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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선진 병영문화를 만들겠다며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를 2005년에 도입했고 2008년부터 전군으로 확대했다.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운영에 관한 훈령에서는 '장병들의 복무 부적응 해소와 사고 예방 등을 위한' 목적으로 제도를 운영한다 밝히고 있다.

과연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을까? 거기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을까? 9월 22일 창동역 인근 카페에서 병영생활상담관인 남은아 님을 만났다.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여 중인 남은아 지부장.
 8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여 중인 남은아 지부장.
ⓒ 남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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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제가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하 상담관)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었네요. 처음에 왔을 때는 사단, 계급 이런 거 하나도 몰랐어요. 장병들 상담하면서 군대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죠. 상담을 제대로 하려고 기본적인 것부터 찾아서 배웠죠. 그래야 장병들도 저를 믿고 얘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새로 입대한 장병들에게 군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요. 장병들 특성도 더 잘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 상담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

"2022년 현재 전 군에 630여 명의 상담관이 있어요. 상담관 1명이 대략 3개 내외의 대대를 맡고 있어요. 상담관 1명이 담당해야 할 장병 숫자가 적지 않아요. 평균적으로 943.7명을 담당하는데요. 적게는 20명부터 많게는 2500명까지 맡기도 해요. 업무는 다양한데요. 복무 적응이 어려운지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전문 심리치료나 검사를 해요. 새로 전입한 장병 상담도 하고, 자살 위험이 큰 장병들에 대해서는 사전에 개입하거나 사후 대응을 하기도 해요. 간부들에게 관련한 지휘 시 참고사항을 조언하기도 하고, 간부와 장병들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이나 상담기법교육, 또래 상담병 교육 등도 진행합니다. 그 외에 상담 일정 잡고 상담 이후에 보고를 하는 등 여러 행정업무도 함께 하고 있어요."

- 담당 인원이 상당해서 업무 부담이 클 거 같은데요. 노동환경은 어떤가요?

"상담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요. 교육 준비하랴 행정 처리하랴 다른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요. 더욱이 행정 처리를 요청해도 관련 부서나 부대에서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고, 출장 상담 시 위병소 통과도 여의치 않은 경우도 종종 있어요. 상담관의 업무가 군대 내에서 체계적으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또 사무실이 배정되어 있긴 하지만 상담이나 교육을 하려면 여러 부대를 찾아다니는 일이 많죠. 그래서 이동 거리나 시간 또한 상당해요. 대부분 개인 소유 차량으로 이동하고요. 업무용 차량이나 차량 유지비는 제공되고 있지 않고 유류비도 잘 나오진 않아요. 최근 실태조사 자료1)에 따르면, 상담관 1명이 1주 평균 113.1km를 이동한다고 해요. 하지만 상담관별로 담당하는 업무 내용과 방식이 크게 다르기에 주당 800km, 주당 15시간씩 이동하는 예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 상담 중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상담하러 여러 부대를 다니면 안정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상담실 분위기나 시설이 어떤지가 상담에 큰 영향을 미쳐요. 상담관에 대한 신뢰만큼 상담하는 공간을 장병들이 편안하게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중대장실이나 도서관 등을 잠시 빌려서 하는 경우가 있어요. 간부나 장병이 갑자기 들어오는 일도 있고 그래요. 별도로 상담실이 있는 부대도 있지만, 상담 공간만 있을 뿐 방음 설비나 관련 비품 등이 충분히 갖춰진 곳은 드물어요."

- 상담을 정말 많이 하실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상담하는 사람이 받는 여러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거의 상시 대기로 장병의 연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늘 긴장 상태인데다가 상담하다 보면 감정이 소진될 때도 있죠. 자신이 상담하던 장병이 나아지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지만, 때론 상태가 악화하거나 결국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육체적으로 지치고 감정적으로 힘들어져서 상담관 중 많은 분이 개인 휴가와 개인 비용을 들여서 따로 상담받기도 하고요. 상담관들에게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도 커요. 별도 휴가나 치료 프로그램이 없고요. 2021년 국방부 통계 기준으로 상담관 평균 근속연수가 3년 10개월이에요. 상담관들 개인이 오롯이 부담을 감당하다가 결국 지쳐서 퇴사하게 되어요."
 
