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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자행한 전시 성폭력 범죄였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석상에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침묵이 깨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물론 북한과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취재가 시작됐다. 증거자료들이 발견됐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했던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랫동안 한국사회 내부에서 강요됐고 또 암묵적 동의에 가까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질문을 일본보다 한국사회 내부로 돌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질문하는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란 사진·영상 전시가 지난 4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서울 류가헌 갤러리에서 시작됐다(오는 12월 6일부터 13일까지 광주5.18 민주화운동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계속된다).

한일 작가의 두 번째 전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소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소개. ⓒ 류가헌
 
참여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를 다룬 다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다이빙벨> 등을 연출하며 사진 작업을 병행해 온 안해룡 감독과 1990년대 북한과 일본을 수십 차례 왕래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4명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일본군 피해자 60여 명을 만난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다.
 
 지난 2019년 3월 전시 당시 안해룡 감독과 이토 다카시 저널리스트.
지난 2019년 3월 전시 당시 안해룡 감독과 이토 다카시 저널리스트. ⓒ 하성태
 
두 작가는 지난 2019년 3월 '남과 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전 : 만나다, 그리고 보듬다'를 개최한 바 있다(관련 기사 : 일본기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벌인 엄청난 일들 http://omn.kr/1hruv). 이번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가지는 의미의 외연을 좀 더 확장하는 동시에 근원적 질문의 방향을 한국사회 내부로 돌렸다.
 
"(증언의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침묵을 고수해온 일본도 속속 드러나는 증언 앞에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침묵이다. 현재 일본 정치가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다시금 '위안부'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증언의 순수성을 문제 삼고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를 충동질하고 있다." - 전시 서문 중, '증언과 증언 사이 침묵에 관하여'

증언과 증언 사이의 침묵과 이를 강요한 한국사회 내부의 분위기조차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이들 작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여전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과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저작물들, 또 최근 독일 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위해 독일에서 우리말로 시위를 벌였던 대한민국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활약(?) 등이 그것이다.

두 작가는 이러한 현재진행형의 혐오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깊이 듣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년 전 전시와는 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과 글 등 기존 두 작가의 작품과 더해 김학순 할머니의 마지막 인터뷰를 비롯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편집한 영상을 나란히 배치한 시각 콘텐츠를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강요한 침묵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 고 김학순 할머니 증언과 홍진훤 감독 영상.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 고 김학순 할머니 증언과 홍진훤 감독 영상. ⓒ 하성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에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에서. ⓒ 하성태
 
이 신상 영상은 최근 폐막한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수상한 <멜팅 아이스크림>의 홍진훤 작가의 작품이다. 홍 작가는 사진계 후배로서 전시의 취지에 공감하며 194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결정적 순간들은 담는 영상물 제작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200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 할머니들의 평화 캠프 영상도 인상 깊은 이미지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정정했을 때 얼굴과 모습들을 2022년 마주하는 일은 과연 한국사회가 해방 이후 피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혹은 어떤 침묵을 강요했는가 하는 질문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 4일 전시 첫날 만난 안해룡 감독은 "(이번 전시는) 일본보다 한국사회 내부에 던지는 질문"이라며 "할머니들 증언을 되돌아보면, 일본의 강요때문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제와 순결주의에 대한 강요가 할머니들이 피해자로서 얘기를 못하고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영걸 포토그래퍼도 이날 만날 수 있었다. 서 작가가 설명하는 전시의 기획 의도는 이랬다.

"위안부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피해자란 단어가 등장하면 피해자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이 따라온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문제다. 왜 말을 못했을까. 가족들에게 모진 소리를 들으니까 숨길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제도 등이 둘러싼 사회문화가 작용한 것이다."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작품.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작품. ⓒ 하성태
 
서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기획 의도다. 증언과 침묵이란 화두를 내세운 이번 전시에 대해 서 작가는 "우리 내부의 문제"에 천착하기를 제안했다. 특정 순간, 특정 사실엔 분노하지만 어느 순간 또 피해자들을 모르는 척 해왔던 한국사회 전체의 분위기 말이다. 할머니들을 침묵하게 해 온 이들이 비단 극우친일파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란 주제의식은 분명 일본의 상황과는 별개인 진행형의 화두다.

"할머니들이 증언에서조차 말하지 못한 목소리는 누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하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시각적 이미지는 증거들이 아니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고,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더 현재진행형의 문제는 감각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그 다음에 논리가 작동하는 거다. 그 감각을 나누고 싶은 거다." - 서영걸 작가

할머니들이 놀고 웃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을 배치한 건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답답하고 분노가 나는 사진 텍스트와 영상의 이미지가 불일치하고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혹자들은 '피해자들이, 비극의 주인공들이 이렇게 놀았어도 돼?'라고 반문할 만한 영상이 맞다. 그 자체가 감각의 문제요, 현재적 관점일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라는 딱지가 붙은 할머니들을 보며 어떤 규정을 벗어버리는 것. 서 작가에 따르면, 혐오발언의 근원 중 하나인 그 피해자다움이나 규정 짓기를 던져 버리는 엇박자와 충돌의 미학이 이번 전시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 고 강덕경 할머니.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전시 중 고 강덕경 할머니. ⓒ 하성태
 
홍진훤 작가의 영상물 작업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대한뉴스를 편집한 영상물이 할머니들의 증언과 나란히 배치된 이미지를 마주하는 관람객들이 그들만의 감각을 일으키고 직접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침묵은 다시 깨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가 시도하고자 하는 주제가 거기 있는 듯 하다.

"할머니들이 증언한 이후 30~40년 가까이, 아니 1945년 해방으로 넓히면 한국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혼란상도 있었지마나 그 중 위안부 문제는 극히 일부다. 반면 이승만·박정희 정권 당시 대한뉴스를 보면, 광복절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행사로 치러졌고 북진통일, 민족통일을 강조했다.

6·25와 중첩되는 시기여서 그런 발언이 가능했겠지만,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일까란 질문도 가능해진다. 할머니들은 말도 못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민족의 통일만 강조돼 왔던 거다. 하지만 이 영상 콘텐츠를 통해 이러한 질문의 의미를 관객들이 잘 찾아봤으면 한다. 모호한 문제를 명료화시키는 건 할머니가, 작가가, 전시가 아니라 결국 우리일테니까." - 서영걸 작가

#말하여진것들과말해지지않은것들' 전#일본군위안부피해자#안해룡#이토다카시#서영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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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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