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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 입구. 지난 15일 이곳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이 차려져 있다.
 20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 입구. 지난 15일 이곳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 공간이 차려져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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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한 다음날, 사측은 사고가 난 기계를 흰 천으로 가린 뒤 샌드위치 생산 작업을 재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사망한 다음날, 사측은 사고가 난 기계를 흰 천으로 가린 뒤 샌드위치 생산 작업을 재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 화섬식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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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 죽어."
"치킨 500봉 깔 예정. 난 이제 죽었다. 이렇게 해도 내일 300봉은 더 까야 되는 게 서럽다."


지난 15일 SPC 계열사 SPL 평택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여 사망한 A(23·여)씨가 사고 전 주변에 보낸 문자 메시지다. 입사 2년 9개월 차였던 A씨는 샌드위치 속을 만드는 라인에서 야간 근무조로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밤샘 작업을 2주 동안 하고, 그 다음 2주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는 2조 2교대 방식이었다.

사고가 난 건 토요일 새벽 6시 15분께였다. 야간 조 순번이었던 A씨가 이미 밤새 10시간 넘게 일하고 난 뒤였다. 유통기한이 짧은 샌드위치 특성상 A씨는 주말에도 돌아가면서 일을 해야 했다. 매일 자정이 돼야 당일 주문량이 정확히 나오는 탓에 새벽 노동 강도는 더 높았다. 수시로 배합 기계에 갖다 부어야 하는 재료들의 무게는 15kg이 넘었다. 이곳 1년 차 노동자의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 SPL 평택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300여 명에 달한다.

강규형(50)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기본적으로 회사가 노동자를 쥐어짜 이익을 내는 구조"라며 "노동자를 한낱 기계로 취급하는 회사의 태도가 이번 사고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했다. 실제 이 공장에서는 A씨가 숨진 다음날 사고가 난 기계를 흰 천으로 덮은 뒤 평소대로 샌드위치 생산을 재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SPC는 빵 만들다 사망한 A씨 빈소에 자사 빵을 박스째 놓고 가 공분을 사기도 했다.

강 지회장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매일 쫓기듯 일하니 퇴근할 때쯤 되면 하늘이 노래진다. 일이 바빠 기계에 손을 넣다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라인 증설하고 인력 보충해서 우리도 숨 좀 쉬면서 일하게 해달라"고 했다. 안전 교육·안전 장치 도입과 더불어 저임금 과노동의 고리를 끊어내야 산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임금이 적으면 수당이 더 붙는 야간 작업과 과로를 마다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 지회장은 "반노동 기조는 SPL 뿐 아니라 SPC 그룹 전체의 문제"라며 "같은 SPC 그룹 계열사인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탄압이 SPL에서 똑같이 벌어진다"고도 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은 지난 수년간 노조 탄압 중단과 임금 차별 금지 등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수십일씩 곡기를 끊었다. 하지만 SPC는 외면해왔다.

SPL 지회 역시 지난 2020년 11월 창립 이후 일주일도 안 돼 조합원 220명을 넘겼지만, 사측이 조합원들의 라인을 변경하고 주야 작업을 바꾸는 등 불이익을 주면서 현재 12명까지 조합원이 줄어든 상태다. 강 지회장과 SPL지회 조합원인 지윤선(38)씨를 지난 20일 저녁 경기도 평택에서 만났다.

"12시간 밤샘 근무 말이 되나... 노동자들 손목엔 파스 투성이"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강규형(50)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을 만났다.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강규형(50)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을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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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L 평택 공장에서 얼마나 일했나.

강규형 : "10년 됐다. 성형 과자 라인에서 꽈배기나 소시지를 만든다."

지윤선 : "5년 차다. 원래 강 지회장과 같은 라인에서 일했는데, 노조 활동을 한 이후 별 이유도 없이 라인이 변경됐다. 지금은 샌드 라인에서 케이크 안에 들어가는 빵을 생산하는 일을 한다."

- 일과가 어떻게 되나.

