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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 흥사단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왼쪽)과 박권일 사회비평가(오른쪽)
 윤혁 흥사단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왼쪽)과 박권일 사회비평가(오른쪽)
ⓒ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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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8만원 세대> <한국의 능력주의>의 저자 박권일 사회비평가가 흥사단교육운동본부 주최 정의로운 시민학교에 강사로 나섰다. 지난 22일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흥사단 본부를 찾은 박권일 비평가는 2시간여에 걸쳐 '대한민국의 능력주의와 차별X부패 방정식,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하며 한국의 능력주의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박 비평가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능력주의가 옳고 공정하다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 대세인 것 같다"며 "단순히 도덕적 당위로서의 평등, 반능력주의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제대로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 불평등은 갈수록 악화 중이다, 1990년대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5%를 가져갔지만, 지금은 45%를 가져간다. 반면 하위 50%는 21%에서 16%로 더 줄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한국 사회에서 왜 양극화와 불평등을 겨냥한 대규모 집회는 벌어지지 않았는지 20년 넘게 연구하고 관찰한 결과 '한국인은 불공정은 못 참지만, 불평등은 기꺼이 참는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예를 들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외국인들은 잘 이해를 못 하는데 한국인들은 한번에 이해를 잘하지 않느냐"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 선진자본주의 사회 중 가장 불평등을 선호하고, 가장 능력주의에 경도된 사회"라며 세계가치관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보통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사회 전체의 관용과 신뢰 수준도 함께 상승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경제 수준이 아무리 올라가도 관용과 신뢰 수준이 오르지 않은 것이다. 그는 "한국은 경제성장과 안보에 집착하면서도 사회적 신뢰와 소수자, 이방인에 대한 관용이 지나치게 적다. 유대와 관용을 의미하는 '자기표현 가치'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한 것에 대해 "귀를 의심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자국민과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따로 두고 있어 적은 비용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데 이는 반인권적·반민주적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과 싱가포르는 자기표현 가치가 낮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를 언급하며 "한국만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모두가 서울대와 강남 아파트를 열망하는 사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사회에서 대안적 삶의 모델은 제시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11월 18일 발표한 조사 결과.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 11월 18일 발표한 조사 결과.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 퓨리서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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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극복은 장기 프로젝트... '다원적 정의' 필요하다

박권일 비평가는 또 "공부를 잘하면, 즉 시험을 잘 보면 좋은 대학에 입학,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큰 사회적 보상과 특권을 누리는 것이 과연 당연하고 정의로운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인용해 능력주의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재능, 노력, 기여에 따른 보상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재능의 경우, 우연히 주어진 것이기에 부적절하다. 다음 노력의 경우, 노력은 개인의 의지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재능이 뛰어나면 노력도 더 쉬워진다. 또 '디시인사이드 흙수저 갤러리'에 들어가 보면 노력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라며 "마지막으로 기여의 경우 개인 노동의 기여에 대한 평가는 기업의 수요에 따라 달라지며 생산물에 대한 수요에 따라 달라지기에 자의적이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학자 대니얼 챔블리스가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를 연구한 결과를 인용하며 "수영선수로서의 신체능력은 선수 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기후가 온난한 곳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가, 부모로부터 충분한 뒷바라지를 받았는가,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었는가 등이 메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차별적 기회가 선수들이 재능을 펼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능력주의는 그런 차별을 정당화함으로써 우연적 차이를 필연적 차별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어 "성적우수장학금 또한 정의롭지 못하다"며 "유리한 사람에게 더 혜택을 주는 것은 그를 두 번 유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박권일 비평가는 "개인 자질과 가정환경은 전적으로 우연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안다"며 "하지만 능력주의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듯, 극복도 장기 프로젝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원적 정의'를 이야기하며 "필요의 원리, 형평 및 평등의 원리 등 각 영역에서의 구체적, 입체적 정의를 이뤄야 한다. 제3의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할 필요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능력주의는 화석연료와 같아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다. 또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자"고 이야기했다.

태그:#능력주의, #존 롤스 정의론, #오세훈 외국인 가사도우미, #한국인 돈이 가장 중요, #흥사단교육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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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교육언론[창]에서도 기사를 씁니다. 제보/취재요청 813ars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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