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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열 우물 파면 굶어죽고 한 우물 파면 먹고 사는 거야." 하지만 나는 '한우물파'보다는 '열우물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모든 걸 동시에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ADHD의 딜레마라는 우스개가 있는데, 매우 공감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기보다 계속 한눈을 파는 쪽이었다. A 전공을 하면서는 B나 C 전공을 하지 않은 게 아쉬워서 집중이 안 됐다. 전주에 머물기로 하고서 서울에 안 간 걸 후회하고, 기타를 배우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하고, 한국무용반에 들어가서는 북춤반을 흘끔거리는 식이다. 

이름도 두 번 바꿨다. 새 이름으로 산 지 5년이 되자 점차 이전 이름의 장점들이 그리워졌다. 결국 원래대로 이름을 바꾸고, 뒤통수를 긁으며 주변에 알렸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며 웃었다. "이름 갖고 장난 치냐?" 할 말이 없었다. 이놈의 변덕, 이놈의 충동성, 이놈의 욕심.
 
내가 만난 성인ADHD인들은 '흥미 부자'였고, 맥락을 뛰어넘어 풍부한 생각을 하는 '생각 부자'였다. 그만큼 서로 다른 분야나 소재를 연결지어 생각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통섭 능력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는 '융합 인재'가 아닐까.
▲ 흥미 부자, 생각 부자 ADHD 내가 만난 성인ADHD인들은 "흥미 부자"였고, 맥락을 뛰어넘어 풍부한 생각을 하는 "생각 부자"였다. 그만큼 서로 다른 분야나 소재를 연결지어 생각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통섭 능력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는 "융합 인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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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저도 아닌 나여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바라는 대로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는 재질이라는 것. 한 길을 쭉 가서 보기 좋게 성과를 쌓아올리는 직선적인 삶은 안 맞는다는 거다. 그래도, 여기저기 헛다리를 짚게 하는 자잘한 욕망 중에 독보적으로 일관된 욕망이 있긴 했다. 바로 '쓰는 데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물이 안 나오던 열 우물

내 노트북 바탕화면을 보면 2년 반 동안 찔러본 것들이 한눈에 보인다. 블로그 포스팅, 시 번역, 네이밍 공모전, 미디어 크리에이터, 전자책 편집디자인 등. 머니파이프를 여럿 꽂아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는 포부로 글쓰기와 겸업할 일을 찾아 헤맨 흔적이다.

부업이라고 쉽게 보고 시작한 것 중에 만만한 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업은 확 타올랐다가 흐지부지됐다. 블로그 포스팅의 경우 처음에는 하루 10개씩 글을 올리다 금세 힘이 떨어져서 지금은 블로그를 사진 저장용으로 쓰고 있다. 10개월간 모은 수익은 귀엽게도 과자 한 봉지 값이다.

아쉽진 않다. '글 부스러기' 폴더는 계속 몸집을 불려오고 있으니까. 독립근로자가 된 후로 쓴 글이 담긴 폴더다. 오래 전 들은 시민기자 활동 얘기가 떠올라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낸 게 본격적인 집필노동의 시작이었다. 신용카드 이벤트에 참여하겠다고 우왕좌왕한 초보 프리랜서의 하루를 담은 글이다.

헙. 진짜 올라갔잖아! 며칠 뒤 기사가 게재됐다는 알림이 왔을 때 나는 다급히 동거인 M에게 알림을 링크했다. M은 화장실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나왔고 우리는 얼싸안고 빙글빙글 뛰었다. 첫 원고료는 1만 5천 원. 이렇게 글을 써서 생활할 수도 있겠다는 실감이 왔다.

쓰는 게 느린 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매주 연재를 하게 되면서 주말에 하던 편의점 알바도 용감하게 정리했다. 여러 모로 '여길 그만두다니 미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글쓰기를 최우선순위로 두자 처음으로 열 우물이 한 우물로 모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신명을 따라가기

헛발질이라고 생각했던 경험들이 글을 쓸 때는 하나하나 재료가 된다. 비록 글이 '산만하다'는 평도 듣고(이것은 일부분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는 이치와 비슷하게 느껴져 속상하지 않았다), 아직 생활비보단 용돈에 가까운 수입이지만, 걱정되진 않는다. 필요할 땐 또 잠시 다른 우물을 같이 파면 된다.

물론 시민기자 활동도 흐지부지될 뻔한 적이 있다. 지금도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완성할 수 있을지 마음 졸인다. 그런데 이런 생활로 다가오기까지 긴 과정을 거치고 보니, 슬럼프가 오더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떠올릴 수 있다.