병영생활상담관 노동환경실태조사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병영생활상담관 노동환경실태조사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 남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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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관의 업무체계는 잘 갖춰졌다고 보시나요?

"상담하면서 가장 크게 좌절할 때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이죠. 부대나 지휘관에 따라, 배치된 지역에 따라 상담환경이나 업무강도가 천차만별입니다. 그런 어려움도 큰데, 더 문제는 상담관을 부대에 해를 끼치거나 부대 업무에 방해되거나 귀찮은 일을 만드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상담관들에게 기본적인 업무환경조차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인사담당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나 물품, 행정 협조 등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인사담당자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인사담당자마다 다르긴 하지만, 업무체계가 없다 보니 당연히 업무를 위해 보장되어야 할 것들이 무리한 부탁이나 귀찮은 요청으로 취급받게 되는 거죠. 그리고 부대 지휘관이나 간부들이 상담이나 교육 등에 관해서 아무렇게나 지시하는 일도 종종 생기고요. 다른 업무를 하는 데 방해되니 상담을 빨리 마치라고 닦달하기도 해요. 상담 내용을 가고 장병들 지휘할 때 이런 거 저런 거 주의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저희 일인데, 이걸 간섭하는 걸로 여기기도 해요. 물론 장병을 지휘할 권한은 인사 실무자나 부대 지휘관들에게 있죠. 그러면 그 권한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데요. 오히려 자살사고가 일어나면 상담관들이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책임을 지는 일도 생기고 근무 평가에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해요."

- 작년에 상담관 부당해고 사건이 인권위에 제소되었었는데요. 현재 노동조건은 어떤가요?

"지난 8월 29일 상담관들의 노동실태와 관련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어요. 거기서 저도 토론자로 참석했었는데요. 이번 실태조사에서 확인되었듯이, 상담관의 노동조건이 개선이 안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나빠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은 고정급에 16년간 거의 변화하지 않았죠. 작년부터 노조에서는 현행 상담관 근로계약과 인사평가 시스템은 고용불안을 조정한다고 문제 제기했어요. 인사 실무자나 부대 지휘관이 매년 7~19회나 업무 평가하도록 하고 있어요. 제대로 된 이유 없이 지휘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징계를 주거나 해고하는 일도 있었고요. 때로는 '재계약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는 말을 듣기도 해요. 이건 상담관에게 눈치를 주고 위축시키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 같아요."

- 앞으로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현재 상담관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인 생명존중문화과에서는 군대 내의 자살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자살 사건은 중요하죠. 그런데 자살 위험만이 군대에서 장병들이 겪은 어려움이 아니에요. 자살은 여러 고충이 중첩되고 누적돼서 일어난 결과잖아요. 그러니 더 중요한 건 장병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에 집중하는 거 아닐까요. 구타나 가혹행위를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군 생활 중에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나 가족과의 불화, 친구나 애인과의 문제 등을 상담으로 해소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국방부, 생명존중문화과, 부대 지휘관 등등 많은 이들이 자살이라는 결과만 중시한다고 생각될 때가 많아요. 자살이 줄었냐 늘었냐만 평가하거나, 상담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에는 관심을 덜 가진 채 상담 건수만 보는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결국 군대의 성원들 모두가 인권과 상담에 관한 인식과 감수성이 증진되어야 해요.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고 상담에서 뭐가 중요한지 등을 제대로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해요. 그래야 상담관 모두가 바라는 더 나은 병영생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봐요."

1)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발표". 2022.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노동실태 발표 및 노동조건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 자료집>. p.16-18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기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병영_생활_상담관, #군대, #상담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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