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젓이 의료법을 어기는 병원과 또 버젓이 이런 병원을 보고 있는 정부를 더 이상 가만히 봐주고만 있지 않겠다. 간병 살인, 간병 파산, 동반 자살... 돌봄의 막다른 길, 벼랑 끝에서 사람들이 몸을 던지려고 줄을 서 있다."(강주성 활동가)
지난 6일 "앞으로 의료인 정원 기준을 위반한 병·의원을 고발해 나가겠다"는 한 시민단체의 선포가 나왔다. 시민 2만여 명이 가입한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의 발표다.
같은 날 국회 동의 청원 게시판에 의료법 개정안 청원 글도 나란히 올렸다. 정부의 의료인 정원 위반 병·의원 실태조사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과 간호 인력을 실제 환자 수에 맞게 책정하고 또 이를 공개토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 동의 청원이다. 현재까지 각각 5300여 명이 서명했다.
2주 전인 지난달 27일 발족한 이 단체가 겨냥한 첫 목표는 간호 인력 확충이다. 의료적 돌봄의 질에 직결되는 기본 중의 기본임에도 한국 사회가 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그래서 기본부터 다뤄 보자는 문제 의식이다.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인 이유는 진단이나 처치를 맡는 의사보다 의료적 돌봄을 책임지는 간호사가 이들에게 더 중요한 의료인이라서다.
"시민의 돌봄 기본권을 헌법에 넣겠다"는 목표를 가진 시민행동은 이번 직접행동은 첫 시작일 뿐, 사회 전체의 의료 돌봄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종 고소·고발 등 방법과 영역을 가리지 않고 싸워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 시민행동을 주도하는 강주성 활동가를 9일 전화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간호 돌봄을 헌법상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해야"
-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해달라.
"지난 6월10일 '간호다운 간호를 받기 위해, 인간다운 돌봄을 받기 위해'란 문구로 가입자를 모집했다. 불법에 대한 공익소송, 헌법소원, 캠페인, 서명운동, 청원, 집회 등 간호돌봄 제도개선을 위한 가능한 모든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모집 16일 후인 26일 가입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27일 선언문과 10대 강령을 공개하고 출범했다. 국회의원, 간호사, 장애인 부모 등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다. 가입자는 현재 2만명을 넘었다."
- 왜 간호와 돌봄인가.
"시민행동이 말하는 돌봄은 의료적 돌봄을 뜻한다. 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이가 언젠가는 겪는다. 질병, 사고, 노화, 장애, 누구도 간병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관련 인력과 제도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만 벼랑으로 떠밀린다. 간호 돌봄을 헌법상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의료적 돌봄의 전문인력은 간호사다. 병원 안의 간호사도 중요하고 병원 밖 간호사는 더 중요하다. 집 밖을 나가기 힘든 아픈 사람들이 지역 곳곳, 집집마다 있다. 초고령화 사회는 눈앞이고 질병구조는 만성질환 중심으로 변화했다. 간호 인력을 중심으로 한 공적 간호돌봄 전달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 설립 계기가 있었나.
"최근 엉망으로 돌아간 간호법 제정 논의롤 보면서다. 간호와 돌봄의 대상자인 시민이 배제된 채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가 집단의 주장만 난무했을 뿐더러, 전문가인지 의심될 만큼 허위사실과 가짜뉴스를 양산했다. 이들 주장은 시민과 환자 이익에 반한다. 간호를 치료 중심의 의료기관 안에 가둬야 한다는 것인데, 간호를 돌봄과 분절시키려는 의도와 행동은 당장 지역 사회 곳곳의 중증환자, 장애인, 만성질환자, 노인 등을 버리는 일이다. 좌시할 수 없었다."
- 왜 단체 첫 번째 목표를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 실태조사 법제화'로 삼았나?