'쓰고 싶다'가 모두 '쓴다'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생업과 가사 노동에 치이면 사치처럼 느껴지기 쉽고, 앉아있을 체력과 마음을 들여다볼 일말의 정신력도 있어야 한다. 재능의 한계를 확인하는 일이 두려울 수도 있다. 덜 중요한 다른 관심사에 자꾸 밀려날 수도 있다. 쓰고 싶은 마음을 쓰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축복을 충분히 누리는 게 내 목표다.

사는 게 재미없어질 때 가끔 대학 선배 O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기타를 쳤다. 모임 자리에서는 으레 의기양양하게 기타를 둘러메며 순진한 후배들의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기타의 몸통을 아무렇게나 두들기면서 제 흥에 넘쳐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야유하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왜, 기타 '친' 건데!"

O는 기타를 칠 줄 몰랐다. 하지만 칠 줄 알았다. 기타를 치는 목적은 즐거움을 얻는 것이고, O는 충분한 즐거움을 얻으며 주변까지 즐겁게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웃긴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는 본질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뭔가를 마음껏 할 때의 신명과 환희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잊는다. '경험'이 목적이 될 때는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된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사람은 외부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기에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고 했고, 이것을 '삶의 흐름에 깊숙이 빠져들 줄 안다'고 표현했다.
 
몰입은 잃어버린 자기다움으로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 나와의 만남 몰입은 잃어버린 자기다움으로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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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 자기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어릴 적 막연히 품고 있다가 잃어버린 자기다움을 되찾는 방법을. 나는 직관과 무의식이 이끄는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몰입이 길어 올리는 흥을 따라가면 언젠가 찾고 싶은 길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제대로, 제멋대로 뭔가를 펼쳐보고 싶은 마음. 지인 중 한 사람은 자신 안에 '불'이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용'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내 속에서 윙윙거리는 걸 '바람'으로 생각한다. 불어야만 바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바람처럼, 계속 움직여야만 하는 걸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불, 바람, 용. 무슨 '캡틴플래닛'인가 싶지만(땅, 불, 바람, 물, 마음의 다섯 가지 힘을 모아 악당을 물리치는 만화가 있었다), 사람의 깊은 곳엔 그보다 강력한 게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민감하고 우울하고 산만하게 잘 살기

직선적인 삶을 살려 하는 사람조차 단순하게 한 길로만 가지는 않는다. 설령 겉보기에 그래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내면에서 겪는 과정까지 단순하리라 생각할 수는 없다. 알면서도 잊기 쉬운데, 모든 삶은 입체적이다. 타인의 경험과 내면에도 수많은 사연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자기 삶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출발점이 된다. 각자가 이 복잡한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를 떠안고 보이지 않게 분투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깨달았다. 이 감각을 유지할 때만이 내가 만든 마음의 틀에서 벗어나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실 아직도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자동화된 몸의 반응과 뇌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사소한 사건과 자극에도 우울과 불안의 가랑비를, 때로는 소나기를 맞는다. 

그러나 내가 만난 ADHD인들은 모두 ADHD가 있어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더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나를 파헤쳐보면서 점점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게 됐다. 머리로 안다고 꼭 삶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안다는 건 중요하다.

"풍부한 감각경험에 깊은 통찰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균형 잡힌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다." 책 <도파민형 인간>의 에필로그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이다.

지금 생각하기에 '열 우물 파기'는 ADHD를 가진 사람의 가장 큰 자산 같다. 경험이든 생각이든 어떤 자리를 파보고 싶어지면 일단 파본다는 것.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의 조각들이 만나 작은 통찰을 완성해간다. 작은 통찰은 인격의 부분부분을 변화시키고, 그 긴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계속 새로워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좋은 것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좀 더 경쾌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진 것 아닐까." 일본의 니트(NEET)족 철학자 '파(pha)'의 말이다.
▲ 흥이 이끄는 곳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좋은 것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좀 더 경쾌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진 것 아닐까." 일본의 니트(NEET)족 철학자 "파(pha)"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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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세상엔 많다. 내키는 대로 두드리고 퉁기는 게 연주가 되듯, 신명을 따라가며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듣는 생활. 그렇게, 나 자신을 찾아헤매기보다 안에서 조금씩 꺼내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열 우물 파기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리면서. 

덧붙이는 글 | 이번 화로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브런치 페이지에 번외편과 출간 공지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태그:#성인ADHD, #집필노동자, #글쓰기, #프리랜서, #독립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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