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 가면 높은 곳부터 찾습니다. 산이나 높은 건물에서 도시의 전경을 둘러보고 그 도시 사람들의 눈에 오래 담겼을 장소를 직접 밟아보는 것이 도시를 알아가는 순서라 생각해서입니다.
도시를 대표하는 산은 그래서 빼놓지 않고 찾는 장소입니다. 예스럽게 표현하면 산의 정기가 시민들에게 흘러 닿았을 테니 산을 가는 일이 도시를 알아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의 팔공산은 전부터 찾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왕건 대신 왕의 복식을 입고 싸워 전사한 신숭겸을 포함해 여덟 명의 장수가 전사한 곳이라 팔공산이라 이름 붙었다는 이 산은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의 역사를 가름한 장소였습니다. 견훤에게 왕건이 잡혀 죽었다면 한반도의 물줄기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또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낙동강과 팔공산을 끼고 최후 저항을 한 일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팔공산은 관광객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습니다. 통상 등산은 하루를 통으로 내어야 하는 탓에 일정 짧은 관광객에겐 부담이 되게 마련입니다만 팔공산만큼은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큰 산임에도 부분적으로 케이블카가 놓여있어 두어시간만 있다면 산허리에 올라 식사와 차 한 잔을 하고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연간 35만명 찾는 팔공산 케이블카
제가 팔공산을 찾았을 때도 전국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랐습니다. 힘을 들이지 않고 중턱에 올라서 여유를 즐기는 게 썩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을 모시고 온 가족들은 케이블카가 아니라면 산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과연 환경단체와 날을 세우는 개발업자들이 어르신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내세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케이블카는 원래라면 산을 찾지 않았을 이들에게 산을 여행지로 고르게끔 하는 매력을 분명히 가졌으니 말입니다.
다만 팔공산 케이블카는 코스도 짧고 오래돼 요즈음 인기를 끄는 여수나 목포, 설악산 등지의 케이블카만큼의 감흥은 안겨주진 못합니다. 또한 정상인 갓바위처럼 산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요. 산에 제대로 오르려면 케이블카에서 내려 또 몇 시간을 더 올라야 하니 산을 제대로 구경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나오고는 합니다.
이날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린 이들 수십 명 중 산행을 하려는 이가 아예 없었다는 건 등산객과 케이블카 이용객이 완전히 구분돼 있다는 걸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팔공산엔 몇 년 걸러 한 번씩 갓바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대구교통공사가 시와 함께 갓바위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발표를 해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죠. 민간자본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열어두고 최종 결정한다는 것인데, 반대를 의식해서인지 민간 사업자가 참여할 경우에도 과도한 수익을 가져가지는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케이블카 수익은 누구에게 갈까
그러고 보면 케이블카의 수익금이 어느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도 궁금한 일입니다. 통상 지역의 자연경관을 재료로 하는 케이블카 수익금은 국가나 지자체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게 적지 않은 이들의 생각일 겁니다. 저 역시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 여행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케이블카가 누구 것이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지요. 기실 도립공원 케이블카는 한 번 놓아두면 지역 랜드마크가 돼 꾸준히 수입이 들어올 터인데, 이권을 민간에 내주어 사업자가 대부분을 가져가도록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참담합니다. 전국 수십 곳 케이블카 중에서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케이블카를 관리하는 건 통영과 울릉, 사천 정도에 불과합니다. 팔공산 등 국립 및 도립공원 케이블카 대다수는 사기업이 소유·운영하는 것입니다. 남산 케이블카처럼 일부는 반세기 동안이나 특정 업체가 이권을 갖고 있기까지 합니다. 사용료 납부 등을 제괴하고 거둔 이익 일부를 공공과 나누는 사례는 얼마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시민들에게 알려진 바가 전무합니다. 과연 이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대구에서 갓바위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관광자산이 제한적인 현실에서 케이블카는 쉽고 분명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구의 관광은 날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대구지역 관광산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관광에서 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1%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경상 지방을 대표하는 대도시로 대구가 가진 상징적 위치를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입니다. 보고서는 그 이유에 대해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관광명소가 여타 지역에 비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지요.
팔공산은 이 같은 상황에서 개발 가능성이 충분한 장소입니다. 광주에 무등산이 있고 목포에 유달산이 있듯, 팔공산이 대구를 대표하는 명산이란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신라시대 지어져 대구에서 가장 큰 절로 남은 동화사와 이곳에 선 33m 높이 약사여래대불은 대구의 명소로 손꼽히기도 하죠. 소원바위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역시 연간 35만 명이 찾고 있는 시설입니다. 타 시도 사례를 볼 때 이곳에 새로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방문객수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케이블카 사업권을 민간자본에 내어준다는 건 쉽게 결정해선 안 될 일입니다. 초기 설치비용을 민간업자에게 부담토록 해 현 시장 임기 동안 재정지출을 않고 설치효과는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 말고는 거둘 수 있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죠. 케이블카 사업이 장기적으로 분명한 수익이 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케이블카를 운영하도록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일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