"의료인 수는 환자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국가와 지자체가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 정원을 철저히 관리해야 함에도 이들은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심각성은 45명이 사망한 2018년 밀양세종병원 화재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정 의료인 정원은 의사 6명, 간호사 35명이었으나 실제 근무한 의사는 3명, 간호사는 6명에 불과했다. 요양병원에 인력이 부족하면, 환자를 돌보는 게 아니라 수용한다. 환자 손발을 묶어버리기도 한다. 화재가 나면 도망나오지 못해 비극이 커진다. 이게 현실이다."
강 활동가는 국내 의료기관 10곳 중 3곳이 간호사 정원 기준을 위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1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4월까지 위반 건수를 집계한 결과 30~99병상을 갖춘 병원은 53.3%,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11.6%가 간호사 정원을 위반했다. 평균 37.8%(7147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은 2021년까지 7년 간 150건에 불과했다.
- 간호 인력 책정과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 청원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내가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 정원을 현재 환자들이 알고 있을까? 의료법상(보건복지부령)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로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병원 정보담당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사항으로 조문이 구성돼 있다. 국민 알권리를 침해하고 법률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나아가 의료법상 정원 기준은 실제 수요와 잘 맞지 않는다. 이에 '실제 입원환자당 근무 간호사 수'로 개정하고 관련 정보도 공개토록 해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각종 불법행위 고발할 것... 전문가들은 개혁 못 해"
- 이 활동을 '대학교수나 의료인 등 전문가들에 맡기면 안 된다'는 발언도 했다.
"전문가들에게 넘기면 (문제를) 개혁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전문가들의, 그리고 전문가들 간의 현안이나 이해관계가 우선이 된다. 실제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진다. 보건·의료계뿐 아니라 어떤 영역이든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정책 결정 과정은 병원, 의사, 보건복지부의 카르텔이라고 보는데, 복지부는 병원·의사에 절절매는 듯하다. 지난 20년 간 환자 당사자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결과다."
-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 나갈 계획인가?
"보건복지부가 방관하는 각종 의료계 불법행위를 고발할 것이다. 간호사가 의사의 의료행위를 대신 하는 PA(진료보조인력) 문제가 대표적이다. 의료계에 매우 만연한 불법행위로 보건복지부가 모른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다. 의사 부족이 이유라면, 의사 육성엔 10년이 걸리니, 10년 동안 의사 수를 대폭 확충하면서 제한적으로 PA를 합법화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한데 의사는 의사 증원에 반대만 하고 보건복지부는 방관한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기요양보험제도 및 공적 간호돌봄 전달체계 구축이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만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사실 이 돌봄서비스는 전 국민이 대상이어야 하고 국가가 재정적 책임도 져야 한다. 현재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은 5%, 노인돌봄을 위한 국공립요양시설은 3%, 국공립재가시설은 1% 수준에 불과하다. 공적 인프라 확충을 요구한다."
- 또 다른 요구 조건들은?
"간호돌봄인력이 병원을 '탈출'해 국민 전체에,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것. 간호법 제정을 통해 기반을 만들고, 이를 다시 '간호와 돌봄에 관한 법률'로 변경해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전문인력을 포함해 공적 간호돌봄 전달체계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처우개선 등을 통한 원활한 인력 수급과 적정배치다. 간호와 돌봄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부문임에도 노동 가치가 저평가되고, 살인적인 노동강도까지 더해져 기피 일자리로 전락했다. 정부가 나서서 우수한 간호돌봄 인력을 양성하고, 지역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간호돌봄서비스를 받도록 적정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장기근속을 통해 간호돌봄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한국 의료체계 정책 결정엔 의사, 병원, 보건복지부만 있고 환자가 없다. 간병 살인, 간병 자살, 간병 파산. 끊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는 이런 일들은 정말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이들의 얘기다. 막다른 벼랑 끝에 서 죽고 마는 것이다. 그 다음 떨어질 사람들이 계속 줄 지어서 있다. 그걸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