럼 자연스러웠다. 무심히 스치는 시골 풍경처럼 정겨웠다.

간절함이 꿈으로 실현되는 현장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간절함이 있다. 보는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간절함의 한가운데 선다. 지원자 중 누군가는 혹독하고 시린 무명의 지난한 삶을 건너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이 연습하고 준비한 모든 것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서 있는 것이다.

응원하면서 위로받는다. 그래서 마음을 모아 듣는다. 심사를 맡은 마스터들은 노래 한 소절, 들이쉬는 호흡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인 끝의 오디션장에 나왔는지 예리하게 잡아낸다. 간절하게 노력한 사람을 보면 신뢰가 간다.

예전 부모님 세대와 듣던 트로트는 삶의 애환이 깃든 노래였다. 요즘에 듣는 트로트는 뭔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장르를 즐기며 남녀노소 편하게 듣는다. 우스운 말로 요즘 10대 청소년들도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곡으로 트로트를 부르면서 마무리한다고 들었다.

이것은 부모님 세대로부터 익숙하게 들었던 정서가 배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트로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굳이 애환을 들고 나오지 않아도 흥이 나 부르는 노래가 트로트다.

'삶을 걸고, 끝장을 보려고,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참가자들의 결기를 보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는 즐기자는 마음 이면에 나 역시 그들의 꿈과 희망에 내 의지를 싣고자 하는 마음 또한 있음을 감출 수 없다. 간절함이 꿈으로 실현되는 현장에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다. 시즌 2가 끝날 때까지 한동안 트로트라는 노래에 빠져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트로트, #간절함이 있는 오디션, #고향같은 노래, #부모같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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