: "주간 조는 아침 8시, 야간 조는 저녁 8시에 출근해 12시간 일한다. 사실 요즘 시대에 12시간 근무가 말이 되나. 8시간 근무가 안착된 게 언제인가.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8시간 일하고 퇴근하면 안 되냐고 하더라. 그럴 거면 밖에서 알바 뛰는 게 낫지, 뭐 하러 여기서 밤새도록 고생하겠나. 12시간씩 밤새 일하면 그나마 먹고 살 만큼 월급이 나오니 여기 취직해 있는 거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은 자원해서 야간 일을 하려고 한다. 나도 야간 근무를 했었지만 노조 지회장을 하고 난 뒤부터 야간 작업에서 제외됐다. 회사에서 불이익을 준 거다. 10년 차인 내 현재 월급이 280만 원이다. 딸이 중학생인데, 이걸로 세 식구 생활이 되겠나.

12시간 근무 중 쉬는 시간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15분씩 세 번이다. 하지만 실상 한 번 올라온 밀가루 반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라인은 계속 돌아가는데 내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내 몫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라인에 서면 두 시간 이상 꼼짝 못한다. 그렇게 한 열 시간 쯤 꽈배기, 소시지를 말다 보면 그로기 상태가 된다. 하늘이 다 노래진다. 다들 손목에 파스 투성이다."

: "사정은 어느 라인이건 비슷하다. 다만 케이크는 시즌이 돌아오는 11월부터 야간 근무가 시작된다. 5년 차인 내 월급은 240만원 정도다."

- A씨가 일했던 냉장 샌드위치 라인은 특히 노동 강도가 높다고 들었다.

: "'치킨 500봉 까느라 죽겠다'는 A씨 카톡 내용이 모든 걸 말해준다. 샌드위치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150여 명인데, 이중 야간 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물량을 맞추려면 야간 작업이 필수지만, 야간엔 수당을 더 줘야 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선 최소 인원만 야간으로 돌린다. 평소 일을 잘했던 A씨는 야간 조에 속해 있었다. 야간 조는 주간 작업자들이 샌드위치를 완성할 수 있도록 속에 들어가는 재료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 소스나 치킨, 계란 으깬 것, 고기, 토마토, 오이 등을 계속 날라 기계에 붓는데 무게가 15kg 이상씩 나간다."

: "이전부터 샌드위치 라인에선 '인원이 너무 부족하다', '쉬는 시간이 너무 짧다', '휴일에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샌드위치는 유통기한이 짧아 휴일에도 돌아가면서 근무를 해야 했던 거다. 게다가 자정이 돼야 그날 주문량이 정확히 내려오는데, 만약 그날 물량이 평소보다 많으면 남은 새벽 시간 동안 죽어난다. 심야에 예비 인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이트 하게 인원이 배정돼있기 때문에 사람을 더 짜내야 물량을 맞출 수 있는 구조다."

"숙련공 임금 후려쳐 떠나면 '값싼' 기간제 노동자로 대체"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A(23)씨가 생전 주변에 보낸 카톡 메시지.
 경기도 평택 SPL 제빵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A(23)씨가 생전 주변에 보낸 카톡 메시지.
ⓒ 화섬식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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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은 A씨 사망 다음날 곧장 사고가 발생한 기계를 흰 천으로 덮어두고 샌드위치 생산을 계속했다.

: "현장 노동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가봤더니 정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울화가 치밀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회사는 우리를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 줄 아나. 일이 바쁘니 웬만큼 다친 건 그냥 다 참고 버틴다. 나도 돌아가는 임펠러에 손이 낀 적도 있고 금속검출기에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무거운 걸 끌다가 밟혀 발톱이 빠지고 팔이 부러지고. 그런데도 회사는 우리를 기계랑 똑같이 본다. 공장 일은 숙련도가 중요한데 노동자 귀한 줄 모르고 혼자 두 세 사람 몫을 거뜬히 하는 숙련공 임금을 정년 얼마 안 남았다고 막 후려친다.

처우가 안 좋으니 숙련공들이 공장을 떠난다. 회사는 그 자리를 더 값싼 기간제 노동자로 채운다. 10명 정원의 라인이라고 치자. 이중 숙련공 한 명 빠지고 대신 신입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물량은 똑같은데 일까지 가르쳐야 하니 현장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신입이 일에 숙달될 때까지 적어도 몇 달 간은 회사가 인력을 더 충원해주는 게 맞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더 무리하게 되니 사고 위험은 높아진다. 악순환이다."

