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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원 소년부 법정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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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과 '소년범죄'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세 차례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2017년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흥행이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촉법소년 범죄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소년법 폐지 및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10년 동안 국회에서 발의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수십 개의 소년법 개정 법안 중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선거권이 없는 사회적 소외계층인 위기청소년 문제이기 때문에 흉포한 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만 여론이 들끓었고, 국회의원들도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1~2살 낮추는 정책의 목적은 소년법을 악용하여 살인·강간 등 특정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경각심을 주는 것이다. 흉포한 범죄에 대해서 국민의 법 감정에 맞는 '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둬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 소년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호처분으로 교화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재사회화할 것이다. 전체 소년범죄 중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이다. 약 95%의 범죄는 보호처분으로 교화하고 있다. 

촉법소년 범죄가 곧 강력범죄라는 인식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의 영향이 크다. 대부분의 촉법소년들은 생계형 절도나 학교폭력,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 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전부다.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의 실체는 통계나 문서보다는 보호관찰,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등 보호처분 집행 현장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장의 사례를 들어보자.

# 촉법소년 1

소년의 비행명은 '방화'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소년분류심사원 상담실에 앉은 소년은 앳된 얼굴의 중학교 1학년이다. 유아기에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이후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건설 현장 일용노동을 하는 아버지, 두 살 많은 형과 함께 작은 방이 3개 있는 낡은 빌라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혼자 술을 마시다 잠들었고, 형은 자기 방에서 게임만 했다. 13살 소년은 외로웠다.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소년은 가정에서 얻지 못한 따뜻한 관심을 학교에서 받고 싶었지만, 입시경쟁에 바쁜 학교는 소년의 정서적인 욕구를 외면했다. 소년은 자신의 힘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기로 결심했고, 실천에 옮겼다.

"아버지와 형이 없을 때 집에 불을 질렀어요."

이유를 물어보았다.

"우리 집이 홀랑 다 타서 단칸방으로 이사 가면, 아빠하고 형이랑 단칸방에서 같이 살 거니까. 그러면 얘기도 많이 하고, 훨씬 행복해질 것 같아서..."

# 촉법소년 2

중학교 2학년인 소녀의 비행명은 '폭행'이다. 노상에서 시비가 붙은 또래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2대 때렸다. 소년부 판사는 장기보호관찰 처분을 결정했다. 당시 소녀는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부모가 이혼한 후 모가 재혼하여 계부, 친모와 함께 살았는데 계부가 소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아동학대로 신고가 됐고, 외할머니가 소녀를 양육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보육원에 맡겨졌으나 적응을 못해서 가출을 했고 쉼터를 전전했다.

소녀는 보호관찰을 받던 중 보호관찰관의 출석 요구 등 지도·감독에 따르지 않았다. 보호관찰관은 법원에서 구인장을 발부받아 쉼터로 가서 소녀를 구인했다. 소녀의 일탈과 재범을 막고 보호하기 위해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하기 위해서다. 소녀는 4주 뒤 소년부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받을 것이다.

소녀의 가녀린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소녀의 소지품을 담은 여행용 가방의 바퀴가 하나 빠져있었다. 그동안 자신보다 커 보이는 가방을 끌고 얼마나 많은 거리와 쉼터를 방황했을까?

소녀를 보호관찰소로 인치해서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시켜주기 위해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피자나 햄버거, 김밥, 모두 싫어한다고 했다.

"생각이 없어요. 전, 할머니가 해주시던 밥이 제일 좋아요. "

# 촉법소년 3

촉법소년 5명은 공범이다. 죄명은 '강도상해'. 강도는 살인·강간·방화와 함께 4대 강력범죄다. 이들은 원래 모르는 사이였으나 가출해서 거리를 배회하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만났다. 소년원과 보호관찰 경험이 있는 친구가 한 명씩 있었고, 나머지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은 범죄 경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이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조건만남 사기' 범죄를 모의했다. 소년원 출신 촉법소년이 주도해 역할을 분담하고 실행에 옮겼다. 조건만남 앱을 통해 40대 성매수남과 접촉했고, 모텔로 유인한 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시도했다며 협박하고 폭행해 현금을 강취했다.

# 심판
 
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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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1은 경찰 조사를 받고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방화는 강력범죄다. 판사는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만 13살 촉법소년이어서 형사처벌을 할 수 없었지만, 촉법소년이 아닌 만 14살이었어도 형사사건으로 처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만 13살이든 14살이든 실형을 선고해 전과자로 만드는 것보다 보호처분으로 교화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촉법소년2는 6호 처분을 받았다. 6호 처분은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6개월 동안 감호 위탁하는 처분이다.

촉법소년3 가운데 주범은 보호처분 중에서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소년원 2년)을 받았고, 보호관찰 경력이 있던 소년은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받았다. 나머지 초범 3명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가정과 학교로 돌아갔다.

# 심판 이후

사례로 제시한 사건들은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촉법소년 2와 3의 경우는 소년사건에서 매우 일반적인 사례다. 사각지대 위기청소년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감이 안 될 뿐이다. 촉법소년은 위기청소년이다. 가정과 학교, 사회는 이들의 범죄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

10년이 지난 지금, 20대 청년이 된 촉법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소년범 교화를 위해 보호관찰과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자했는가? 소년범 선도 및 범죄 예방을 위한 토론과 공청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가야 할 국정 과제다. '소년범 혐오'에 기반한 감정적 대응이 아닌, 소년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청소년의 성행을 교정하고 환경을 개선하여 재범률을 낮추는 실질적인 소년범죄예방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10년 뒤에도 똑같은 질문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태그:#촉법소년, #소년법, #소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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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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