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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2년 되었습니다. 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필요하면 먼저 물어봐야지. 이게 집에 없어?"
"네."

"가져가. 이건 어때? 이것도 예쁘다. 좋아?"
"네."

"이것도 가져가. 그 대신 다음엔 꼭 말해야 돼."


해나가 슬쩍 비닐봉지 안에 넣으려고 했던 건 반짝거리는 스티커 몇 장이었다. 무료로 아이들에게 만들기 공예와 댄스, 게임을 진행하는 마을센터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모 나라에서 영국으로 이사 온 지 고작 한 달이 조금 넘었다던 해나. 들고 있던 비닐봉지 안에는 이미 색종이, 흰 종이, 칼라 펜이 들어 있었다. 뭐... 이런 것쯤은 가져갈 수 있겠지. 다음에는 안 그러겠지. 넘어갈까 하다가도 이렇게 훔친 게 두 번째라 센터 리더들과 여러 번의 고민 끝에 해나 어머님을 만나기로 했다.

작은방 하나에 모서리 주방이 겨우 딸린 작은 월셋집엔 14살인 해나와 두 명의 동생들 그리고 엄마가 함께 산다. 엄마는 스코틀랜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아이들만 데리고 왔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부하기도 빠듯한데 낯선 외지에서 싱글맘으로 세 아이를 키우다니.

세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아직 학교 배정이 되지 않아서 아이들은 엄마가 없는 집엘 혼자 있거나 길거리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오후 네시만 되면 어둑스레 찬 기운이 도는데 밖에서 맴도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내 마음이 속상하다 못해 불편해졌다. 

"16년 동안 함께 살던 남편의 폭력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남편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려고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해나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눈물과 웃음을 함께 했던 사람들.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 눈 감고도 찾아갈 정들었던 고향. 손에 잡히는 거 몇 개 짐 가방에 집어넣고 모든 걸 뒤로 한 채 떠나야만 했던 엄마의 결정에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지우개로 빡빡 지우고 싶을 만큼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더하고 붙이기를 반복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꺼내 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해나 엄마와의 대화가 거진 끝나갈 무렵 해나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해나는 만들기와 그리기를 참 잘하더라. 해나야, 다음 모임에서는 필요한 게 있음 우리한테 말하기다." 
"네."


'스코틀랜드에 삽니다' 일자리 구하기 1편의 글(현장학습비 백만 원... 돈이 필요해서 벌인 일)을 쓸 무렵, 중학교에 다니는 큰딸이 역사 탐방 여행이 있을 거라는 쪽지를 받았었다. 여행비가 너무 비싸서 도저히 보낼 수 없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던 날, 우리는 머리를 모아 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 후, 누구에게 또는 누구로부터라는 글도 없이 흰 봉투 하나가 우리 집 편지함으로 들어왔다. 봉투 안에는 약 오십만 원(한국돈)이나 되는 현금이 들어 있었다. 나나 남편이나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말 하지도 아니 말할 이유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이 봉투 이후에도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아이들 필요한 거 사주라며 돈을 쥐어 주기도 하고 교회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꼬마 김밥처럼 돌돌 말은 돈 뭉치를 내 주머니에 찔러 주기도 했다. 놀라웠다. 우린 단지 기도했을 뿐인데 딸의 여행비 90%가 채워졌다. 정말이지 하나님께 감사했다.  
 
할머니가 내 주머니에 찔러 준 돈뭉치
 할머니가 내 주머니에 찔러 준 돈뭉치
ⓒ Hyeyoung J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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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자리 구하기 1편>의 글이 브런치에 발행되고 난 바로 다음 날, 모 브런치 작가님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따님의 여행길에 얼마라도 보태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란 화면 창에 뜬 메시지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안경을 쓰고 다시 또박또박 읽었다. 현관문에서 학교를 가려고 신발 끈을 묶고 있는 큰 딸한테 메시지를 보여 주니 싱글 방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이 한국어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이 기사가 발행되고 위의 메시지와 함께 독자 원고료가 들어왔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거라 '독자 원고료가 뭡니까?'라고 오마이뉴스 에디터님께 여쭈어 보기도 했다. 기적처럼 내년에 큰 딸이 갈 역사 탐방 여행비가 100% 채워진 데다가 여행 때 쓸 용돈까지 생겼다.
 
"모두가 연결되었다.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느슨하고 끊어질 것 같이 약한 끈이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는 줄. 그 줄을 누군가가 잡아당기면서 "저 여기에 있어요"라고 한다. 그 사람을 발견한 우리는 당신이 그곳에 있었군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요. 당신이 잘 되면 좋겠어요. 이런 새로운 연결의 방식이 우리의 사회를 선한 방식으로 연결해 주는 것 같다. " - 김민섭 작가 '사색의 공동체 스미다'의 강의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도 잘 모르는 우리 동네, 틸리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14살 소녀가 역사 탐방 여행을 간다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를, 우연히 딱 한 번 만났을 사람들이 가느다랗고 느슨하게 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게 연결되었다. 

해나와 동생 엘리엇은 우리 집에 자주 들락날락거린다. 오늘 같이 으슬으슬 추운 날에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에 왔다. 밖에서 서성거릴 때보다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보드 게임도 하고 '애니'라는 영화도 봤다. 정말 별거 아닌데... 아이들이 웃어주니까 고마웠다.

본인들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비행기 한 번 타고나니 밟게 된 이 낯선 땅도 제법 살만한 곳이라는 걸. 마음 붙이고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해나와 가족 모두가 잘 되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11월에 썼던 '스코틀랜드에 삽니다' 일자리 구하기를 이제 3편으로 마치려 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은 <더할 건 없는데 뺄 건 많고>였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다 보니 더할 이력은 없는데 뺄 조건이 많아서 붙인 제목이었다.

지금 보니 월급도 마찬가지다. 더할 게 없으니 작은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배우던 바이올린 과외를 뺐다. 19도였던 우리 집 실내 온도도 1도 더 뺐다. 100살이 넘은 오래된 집이라 창문 틈새로 찬  바람이 휘휘 들어온다.

아이들은 히잡처럼 이불을 머리 위로 덮고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거실 벽난로 앞으로 오순도순 모였다. 우리 집만의 괜찮은 겨울 풍경이다. 앞에서 말했던 해나의 엄마도 그랬다. 떠나려고 짐 가방을 싸고 보니 더할 자리는 없는데 빼야 할 게 수두룩 했단다. 

솔직히 빼기보다 더하기가 훨씬 좋다. 요즘의 빼기는 마치 심장 없는 다이슨 청소기처럼 무섭다. 무심하게 다 빨려갈까 봐 심장이 벌렁 거리다가도 자기의 몫을 기꺼이 빼서 다른 사람에게 더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적이 만들어진다는 걸  배운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덴 것처럼 뜨거워진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중북 게재 되었습니다.


태그:#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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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트랜드에 살고있습니다. 평소 역사와 교육, 자연과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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