: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는 비단 SPL 만이 아니라 SPC 그룹 전체의 문제다. 같은 SPC 그룹 계열사인 파리바게뜨의 민주노총 노조에 행해졌던 노동 탄압이 우리 공장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우리 조합원들 대부분 노조 가입 뒤 강 지회장처럼 주간 고정이 되거나, 나처럼 라인 변경이 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갑질까지 있었다. 어느 과장이 내게 샘플로 나온 케이크 빵 맛이 이상하다면서 '손 소독제를 먹으라'고 강요한 거다. 지난해 있었던 일인데, 아직도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 노조를 만든 계기는.

: "원래 이곳 생산직 노동자들은 하청 업체 소속이었다. 하지만 2018년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커지면서 우리도 SPL에 직고용 됐다. 그런데 그에 맞춰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생겼다. 직원 대부분이 가입됐다. 강 지회장이 당시 노조 대의원을 맡고 있었는데, 노조가 회사의 요구대로 상여금을 대폭 깎는 데 동의하는 걸 보고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강 지회장이 물러서지 않자 결국 기존 노조에서 제명까지 됐다. 이후 2020년 11월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만들었다."

: "노조 설립 며칠 만에 220명이 넘게 가입했다. 그만큼 공감을 받은 거다. 그러자 사측은 기존 노조에 소속된 관리자들을 통해 조합원을 빼가기 시작했다. 불려가서 상담만 하고 나면 수십 명씩 조합원 숫자가 줄었다. 그렇게 1년도 안 돼 지금의 12명만 남았다. 회사는 민주 노조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샌드위치 라인에도 우리 조합원이 없었다. 만약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계속 마음이 아프다."

"우리도 숨 좀 쉬며 일하고 싶다"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 조합원인 지윤선(38)씨를 만났다.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 조합원인 지윤선(38)씨를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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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무얼 해야 하나.

: "영상 보고 끝나는 무늬만 안전 교육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 안전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사고 장소처럼 CCTV 사각지대도 없애야 한다. 또 현재 생산직들은 기능직과 달리 공장에서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게 돼있는데, 그로 인해 사고 직후 초기 대응이 늦었다. 생산직 노동자도 공장에서 핸드폰을 소지할 수 있어야 한다."

: "언젠가 한번 라인 기계가 고장이 나서 일본 기술자가 우리 현장에 수리를 하러 온 적이 있다. 그 일본인이 우리 기계를 보고 놀라면서 하는 말이, '이 속도로 기계를 돌려도 한국에선 공장이 돌아갑니까?'라는 거였다. 기계 속도가 너무 빨랐던 거다. 우리는 착취당하는 줄도 모르고 늘 급하게 일했다. 10년 차인 나도 여전히 작업 속도가 버거울 정도다.

기계 속도가 높으면 작업은 빨라도 불량이 많이 난다. 에러 처리하라고 여기저기 기계에서 삑삑 소리가 울려대는데, 그거 처리 하러 간다고 한 명 빠지면 다른 동료들이 또 무리를 하게 된다. 그렇게 지체되다가 마음 바빠지면 기계 돌아가는 데 손을 막 집어 넣게 된다. 그러다 또 다치는 거다. 이렇게 쫓기고 조급한 분위기에선 사고가 안 날수가 없다. A씨가 사망한 날, 회사는 과연 그 새벽에 20대 여성 노동자를 홀로 두면서 그렇게 무리하게 일을 시켜야 했을까.

제발 우리도 숨 좀 쉬면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원 부족하다고 하면 충원해주고, 라인 좀 늘려달라고 하면 늘려주고, 기계 속도 좀 줄여달라고 하면 줄여준다면 이런 사고가 날까. 돈 많이 버는 회사에 그게 어려운 요구도 아니지 않나.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강규형(50)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오른쪽)과 조합원 지윤선(38)씨를 만났다.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강규형(50)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오른쪽)과 조합원 지윤선(38)씨를 만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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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SPL, #SPC, #파리바게뜨, #산재, #반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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