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살면서 늘 특별한 날만 꿈꿔 왔는데 지나고 보니 평범한 날들이 가장 특별한 날들이었어요. 작고 하찮은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하찮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도 요즘 '추앙', '추앙' 하길래 사람들이 추앙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았다. 옛날엔 남들이 좋다는 건 이상하게 보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나이가 들었나, 남들이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찾아보았다.

감히 내가 평가할 드라마가 아니었다. 어느 지점부터는 내 주제를 깨닫고 평가는 관둔 채 온전히 드라마에 몰입했다. 역시 '추앙'이 드라마의 핵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추앙이라니. 나를 추앙하라니. 오글대는 이 대사를 들은 내 귀를 박박 씻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쩐지 후반부로 갈수록 이 추앙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콕콕 박혀 누군가를 추앙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가 되었다. 

내가 추앙해야 할 대상
 
 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 JTBC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니 그보다 더 윗 단계의 감정. 드라마 속 추앙 남녀 염미정과 구씨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과거가 어땠는지, 현재가 어떤지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추앙해 나간다.

AD
'왜 그랬냐?' '하지 마라', 훈수 두지 않고 참견하지 않는다. 갑자기 떠난다는 상대에게 화를 내긴커녕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다가 불현듯 내가 추앙해야 할 대상을 떠올렸다. 바로 내 자식들이었다. 추앙의 의미를 자식에게 대입해 보니 그 풀기 어렵다는 자식 문제를 깔끔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요즘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식이다. 사춘기에 들어섰는지, 말도 잘 듣지 않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지도 않고, 반항의 기미도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다 너를 위하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사랑이 추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드는 마음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하려는 감정,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감정,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이고 싶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추앙하라는 말에는 불순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존중하는 마음... 의심, 불안, 질투, 이런 것 따윈 버리고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 

사회의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 바탕이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에 대한 사랑도 추앙으로 발전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식은 예외다. 그 사랑의 본질이 추앙이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러러 받들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릴 때, 내가 가졌던 감정은 추앙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래서 불만이야', '니가 그럼 그렇지', '태도 좀 고쳤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믿어준 적도, 절대적으로 응원한 적도 드물다. 마음을 채워주긴커녕, 내 욕심의 펌프로, 있던 사랑도 도로 퍼내고 있었다. 육아서를 백 날 보고, 오은영 매직을 매일 시청해도 내가 아이를 추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보다 더 깊은 추앙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 ⓒ jtbc
 
인간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던 드라마 속 주인공 남녀가 다시금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추앙의 힘 때문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술을 끊으라고, 성실히 살라고, 사람들 틈에 끼라고, 섣불리 충고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전적으로 응원해 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최종회에서 여 주인공이 그런다. 자신이 사랑스러워 죽겠다고. 마음에 사랑밖에 없다고.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다고. 내가 자식에게 만들어 줄 것은 스펙이 아니라,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요즘 부쩍 주눅 들고, 짜증으로 채워진 것 같은 아들 딸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충만감이 넘쳐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고로, 나는 자식을 추앙할 것이다. 말을 듣지 않아도,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아도 나는 추앙할 것이다. 언젠가 나를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길 바랄 것이다. 아~ 벌써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난 너희를 추앙해!!!" 
"... 어? 우릴 추방한다고? 안돼~ 엄마~!!!"


휴우, 사랑으론 안 된다. 추앙이어야 한다. 

#추앙하다#어휘력레벨업#마음레벨업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하찮지만 소중해

조영지 (joji0221) 내방

꿈을 꿉니다 글을 씁니다 행복 합니다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