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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충격적인 뉴스가 연달아 들려왔다. 업계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와 혁신적인 서비스를 이어가던 기업이 차례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와 중복된 고객군을 공유하며, 비슷한 형태로 비즈니스를 이어가던 서비스라 더 놀랐다. 때론 경쟁자란 생각이 들었기에, 빠르게 치고 나가던 그들의 속도에 조급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저긴 정부 지원을 얼마나 받은 거야. 주변 괜찮은 업체들이랑 손잡고 제휴 서비스도 엄청 늘리고 있어. 나랑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훌쩍 컸네. 300명도 더 되는 규모의 컨퍼런스 진행이라니. 초대 연사들도 하나같이 빵빵해. 그에 비해 난 소꿉놀이같이 이게 뭐지? 정부 지원 사업도 넣어 보고, 제휴 서비스도 더 늘려서 커뮤니티를 활성화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는 경쟁사를 보며 내가 잘못 가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어떨 땐 그들의 시도를 쫓으려 노력 했지만 이내 번아웃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번아웃이 오면 모든 게 다 정지다. 애써 밀어 올렸던 것들이 또르르르 다시 제자리다.

내가 뒤로 밀리고 있는 사이 달려 나가는 주위를 보는 마음은 괴로웠다. 그럴 때면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마음은 나락으로 가라앉을지라도,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진 않으니까.   

조급함으로 이룰 수 없는 것
 
수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급해졌다.
 수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급해졌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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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영 강습을 받을 땐 참 힘이 들었다. "네 바퀴 돌고 오세요"라는 강사님의 말이 떨어지면 차례로 물을 차고 나간다. 8명 중 나는 마지막에 출발했다. 부지런히 앞사람을 따르지만, 쉽게 선두에게 따라잡혔다. 이럴 때면 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지만 남는 건 숨 넘어갈 듯한 호흡과 어지러움이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앞사람을 따라 잡으려는 마음을 접었다. 선두에게 따라 잡히면 길을 내주거나, 운동량이 힘에 부칠 땐 한두 바퀴 정도 쉬며 숨을 골랐다. 내 실력과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붙으려고 하니 속도도 자세도 모두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나는 느린 사람이었다. 생각부터 실행까지 오래 걸리고, 일에 착수해서도 제대로 속도가 붙을 때까진 남들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 내가 느린 데는 이유가 있다.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사소한 과정에도 힘을 쏟기 때문이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스킬과 체력이 부족한 초심자인 데다 강사님이 가르쳐준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려다보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를 인정하고 내 속도를 지키기로 했다. 교정 받은 동작에 집중하며 내 호흡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 페이스를 찾은 건 아니다. 수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급해졌다. 남들과의 속도 비교에선 벗어났을지 몰라도, 여전히 내 안에선 조급증이 올라왔다. 빠르게 무언가를 해치우려는 듯 말이다.

물잡기를 배우던 날도 그랬다. 물잡기는 내 손바닥에 물을 올려 몸 뒤로 밀어내며 추진력을 얻는 동작이다. 처음 물잡기를 배울 땐 속도가 아닌 동작에 집중하는 훈련을 한다.

물은 쥐어도 잡을 수 없다. 대신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바닥까지 묵직하게 걸리는 미세한 감각, 팔뚝에 전해지는 뻐근함을 느낀다. 이때 잠시 집중력을 잃으면 평소처럼 속도가 올라간다. 앞으로 나가는데 급급해져 배운 것을 몸에 익힐 기회가 사라진다.

"왜 그렇게 팔을 빨리 휘저어요? 속도는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내 몸에 잘 익히도록 천천히 하세요."

내가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강사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가만히 보니 이 말은 내가 배우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배운다는 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새로움은 서툴다는 의미다. 느릴 수밖에 없고 느려야 한다. 기본을 갖추고 있게. 속도는 그 다음에 내면 된다. ​이 과정이 없다면, 당장은 속도가 나는 것 같지만, 더 힘을 내야 할 때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기본이 없으니까. 그때가 되면, 기본을 쌓을 기회도 모두 사라져 버리겠지. 이미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수영에서 내 속도를 지키기로 마음 먹은 지 3년이다.
 수영에서 내 속도를 지키기로 마음 먹은 지 3년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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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움직이며 얻은 깨달음은 마음을 쉽게 진정 시킨다. 책에서 얻은 백마디 문장보다 내 몸이 직접 겪은 한 번의 경험은 마음에 진하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조급해지고 흔들릴 때마다 나는 물 속에서 묵직한 지혜를 얻었고 중심을 잡았다.

'서비스가 종료 됩니다', '마지막 응원을 보내주세요' 일주일 사이 두 개의 뉴스가 날아 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속도로 성장했고, 그들의 때에 맞게 멈추었다. 속도만큼 끝없이 날아오를 것 같았지만 여기까지였다. 결과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아무리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결국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지금 당장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서두르다 지쳐 한참을 주저 앉아 있느니, 느리더라도 꾸준히 움직이는 방법을 택하는 게 현명하다.'

이런 나만의 이론을 세워 본다. 동시에 지난 날이 떠올랐다. 조급하던 날, 나의 느림을 발견하던 날, 내 속도를 유지하기로 하던 날들. 그때 남들을 쫓았더라면, 속도를 올렸더라면, 더 빠른 시도를 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을 넘어설 만큼 크게 성장하진 못했을 것 같다. 모두가 욕망하는 만큼 성장하진 못하는 법이니까. 둘째, 금세 지쳤을 것 같다. 그간의 나는 느렸지만, 그마저도 내겐 벅찬 속도였다.

수영에서 내 속도를 지키기로 마음 먹은 지 3년이다. 그 사이 내 뒤에 서는 사람이 하나 둘 늘더니 지금은 어느새 내가 선두에 서 있다. 나는 그저 내 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한 바퀴를 따라 잡히던 사람에서 한 바퀴를 따라 잡는 사람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는 이영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uccessmate)에도 실립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태그:#엄마의심신단련, #마흔의운동, #수영효과, #체력관리, #마음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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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기록자, 칼자루 쥔 삶을 꿈꾸며 기록을 통해 삶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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