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스포츠 경기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지만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경기는 없습니다. 강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약팀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8월 1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롯데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8월 18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롯데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는 진짜 다르다니까. 지금 단독 2위라고."
"너 매년 똑같은 얘기하는거 알아? 작년에도 그랬어, 올해는 다르다고."


올해는 진짜 다를 줄 알았다.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정규 시즌 단독 2위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특히 4월 말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3연전 '싹쓸이'를 직관(직접 관람)하며 나는 확신했다. 이번에는 진짜 우승하려나 보다. 그래, 우승한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는데 우승할 때도 됐지. 더구나 올해는 이대호의 은퇴 시즌이니까, 선수생활 마지막을 우승으로 장식하는 것도 좋지 않나. 

4년째 유망주 꼬리표를 벗지 못하던 한동희가 타율 4할을 기록하고, 새로 온 외국인 투수 반즈가 5경기에서 5승을 거두고, 지난해 아쉽게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던 최준용이 부상으로 빠진 마무리 김원중의 자리를 든든하게 메워주는 등 4월의 롯데는 그야말로 투타 밸런스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지겹다'는 등쌀에도 '진짜 올해는 다르다'고 꿋꿋하게 우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어쩌면 우승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올해는 가을에도 야구를 하겠구나. 그렇게 감히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롯데는 무심하게도 내 기대를 배신했다. 4연패, 4연패 그리고 다시 6연패를 거듭하며 4월에 벌어둔 승차를 야금야금 깎아먹었고, 5월이 시작될 때는 단독 2위였던 순위가 5월을 마무리할 때쯤엔 7위까지 추락했다. 친구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완전히 기대를 버리지는 못했다. 

매년 롯데의 '우승'을 기대한다

부상으로 빠진 전준우, 한동희, 정훈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부상을 털고 복귀한 김원중이 제 페이스를 찾는다면, 루키 김진욱이 기복 없이 선발로서 한 자리를 버텨준다면, 은퇴를 앞둔 이대호가 마지막 불꽃을 태워준다면 여름에 반등을 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타격과 수비의 합이 잘 맞아떨어지는 날에는 롯데도 꽤 강팀처럼 보이니까. 문제는 그런 날이 일주일에 하루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결국 시즌 막바지에 이른 현재 우승의 꿈은 완전히 멀어진 것은 물론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와의 승차도 5경기까지 벌어졌다. 

사실 롯데 자이언츠는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수많은 팬들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시즌 막바지 쯤에는 5위권에 다가가는 듯하다가도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꾸라지기 일쑤였고 가을야구는 2017년 이후로 구경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은 20세기였던 1992년으로 리그에서 우승을 맛본지 가장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아직도 매년 우승을 기대하며 롯데의 야구를 보고 있는 걸까. 
 
 2017년 10월 9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7 KBO 포스트시즌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8회초 수비진의 도움으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자 롯데 투수 조정훈이 기뻐하고 있다.

2017년 10월 9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7 KBO 포스트시즌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8회초 수비진의 도움으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자 롯데 투수 조정훈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십수 년째 내가 롯데를 버리지 못하고 매일 저녁 스포츠 중계채널을 켜는 이유는 사실 이 선수 때문이다. 2005년 데뷔해 2008년부터 선발투수로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던 조정훈은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롯데의 에이스였다. 안타를 맞더라도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에 공을 꽂아넣는 그의 배짱과 자신감이 좋았다. 사직구장에 야구를 보러가는 날은 꼭 조정훈의 선발 일정에 맞춰서 갔다. 물론 팀이 연패 중인 상황에서도 그가 등판한 날 만큼은 꼭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롯데가 2008년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과 더불어 3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던 그때 조정훈은 손민한, 송승준과 함께 강한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가 스트라이크존 직전에 급격히 아래로 꺾이는 포크볼은 그의 주무기였다. 2009년에는 당시 한화의 괴물 신인 류현진을 꺾고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다(탈삼진은 류현진에 이어 2위였다.) 

7년 만에 돌아온 1군 무대

그러나 그는 반짝 빛났던 한 해를 뒤로하고 2010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당초 1년 정도의 휴식을 예상했으나 조정훈은 그 이후로도 지난한 재활과 수술을 반복하면서 7년이나 1군 무대에 돌아오지 못했다. 처음 한두 해는 나도 그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며 주기적으로 뉴스도 검색하곤 했다. 하지만 네 번째로 수술대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쯤엔 나 역시 그가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웠다. 2017년 7월 9일 대부분의 롯데 팬들도 그 이름을 잊었을 때쯤에야 조정훈은 7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던지기 전 감격한 얼굴로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봤던 그는 침착하게 첫번째 상대를 삼진으로 처리했다. 전성기 트레이드 마크였던 포크볼의 위력도 역시 그대로였다. 그는 이날 총 네 타자를 상대해 탈삼진 2개로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해 조정훈은 26경기 4승 2패 8홀드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하며 필승조에서 제 몫을 톡톡히 했고 롯데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9년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를 기록했던 그는 8년 만에 다시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올라 불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7년이나 복귀를 위해 노력한 만큼 나는 그가 좀 더 오래 1군 마운드를 지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정훈은 2018년을 마지막으로 결국 롯데를 떠나야 했다. 그의 은퇴는 방출선수 명단으로 공개되었을 뿐,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부상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나는 그가 7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던 때보다 결국 그가 은퇴를 결정했을 때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기나긴 재활 기간 동안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라고 써두었다던 그의 SNS 프로필이 떠올라서였다.

간절하게 원하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세상 일도 그렇지만 스포츠는 더욱 그렇다. 조정훈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부상 이후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과거의 경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재기를 위해 힘쓰는 선수들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조정훈이 결국 1년 만에 다시 은퇴를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7년여간 재활 노력이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듯이 말이다. 

내가 좋아한 그 선수는 이제 우리 팀에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롯데 야구를 응원하고 있다. 조정훈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다시 1군 마운드 위에 섰던 것처럼, 시즌 막바지에도 가을야구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팀이 있기 때문이다.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서 오늘도 승리하려는 팀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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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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